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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역사 85. 마니풀리테 수사와 제1공화국 붕괴 - 크락시와 안드레오티 스캔들로 무너진 전후 정치체제

1992년 2월 17일 밀라노의 한 요양원에서 벌어진 사소한 뇌물 사건 수사가 이탈리아 정치사를 뒤바꾸는 거대한 쓰나미의 시작이었다. '깨끗한 손들(Mani pulite)'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대대적인 부패 척결 수사는 전후 50년간 이탈리아를 지배했던 정치 시스템을 완전히 해체시켰다. 기독민주당, 사회당 등 기존 정당들이 연쇄적으로 몰락했고, 베티노 크락시와 줄리오 안드레오티 같은 거물 정치인들이 법정에 서게 되었다. 이로써 1946년 공화국 수립 이후 지속되어온 '제1공화국'이 종료되고, 이탈리아 정치는 근본적인 재편기를 맞게 되었다.마니풀리테 수사의 시작1992년 2월 17일, 밀라노 피오 알베르고 트리바울치오 요양원의 청소 용역업체 사장 마리오 키에사가 뇌물 혐의로 체포되었다. 사회당 소속 시의..

History/Europe 2025.06.24

이탈리아 역사 84. 탈공업화와 유럽공동체 가입 - 1980년대 재정적자와 마스트리히트 조약으로 가는 길

1970년대 말 두 차례 석유파동과 납의 시대를 겪으며 위기에 빠진 이탈리아는 1980년대 들어 경제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경험했다. 전통적인 중공업 중심에서 서비스업과 첨단 기술로의 전환이 가속화되었고, 동시에 유럽 통합에 적극 참여하며 국제적 위상을 회복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심각한 재정 적자가 누적되었고, 이는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 체결과 유럽연합 출범을 앞두고 이탈리아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가 되었다.1980년대 경제 구조의 변화1980년대 이탈리아 경제는 '탈공업화(deindustrializzazione)'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했다. 1950-60년대 경제기적을 이끌었던 철강, 화학, 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의 비중이 줄어들고, 대신 금융, 통신, 관광, 패션 등 서..

History/Europe 2025.06.24

이탈리아 역사 83. 납의 시대 - 적군파와 모로 납치 사건으로 얼룩진 정치 폭력의 암흑기

1968년 학생운동의 여파가 가라앉기 시작한 1970년대 초부터 1980년대 말까지 이탈리아는 극심한 정치 폭력에 시달렸다. 이 시기를 '납의 시대(Anni di piombo)'라고 부르는데, 총탄과 폭탄이 일상을 지배했던 암울한 현실을 표현한 말이다. 좌익 테러 조직인 적군파(Brigate Rosse)를 중심으로 한 극좌 세력과 극우 테러 단체들이 벌인 무차별 폭력은 이탈리아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특히 1978년 기독민주당 당수 알도 모로의 납치와 살해 사건은 이 시대의 비극을 상징하는 충격적 사건이었다.68운동 이후의 급진화1968년 학생운동은 이탈리아 사회에 깊은 균열을 남겼다. 초기에는 대학 개혁과 사회 민주화를 요구하는 평화적 시위였지만, 점차 기존 체제에 대한 근본적 거부와 폭력적 저..

History/Europe 2025.06.24

이탈리아 역사 82. 이탈리아 경제기적 - 피아트, 올리베티, 디자인 혁신으로 일군 고도성장의 황금기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말까지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눈부신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연평균 6%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며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급속히 변모한 이 시기를 '이탈리아 경제기적(miracolo economico italiano)'이라 부른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피아트(FIAT)의 자동차 혁명, 올리베티(Olivetti)의 기술 혁신, 그리고 전 세계를 매혹시킨 이탈리아 디자인이 있었다.경제기적의 배경과 조건전후 재건이 마무리된 1950년대 중반, 이탈리아는 고도성장을 위한 여러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마셜플랜을 통해 현대화된 산업 인프라, 풍부한 저임금 노동력, 그리고 안정된 정치 환경이 그것이다. 특히 남부 농촌지역에서 북부 공업지대로의 대규모 인구 이동은 산업화에 필요한 노동력을..

History/Europe 2025.06.24

이탈리아 역사 81. 헌법 제정과 기독민주당 주도 재건 - 경제원조와 농지개혁으로 시작된 전후 복구

1946년 6월 2일 국민투표로 공화국이 수립된 이탈리아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었다. 파시즘과 전쟁의 상처를 딛고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새로운 헌법이 필요했다. 동시에 전쟁으로 폐허가 된 경제를 재건하고, 여전히 봉건적 토지소유 구조가 남아있던 남부의 농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공화국 헌법의 탄생1946년 6월 국민투표와 함께 실시된 제헌의회 선거에서는 기독민주당(DC), 사회당(PSI), 공산당(PCI)이 주요 정당으로 부상했다. 이들 정당은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민주주의 공화국 건설이라는 공통 목표 아래 협력해야 했다.제헌의회는 1946년 6월부터 1948년 1월까지 약 1년 반 동안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 작업에 매진했다. 헌법 제정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은 국..

History/Europe 2025.06.24

이탈리아 역사 80. 1946년 공화국 수립과 여성 참정권 확립 - 국민투표의 승리와 새로운 민주주의의 탄생

1946년 6월 2일은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였다. 이날 이탈리아 국민들은 군주제를 유지할 것인가 공화제로 전환할 것인가를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동시에 제헌의회 선거도 치러졌는데, 이는 여성들이 처음으로 참여하는 선거이기도 했다. 54.3%의 찬성으로 공화제가 승리하면서 85년간 이어진 사보이 왕가의 통치가 끝나고 새로운 이탈리아 공화국이 탄생했다.해방 후 정치적 혼란과 기관 위기1945년 해방 이후 이탈리아는 심각한 정치적 공백 상태에 있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1943년 9월 로마를 도망쳤던 일로 국민들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바돌리오 정부도 연합군의 꼭두각시라는 비판을 받으며 정통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파시즘 붕괴 후 20년 만에 복귀한 정치 세력들은 새로운 질서..

History/Europe 202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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