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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역사 13. 정복 제국의 확장과 사회 구조의 변동 - 노예경제와 라티푼디움의 등장

지중해 패권 장악과 제국적 팽창제2차 포에니 전쟁의 승리는 로마를 지중해 세계의 절대 강자로 만든다. 카르타고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하자, 로마는 동쪽으로 시선을 돌려 헬레니즘 왕국들을 차례로 정복해나간다. 기원전 200년부터 시작된 마케도니아 전쟁에서 키노스케팔라이 전투(기원전 197년)로 필리포스 5세를 굴복시키고, 이어서 셀레우코스 왕국의 안티오코스 3세를 마그네시아 전투(기원전 190년)에서 물리친다.기원전 168년 피드나 전투에서 마케도니아의 페르세우스 왕을 완전히 격파하여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계 왕국을 해체시킨다. 기원전 146년에는 코린토스를 파괴하여 그리스를 속주로 만들고, 같은 해 카르타고를 완전히 멸망시킨다. 불과 50년 만에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의 도시국가에서 지중해 전체를 아우..

History/Europe 2025.05.26

이탈리아 역사 12. 제2차 포에니 전쟁과 한니발의 침공 - 칸나에 참패에서 자마 승리까지

전쟁의 서막과 사군툼 위기제1차 포에니 전쟁이 끝난 지 23년 후인 기원전 218년, 로마와 카르타고는 다시 한 번 운명적 대결을 벌이게 된다. 이번에는 이베리아 반도의 작은 도시 사군툼에서 불씨가 타오른다. 카르타고는 제1차 포에니 전쟁 패배 후 시칠리아와 사르데냐를 잃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스페인에서 새로운 세력 기반을 구축해왔다.한니발의 아버지 하밀카르 바르카가 스페인 정복을 시작했고, 그의 사위 하스드루발이 뒤를 이어 카르타고 노바(카르타헤나)를 건설하며 영향력을 확대한다. 기원전 221년 하스드루발이 암살당한 후, 26세의 젊은 한니발이 카르타고 스페인군의 총사령관이 된다. 그는 부친과 매형으로부터 물려받은 로마에 대한 깊은 원한과 함께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겸비한 인물이었다.사군툼은 에브로 ..

History/Europe 2025.05.26

이탈리아 역사 11. 제1차 포에니 전쟁과 해군 강국으로의 변모 - 코르부스 전술과 지중해 패권 경쟁

시칠리아를 둘러싼 운명적 충돌로마가 이탈리아 반도 통일을 완료한 직후, 메시나 해협 너머 시칠리아 섬에서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한다. 기원전 264년, 시칠리아의 메시나(메사나)에서 발생한 분쟁이 결국 로마와 카르타고 간의 첫 번째 대전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전쟁은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서 지중해 패권을 둘러싼 운명적 대결의 서막이었다.메시나의 마메르티니(마르스의 아들들)라 불리는 용병들이 시라쿠사의 히에론 2세에게 압박받자 도움을 요청한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동시에 로마와 카르타고 양쪽에 구원을 청한다. 카르타고가 먼저 응답하여 메시나에 수비대를 파견했지만, 마메르티니들은 다시 마음을 바꾸어 로마에 도움을 요청한다. 로마 원로원은 처음에는 해적 집단을 도울 명분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지만..

History/Europe 2025.05.26

이탈리아 역사 10. 피루스 전쟁과 로마의 반지중해 강국 도약

기원전 3세기 초, 로마는 이탈리아 통일의 마지막 관문에 서 있었다. 삼니움족을 굴복시키고 중부 이탈리아를 장악한 로마 앞에는 이제 남이탈리아의 그리스 도시들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들과의 대결은 단순한 지역 갈등이 아니었다. 그리스 본토에서 온 헬레니즘 세계 최고의 명장 피루스가 등장하면서, 로마는 처음으로 지중해급 강국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 전쟁은 로마가 단순한 이탈리아 지역 강국에서 지중해 세계의 주요 세력으로 도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타렌툼과 로마의 충돌남이탈리아 최대의 그리스 도시 타렌툼은 기원전 8세기에 스파르타인들이 건설한 식민 도시였다. 천연 항구를 끼고 있는 이 도시는 지중해 동서를 잇는 중요한 해상 교역의 거점이었고, 마그나 그라이키아(대그리스) 지역에서 가장 번영하는 도시 ..

History/Europe 2025.05.26

이탈리아 역사 9. 라틴 동맹과 삼니움 전쟁, 이탈리아 반도 패권을 둘러싼 치열한 각축

기원전 5세기부터 3세기까지,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두고 벌어진 장기간의 생존 경쟁에 뛰어들었다. 12표법으로 내부 갈등을 일단락지은 로마가 이제 직면한 과제는 외부의 강력한 적들이었다. 산악 민족 삼니움족, 그리스 식민 도시들, 그리고 심지어 동맹이었던 라틴족들까지 모두 로마의 성장을 견제하려 했다. 이 시기의 전쟁들은 단순한 영토 확장이 아니라 로마의 생존 자체가 걸린 문제였다. 특히 삼니움 전쟁은 로마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긴 전쟁 중 하나로, 승리와 패배가 반복되는 소모전이었다.초기 라틴 동맹과 로마의 위치로마가 공화정을 수립할 무렵, 이탈리아 중부 지역은 여러 라틴족 도시들이 느슨한 연맹체를 구성하고 있었다. 라틴 동맹은 원래 알바 롱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지만, 알바 롱가가 로마에 멸망당..

History/Europe 2025.05.26

이탈리아 역사 8. 평민-귀족 갈등과 12표법 제정, 로마 법치주의의 기원

기원전 5세기 로마는 새로 태어난 공화정이 첫 번째 심각한 내부 위기를 맞고 있었다. 왕정을 무너뜨리며 자유를 쟁취했다고 믿었던 로마 시민들은 곧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에 직면했다. 귀족들이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상황에서, 평민들의 불만은 점점 커져갔다. 이런 갈등이 폭발점에 달했을 때, 로마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평민 철수'가 일어났다. 그리고 이 투쟁의 결과로 탄생한 12표법은 인류 법제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공화정 초기의 사회 구조와 모순로마 공화정이 수립된 후 표면적으로는 모든 시민이 자유를 얻었지만, 실제 정치 현실은 달랐다. 사회는 크게 두 계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파트리키(귀족)는 혈통의 고귀함을 자랑하며 정치적 특권을 독점했고, 플레브스(평민)는 ..

History/Europe 202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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