갈리아에서의 연이은 승리로 카이사르는 로마 최고의 군사 지휘관으로 부상했지만, 동시에 그의 성장은 로마 정계에 새로운 긴장을 만들어냈다. 제1삼두정치의 균형이 깨지면서 카이사르와 폰페이우스 사이의 대립이 심화되었고, 원로원은 카이사르의 권력 확장을 견제하려 했다. 결국 기원전 49년 1월,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면서 로마는 또다시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이 내전은 단순한 정치적 갈등을 넘어서 로마 공화정 체제 자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역사적 분기점이 되었다.제1삼두정치의 균열과 크라수스의 죽음기원전 56년 루카 회담에서 연장된 삼두정치는 겉보기에는 안정적으로 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각자의 야심이 커지면서 상호 견제와 경쟁이 심화되었고, 특히 크라수스와 폰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