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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역사 25. 세베루스 왕조와 군인 황제 시기의 정치적 격변

180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사망과 함께 로마 제국의 황금기는 막을 내렸다. 그의 아들 코모두스의 폭정으로 시작된 정치적 혼란은 193년 '다섯 황제의 해'를 거쳐 세베루스 왕조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세베루스 왕조는 아프리카 출신 황제들이 군사력을 바탕으로 제국을 통치한 시대였으며, 특히 카라칼라 칙령을 통해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는 획기적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 시기는 동시에 군단의 정치적 영향력이 급격히 증대하면서 '군인 황제' 시대의 서막을 연 전환기이기도 했다.코모두스의 폭정과 5현제 시대의 종말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 코모두스(재위 180-192년)는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황제였다. 그는 철학과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고, 검투사 경기와 사치스러운 오락에만 몰두..

History/Europe 2025.05.27

이탈리아 역사 24. 안토니누스 피우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왕 정치

2세기 중후반 로마 제국은 안토니누스 피우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는 두 명의 현명한 황제 아래에서 평화와 번영의 정점을 경험했다. 특히 이 시대는 플라톤이 이상적으로 그렸던 '철학왕'의 모습이 현실에서 구현된 유일한 시기로 평가받는다.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23년간의 평화로운 통치로 제국에 안정을 가져다주었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을 바탕으로 한 도덕적 통치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동시에 게르만족의 압박과 역병의 창궐로 로마 제국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기 시작한 전환기이기도 했다.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온건하고 안정적인 통치138년 하드리아누스가 사망하자 안토니누스 피우스(재위 138-161년)가 황제가 되었다. 그는 '피우스(경건한)'라는 칭호에서 알 수 있듯이 전통을 존중..

History/Europe 2025.05.27

이탈리아 역사 23. 트라야누스와 하드리아누스 치세의 제국 절정기

로마 제국은 2세기에 들어서며 역사상 가장 찬란한 전성기를 맞이했다. 특히 트라야누스와 하드리아누스 두 황제의 치세는 로마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트라야누스는 제국 영토를 사상 최대로 확장했고, 하드리아누스는 그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며 로마 문명을 꽃피웠다. 이 두 황제가 이룩한 업적들은 오늘날까지도 인류 문명사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네르바의 현명한 전환과 양자 상속 제도도미티아누스 암살 후 즉위한 네르바(재위 96-98년)는 이미 60세가 넘은 고령이었지만, 로마 제국사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 황제였다. 그는 원로원의 지지를 받아 즉위했으며, 도미티아누스의 전제정치를 청산하고 온건한 정책으로 돌아갔다. 특히 그가 도입한 양자 상속 제도는 이후 로마 제국 최고의..

History/Europe 2025.05.27

이탈리아 역사 22. '네 황제의 해'와 플라비우스 왕조의 부상

기원후 68년 네로의 자살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가 막을 내린 후, 로마 제국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1년 동안 네 명의 황제가 연달아 등장했다가 모두 비참한 죽음을 맞은 '네 황제의 해'는 로마 제국사상 가장 격동적인 시기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혼란 속에서 새롭게 등장한 플라비우스 왕조는 로마 제국에 다시 안정과 번영을 가져다주었으며, 특히 베스파시아누스와 그의 아들들은 제국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다졌다.갈바의 짧은 통치와 개혁의 한계네로 사후 첫 번째로 황제가 된 갈바(재위 68-69년)는 이미 73세의 고령이었다. 스페인 총독으로 재직하며 네로에 대한 반란을 주도했던 그는 엄격하고 검소한 성품으로 유명했다. 갈바는 네로 시대의 방탕함과 낭비를 일소하고자 했지만, 그의 개혁은 지나치게 급진..

History/Europe 2025.05.27

이탈리아 역사 21.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가문의 통치와 팍스 로마나의 시작

아우구스투스가 확립한 프린키파트 체제는 로마 제국 역사상 가장 안정적이고 번영한 시대의 문을 열었다. 기원전 27년부터 기원후 68년까지 약 95년간 지속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는 로마가 단순한 정복국가에서 문명 제국으로 발돋움하는 결정적 시기였다. 특히 이 시대에 확립된 팍스 로마나(Pax Romana)는 지중해 세계 전체에 전례 없는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주었다.아우구스투스의 유산과 제국 체제의 완성아우구스투스는 단순히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가 아니라 로마 문명 전체를 재설계한 위대한 정치가였다. 그가 만든 프린키파투스(Principatus) 체제는 겉으로는 공화정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황제 개인의 권위에 기반한 효율적인 통치 시스템이었다. 이는 로마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

History/Europe 2025.05.27

이탈리아 역사 20. 제2삼두정치·악티움 전투와 아우구스투스의 프린키파트 체제 확립

카이사르의 암살은 공화정을 구원하려던 음모자들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로마는 더욱 심각한 내전과 무정부 상태에 빠졌고, 결국 카이사르보다도 더 강력한 개인 권력이 등장하게 되었다. 카이사르의 양자이자 상속자인 옥타비아누스와 그의 오른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그리고 대폰티펙스 마르쿠스 레피두스가 결성한 제2삼두정치는 공화정의 마지막 숨통을 끊었다. 특히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사이의 최종 대결인 악티움 해전은 로마사의 결정적 분기점이 되었으며, 승리한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정치 체제인 프린키파트를 확립하여 로마 제정의 기초를 마련했다.카이사르 암살 후 로마의 혼란카이사르가 3월 15일 원로원에서 암살당한 후, 로마는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암살을 주도한 브루투스와 카..

History/Europe 202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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