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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역사 67. 로마 문제의 격화 - 교황령 축소와 라테라노 궁 이전을 중심으로

베네치아를 획득한 이탈리아 왕국에게는 이제 마지막 난관이 남아 있었다. 바로 로마였다. 영원한 도시 로마는 여전히 교황의 세속적 지배 하에 있었고, 프랑스군이 이를 보호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통일의 완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로마를 차지해야 했지만, 그 과정에서 가톨릭 세계 전체와 충돌할 위험이 있었다. 1866년 이후 로마 문제는 이탈리아 정치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며, 교황과 국왕 사이의 갈등은 점점 더 심화되어 갔다.교황령의 영토적 축소1860년대 중반 교황 비오 9세가 다스리는 교황령은 이미 크게 축소된 상태였다. 한때 이탈리아 중부의 광대한 지역을 차지했던 교황령은 이제 로마와 그 주변 지역, 그리고 라치오 일부만 남아 있었다. 1860년 사르데냐군이 마르케와 움브리아를 점령한 이후, 교황의 세속적..

History/Europe 2025.06.20

이탈리아 역사 66. 제3차 독립전쟁과 베네치아 획득 - 프로이센 동맹에서 쿠스토차 패배까지

1866년 이탈리아 왕국은 마침내 베네치아를 손에 넣을 기회를 맞게 된다. 1859년 제2차 독립전쟁으로 롬바르디아를 획득한 지 7년 만에, 이번에는 독일 통일 전쟁이라는 유럽 정세 변화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하지만 이 제3차 독립전쟁은 이탈리아에게 달콤한 승리만을 안겨주지는 않았다. 전쟁 과정에서 겪은 굴욕적인 패배와 복잡한 외교적 타협을 통해 결국 목표를 달성하긴 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프로이센과의 전략적 동맹1866년 초, 유럽의 정치 지형은 급변하고 있었다.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와의 최종 대결을 준비하며 독일 통일의 마지막 단계를 밟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탈리아 왕국은 절호의 기회를 포착한다. 오스트리아가 두 전선에서 동시에 싸워야 한다면, 베네치..

History/Europe 2025.06.20

이탈리아 역사 65. 1866년 제3차 독립전쟁과 프로이센 동맹을 통한 베네치아 획득 및 쿠스토차 패배의 교훈

1866년 여름, 이탈리아는 다시 한 번 전쟁터로 변했다. 이번에는 오스트리아로부터 베네치아를 되찾기 위한 제3차 독립전쟁이었다. 하지만 이전 전쟁들과는 상황이 달랐다.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 대신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이 동맹국이었고, 유럽 전체를 뒤흔들 독일 통일 전쟁의 일부로 진행되었다. 이탈리아군은 쿠스토차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지만, 프로이센의 승리 덕분에 베네치아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이탈리아에게 군사적 자존심에 상처를 주면서도 외교적 성과를 안겨준 복잡한 경험이었다.1866년 유럽 정세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갈등1860년대 중반 유럽은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프로이센의 부상이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1862년 총리가 된 후 프로이센은 '철혈 정책'..

History/Europe 2025.06.19

이탈리아 역사 64. 1861년 이탈리아 왕국 선포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즉위 및 토리노 임시 수도 체제

1861년 3월 17일, 토리노 팰리스 카리냐노에서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이 펼쳐졌다. 사르데냐-피에몬테 의회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신의 은총과 국민의 의지에 의한 이탈리아 국왕"으로 선포한 것이다. 천년 넘게 분열되어 있던 이탈리아 반도가 마침내 하나의 왕국으로 통합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국가의 출발은 장밋빛 미래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베네치아와 로마라는 미완의 과제, 남북 간의 경제적 격차, 그리고 통일 국가를 실질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현실적 도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이탈리아 왕국 선포의 배경가리발디의 천인대 원정이 성공하고 중부·남부 이탈리아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통합 주민투표가 통과된 후, 새로운 국가 체제 수립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1861년 1월 27..

History/Europe 2025.06.19

이탈리아 역사 63. 가리발디의 천인대 원정과 시칠리아·나폴리 왕국 정복을 통한 남부 이탈리아 해방

1860년 5월 5일 밤, 제노바 항구에서 두 척의 낡은 증기선이 조용히 출항했다. 붉은 셔츠를 입은 1,089명의 자원병들이 탄 이 배들은 시칠리아를 향해 나아갔다. 이들의 지휘관은 이탈리아 통일 운동의 전설적 인물 주세페 가리발디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 모험적인 원정은 불과 6개월 만에 남부 이탈리아 전체를 뒤바꾸고 이탈리아 통일을 현실로 만드는 기적을 일으켰다. 천인대의 모험은 19세기 가장 극적인 해방 전쟁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시칠리아 봉기와 원정 결정1860년 4월 4일, 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 반부르봉 봉기가 일어났다. 프란체스코 크리스피와 로몰로 카르파 등이 주도한 이 봉기는 시칠리아의 자치권 회복과 이탈리아 통일 참여를 목표로 했다. 하지만 부르봉 왕조의 군대가 신속하게 진압에..

History/Europe 2025.06.19

이탈리아 역사 62. 1859년 제2차 독립전쟁과 마젠타·솔페리노 전투를 통한 북부 이탈리아 해방

1859년 4월 29일 오스트리아군이 티치노 강을 건너 피에몬테를 침공하면서,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본격적인 무력 투쟁이 시작되었다. 이는 1848-49년 제1차 독립전쟁의 쓰라린 패배를 설욕할 기회였다. 플롬비에르 협정에 따라 프랑스군이 합류한 연합군은 오스트리아의 이탈리아 지배를 뒤흔들 강력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의 결과는 단순한 군사적 승리를 넘어 유럽 질서 전체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전쟁 발발과 초기 전황오스트리아의 침공 소식이 전해지자 나폴레옹 3세는 즉시 이탈리아 원정을 선언했다. "이탈리아를 해방시키겠다"는 그의 포고문은 전 유럽을 놀라게 했다. 프랑스군 제1군단은 마르세유에서 제노바로, 제2군단은 알프스 산맥을 넘어 피에몬테로 향했다. 총 12만 명의 프랑스군이 이탈리..

History/Europe 202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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