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America

미국 역사 46. 트럼프 시대와 미국 우선주의 - 이민 제한, 미중 무역전쟁, 정치 양극화

SSSCH 2025. 5. 1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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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대선의 충격적 결과

2016년 11월 8일,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놀라운 대선 결과 중 하나가 발표됐다. 정치 경력이 전무한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리얼리티 TV 스타였던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선거인단 304 대 227로 확실한 승리를 거뒀지만, 일반 투표에서는 클린턴이 290만 표 더 많이 받았다는 사실은 미국 선거제도의 특수성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트럼프의 승리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미국인들의 깊은 불신을 보여주는 신호탄이었다.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선거 구호는 제조업 일자리 유출로 고통받던 러스트벨트 지역 백인 노동자들에게 특히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했다.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같은 전통적인 민주당 우세 지역에서 근소한 차이로 승리를 거둔 것이 트럼프 당선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의 부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은 "America First"로 요약된다. 이는 1930년대 고립주의를 연상시키는 구호로,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일방적 이익을 최우선시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었다. 취임 직후 트럼프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고,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NATO 동맹국들에게는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강력히 압박했으며, 이란 핵협정(JCPOA)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미국 우선주의는 단순히 외교정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트럼프는 국내 제조업 부활을 위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기업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Buy American, Hire American"이라는 행정명령을 통해 연방정부 조달과 고용에서 미국산과 미국인을 우선시하도록 했다. 동시에 대규모 감세와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려 했다.

이민 정책의 급격한 변화

트럼프 정부의 가장 논란이 많은 정책 중 하나는 이민 제한이었다. 취임 첫 주에 서명한 행정명령 13769호, 이른바 "무슬림 금지령"은 이란, 이라크,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예멘 등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90일간 금지했다. 이 조치는 즉각적인 법적 도전에 직면했고, 연방 법원들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이를 차단했다.

가장 상징적인 이민 정책은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이었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아름답고 거대한 장벽"을 건설하겠다고 공약했으며, 그 비용을 멕시코가 지불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의회의 반대로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여 국방부 예산을 전용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불법 이민자에 대한 단속도 대폭 강화됐다. 이민세관집행국(ICE)의 권한을 확대하고, '무관용' 정책을 시행하여 국경에서 부모와 자녀를 분리하는 조치는 국내외적으로 강한 비판을 받았다. 특히 철창 안에 갇힌 아이들의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정책의 비인도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미중 무역전쟁의 발발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중국과의 전면적인 무역전쟁으로 이어졌다. 2018년 3월, 트럼프는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이후 단계적으로 관세 대상 품목을 확대하여 총 3,6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의 관세 공세에 중국도 즉각 보복 관세로 맞대응했다. 대두를 비롯한 미국산 농산물, 자동차, 에너지 제품 등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양국 간 무역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 지적재산권 침해, 강제 기술이전 등을 문제 삼았지만, 근본적으로는 급성장하는 중국 경제에 대한 미국의 위기감이 작용했다.

무역전쟁은 양국 경제 모두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미국 농민들은 중국의 보복 관세로 큰 타격을 입었고, 소비자들은 가격 인상을 감수해야 했다.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세계 경제 성장률도 둔화됐다. 2020년 1월에야 1단계 무역합의가 체결됐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정치 양극화의 심화

트럼프 시대는 미국 정치 양극화가 극에 달한 시기였다. 트위터를 통한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소통 방식은 지지자들에게는 '진짜 목소리'로 받아들여졌지만, 반대자들에게는 대통령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로 비춰졌다. 주류 언론을 "인민의 적"이라고 부르며 공개적으로 적대시한 것도 사회 분열을 부추겼다.

트럼프 임기 동안 연방대법관 3명을 임명하면서 보수 우위의 대법원 구성이 굳어졌다. 특히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사망 후, 대선을 불과 6주 앞두고 에이미 코니 배럿을 지명한 것은 민주당의 강한 반발을 샀다. 이는 향후 수십 년간 미국 사법부의 성향을 결정짓는 중대한 변화였다.

2019년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인한 탄핵 절차는 정치 양극화의 정점을 보여줬다. 하원은 민주당이 주도하여 권력 남용과 의회 방해 혐의로 트럼프를 탄핵했지만,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양당 간 타협의 여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언론과 소셜미디어의 역할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가장 능숙하게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대통령이었다. 트위터를 통해 하루에도 수십 개의 메시지를 직접 발신하며 여론을 주도했다. 전통적인 언론 브리핑을 우회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필터 없이 전달하는 이 방식은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동시에 "가짜뉴스"라는 용어가 정치 담론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보도를 모두 가짜뉴스로 규정하며 언론의 신뢰성을 공격했다. 이는 언론의 감시견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었고, 사실과 의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탈진실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와 진보 성향의 CNN, MSNBC 간의 극명한 시각 차이는 미국 사회의 분열을 미디어가 어떻게 반영하고 증폭시키는지 보여줬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완전히 다른 해석이 나오면서, 미국인들은 점점 더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맞는 미디어만을 소비하는 '반향실 효과'에 갇히게 됐다.

경제 정책과 성과

트럼프노믹스의 핵심은 대규모 감세와 규제 완화였다. 2017년 말 통과된 세제개혁법(Tax Cuts and Jobs Act)은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대폭 인하했고, 개인소득세율도 전반적으로 낮췄다. 이는 레이건 시대 이후 최대 규모의 감세 조치였다.

규제 완화도 적극적으로 추진됐다. 특히 환경 규제와 금융 규제를 대폭 완화하여 기업 활동을 촉진하려 했다. 오바마 시대의 청정전력계획(Clean Power Plan)을 폐기하고,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의 주요 조항들을 약화시켰다.

코로나19 이전까지 미국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실업률은 5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주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트럼프는 이를 자신의 경제 정책 성과로 내세웠지만, 비판자들은 오바마 시대부터 이어진 경기 회복의 연장선이라고 평가했다.

보수주의 재편과 공화당의 변화

트럼프의 등장은 미국 보수주의와 공화당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전통적인 공화당의 자유무역, 재정 건전성, 도덕적 보수주의 대신 경제적 민족주의, 문화전쟁, 포퓰리즘이 전면에 나섰다. 부시 가문으로 대표되는 기성 공화당 세력은 주변부로 밀려났다.

트럼프 지지 기반의 핵심은 백인 노동계층이었다. 이들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으로 인한 피해자로 자신을 인식했고,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와 이민 제한 정책에 열광했다. 동시에 복음주의 기독교인들도 낙태 반대와 보수적 대법관 임명이라는 실리를 위해 트럼프의 개인적 도덕성 문제를 외면하고 그를 지지했다.

이러한 변화는 공화당 내부에서도 갈등을 일으켰다. 존 매케인, 미트 롬니 같은 전통적 공화당 인사들은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비판했지만, 대다수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의 높은 당내 지지율 앞에서 침묵하거나 동조했다.

인종 갈등과 사회 분열

트럼프 시대는 미국의 인종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시기이기도 했다. 2017년 8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시위와 이에 대한 트럼프의 애매한 반응은 큰 논란을 일으켰다. "양쪽 모두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그의 발언은 백인우월주의를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2020년 5월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된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트럼프 시대 인종 갈등의 정점이었다. 전국적인 시위가 확산되는 가운데, 트럼프는 "법과 질서"를 강조하며 강경 진압을 주장했다. 연방군 투입을 검토하고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는 그의 대응은 사회 분열을 더욱 심화시켰다.

동시에 트럼프는 백인 노동계층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정체성 정치를 구사했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공격, 소수인종 우대정책 비판, "서구 문명" 수호 등의 레토릭은 문화전쟁의 최전선에서 그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도구였다.

2020년 대선과 의회 난입 사태

2020년 대선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상황에서 치러졌다. 트럼프는 우편투표 확대를 선거 부정의 온상이라고 주장하며 선거 결과를 미리 의심하기 시작했다. 실제 선거에서 조 바이든에게 패배하자, 트럼프는 선거가 "도둑맞았다"고 주장하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2021년 1월 6일, 의회가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인증하는 날,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사당을 습격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트럼프가 지지자들에게 "의사당으로 행진하라"고 선동한 직후 벌어진 이 사건은 미국 민주주의 역사의 암흑의 날로 기록됐다. 5명이 사망하고 140여 명의 경찰관이 부상을 입은 이 사태는 트럼프에 대한 두 번째 탄핵으로 이어졌다.

결론

트럼프 시대는 미국 정치와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준 시기였다. 미국 우선주의라는 이름으로 추진된 고립주의적 외교정책, 보호무역주의, 이민 제한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국내적으로는 정치 양극화가 극에 달하면서 민주주의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다.

트럼프 현상은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한 것이었다. 세계화로 인한 제조업 쇠퇴, 인구 구성의 변화, 문화적 가치관의 충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난 후에도 그가 대표했던 정치적 흐름은 여전히 미국 정치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와 트럼프주의의 유산은 앞으로도 미국 정치와 사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전통적인 정치 규범과 제도에 대한 도전, 진실과 사실의 경계 모호화, 극단적 당파성의 일상화는 미국 민주주의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트럼프 시대는 미국이 스스로의 정체성과 미래 방향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 전환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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