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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역사 53. 스페인계승전쟁·보어전쟁과 제국 유지 비용 - 식민지 반발과 늘어나는 군사·예산 부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대영제국은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동시에 제국 유지에 따른 무거운 부담도 경험하기 시작했다. 특히 남아프리카에서 벌어진 보어전쟁은 영국에게 제국 경영의 현실적 한계를 깨닫게 해준 결정적 사건이었다. 광활한 영토와 수많은 식민지를 다스리는 것이 단순히 영광스러운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해졌고, 늘어나는 군사비와 행정비용은 영국 정부의 큰 고민거리가 되었다.제국 확장의 정점과 그 대가19세기 후반 영국 제국은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고 있었다. 인도 아대륙에서 캐나다, 호주에서 남아프리카까지, 지구상 육지 면적의 4분의 1이 영국의 지배 하에 있었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닐 정도로 영국의 영향력은 전 세계에 미치고 있었다.하지만 이러한 광..

History/Europe 2025.05.24

영국 역사 52. 대영박람회와 크리스털 팰리스 - 빅토리아 시대 산업 기술의 세계적 과시

1851년 5월 1일, 런던 하이드파크에 세워진 거대한 유리와 철골 건물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의 만국박람회가 막을 올렸다. 대영박람회(Great Exhibition)라고 불린 이 행사는 단순한 전시회를 넘어 영국이 세계에 자신의 산업적 우위와 기술적 성취를 과시하는 무대였다.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주도로 개최된 이 박람회는 19세기 중반 영국의 자신감과 야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산업혁명의 성과와 영국의 세계적 지위19세기 중반 영국은 산업혁명의 선두주자로서 전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증기기관의 발명과 개선, 철도와 운하의 건설, 방직업의 기계화 등을 통해 영국은 다른 나라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생산력을 갖추게 되었다. 맨체스터는 '세계의 공장'이라..

History/Europe 2025.05.24

영국 역사 51. 아편전쟁과 불평등 조약 - 청나라를 굴복시킨 대영제국의 동아시아 진출

19세기 중엽, 대영제국은 산업혁명의 성과를 바탕으로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팽창 과정에서 영국이 마주한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는 동아시아의 거대한 제국, 청나라였다. 수천 년간 중화사상에 기반해 폐쇄적인 대외정책을 유지해온 청나라와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영국 사이의 충돌은 필연적이었고, 그 결과가 바로 아편전쟁이었다.영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와 아편의 등장18세기 후반부터 영국에서는 중국산 차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오후 티타임이 영국 문화의 상징이 될 정도로 차는 영국인들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여기에 비단, 도자기, 향신료 등 중국의 사치품들도 영국 상류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문제는 중국이 영국 상품에 대해서는..

History/Europe 2025.05.24

영국 역사 50. 빅토리아 여왕 즉위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완성 - 세계 GDP 4분의 1을 지배한 절대 패권

1837년 6월 20일, 18세의 어린 공주 빅토리아가 영국의 왕위에 올랐다. 당시 아무도 이 작은 소녀가 63년간 재위하며 영국을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 만들어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빅토리아 시대(1837-1901)는 영국이 명실상부한 세계 패권국으로 군림한 황금기였다. 세계 GDP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전 세계 해상 무역의 절반을 장악하며, 런던이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우뚝 선 시대였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던 유일한 시기, 영국은 그야말로 '팍스 브리타니카'의 절정을 구가했다.빅토리아 여왕의 즉위와 초기 과제들빅토리아가 왕위에 오른 1837년의 영국은 여러 면에서 전환기에 있었다. 1832년 제1차 선거법 개정으로 정치 개혁이 시작되었고, 산업혁명..

History/Europe 2025.05.23

영국 역사 49. 1차·2차 대공황과 해외 식민지 수출 확대 - 위기를 기회로 바꾼 제국의 전략

19세기 영국은 '세계의 공장'이라 불릴 정도로 산업 생산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번영도 때로는 급격한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 1825년과 1847년에 발생한 두 차례의 대공황은 영국 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지만, 동시에 영국이 진정한 글로벌 제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금융 버블의 붕괴로 시작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영국은 해외 식민지와 새로운 시장으로 수출을 대폭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은 단순히 유럽의 강국을 넘어서 세계를 무대로 하는 제국이 되었고, 자유무역 체제를 전 세계에 확산시키는 주역이 되었다.산업혁명과 새로운 경제 체제18세기 말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은 19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다. 증기기관의 개량과 보급으로 생산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

History/Europe 2025.05.23

영국 역사 48. 1819년 피터루 대학살과 의회 개혁 운동 - 차티스트가 꿈꾼 민주주의

1819년 8월 16일 맨체스터 세인트 피터 광장에서 벌어진 사건은 영국 정치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의회 개혁을 요구하며 평화적으로 모인 6만 명의 시민들에게 기마대가 돌진해서 11명이 죽고 400여 명이 다쳤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워털루 전투를 빗대어 '피터루 대학살'이라고 불렀다. 외국의 적과 싸워 승리한 워털루와 달리, 피터루에서는 영국 정부가 자국민을 상대로 칼을 뽑은 것이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영국 사회에 정치 개혁의 필요성을 각인시켰고, 이후 30년간 계속된 의회 개혁 운동과 차티스트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사회 변화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1815년 이후 영국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전쟁 중에 급성장한 산업도시들에는 새로운 사회 계층이 형성되었다. 공장주..

History/Europe 202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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