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America

미국 역사 43. 레이건 혁명: 보수주의의 부활과 신자유주의 시대의 개막

SSSCH 2025. 5. 1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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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카우보이의 백악관 입성

1981년 1월 20일, 70세의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전직 할리우드 배우에서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거쳐 백악관에 입성한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나이 많은 대통령이었다. 취임 연설에서 그는 "정부는 우리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라고 선언한다. 뉴딜 이후 반세기 동안 이어진 큰 정부의 시대가 끝나고 있었다.

레이건은 완벽한 타이밍에 등장했다. 1970년대 말 미국은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었다.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경제는 침체되고 물가는 치솟았다. 이란 인질 사태로 국제적 위신은 바닥에 떨어졌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냉전은 다시 격화되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무기력해 보였다.

레이건은 낙관주의와 자신감으로 무장했다. "미국의 아침이 다시 밝았다"고 외쳤다. 단순명료한 메시지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작은 정부, 감세, 강한 국방을 약속했다. 전통적 가치와 개인의 자유를 강조했다. 보수주의 혁명이 시작되었다.

레이거노믹스의 실험

레이건의 경제정책은 "레이거노믹스"로 불린다. 공급측 경제학에 기반한 급진적 실험이었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주면 투자가 늘어나고, 그 혜택이 아래로 흘러내린다는 "트리클다운" 이론이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70%에서 50%로, 다시 28%로 대폭 인하한다.

동시에 정부 지출도 삭감한다. 복지 프로그램들이 축소되거나 폐지된다. 규제 완화도 추진된다. 환경, 노동, 안전 규제들이 기업 활동을 저해한다며 폐지하거나 완화한다. 연방준비제도 의장 폴 볼커는 고금리 정책으로 인플레이션과 싸운다.

초기엔 경제가 더욱 악화된다. 1981-82년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는다. 실업률이 10%를 넘는다. 하지만 1983년부터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한다. 인플레이션이 잡히고 성장률이 높아진다. 레이건은 "모닝 인 아메리카" 광고로 1984년 재선에 성공한다.

노동운동의 쇠퇴

1981년 항공관제사 파업은 전환점이 된다. 레이건은 연방 공무원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한다. 48시간 내에 복귀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위협한다. 1만 1천여 명의 관제사들이 실제로 해고된다. 노동운동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180도 바뀐다.

민간 부문에서도 노조의 힘이 약해진다. 제조업이 쇠퇴하고 서비스업이 성장하면서 노조 조직률이 떨어진다. 기업들은 생산시설을 노조가 약한 남부로 이전하거나 해외로 옮긴다.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크게 약화된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린다. 시장 원리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기업의 이윤 추구가 정당화된다. 주주 자본주의가 확산된다. 단기 실적에 집착하는 경영이 일반화된다. 빈부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강력한 국방과 스타워즈 계획

레이건은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한다. 국방비를 대폭 증액한다. 해군 함정을 600척으로 늘리고, 신무기 개발에 투자한다. B-1 폭격기, MX 미사일 등이 배치된다.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부르며 대결 의지를 분명히 한다.

1983년 전략방위구상(SDI)을 발표한다. 우주에서 적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스타워즈" 계획이다.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되었지만, 소련을 압박하는 효과가 있었다. 군비경쟁이 심화되면서 소련 경제는 더욱 피폐해진다.

중앙아메리카에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권에 맞선 콘트라 반군을 지원한다. 엘살바도르 우익 정부를 돕는다. 그레나다를 침공해 좌익 정권을 축출한다. "레이건 독트린"으로 전 세계 반공 세력을 지원한다.

이란-콘트라 스캔들

레이건 행정부도 스캔들을 피하지 못한다. 1986년 이란-콘트라 사건이 터진다. 이란에 비밀리에 무기를 팔고, 그 대금으로 니카라과 콘트라 반군을 지원한 것이다. 의회가 콘트라 지원을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비밀 작전을 벌인 것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란에 무기를 판 것이다. 이란은 미국인 인질을 억류한 적대국이었다. 테러리즘과 타협하지 않는다던 레이건의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동이었다. 올리버 노스 중령이 이 비밀 작전을 주도했다.

청문회가 열린다. 레이건은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의심한다. 대통령의 권위가 손상된다. 지지율이 급락한다. 여러 관리들이 기소되거나 유죄판결을 받는다. 레이건의 "테플론 대통령" 이미지에 금이 간다.

보수 연합의 형성

레이건은 다양한 보수 세력을 하나로 묶는 데 성공한다. 경제적 보수주의자들은 감세와 규제완화를 지지한다.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은 전통가치 수호에 동조한다. 반공주의자들은 강경한 외교정책을 환영한다. 남부 백인들은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이동한다.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가 정치 세력화한다. 제리 팔웰 목사가 이끄는 종교 우파는 낙태 반대, 학교 기도 부활, 동성애 반대를 주장한다. 진화론 교육을 반대하고 창조론을 가르치자고 한다. 문화전쟁이 시작된다.

여성 평등권 수정헌법(ERA)은 보수파의 반대로 좌절된다. 필리스 슐래플리가 이끄는 반대 운동이 성공한다. 전통적 성 역할을 고수하려는 세력이 힘을 얻는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backlash)이 일어난다.

사회 문화의 변화

1980년대는 물질주의의 시대였다. "그리드 이즈 굿(탐욕은 선이다)"이 시대정신이 된다.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가들이 영웅이 된다. 여피(Yuppie, 젊은 도시 전문직)들이 소비문화를 주도한다. 브랜드와 사치품이 유행한다.

대중문화도 보수화된다. 람보, 톱건 같은 영화들이 미국의 힘을 찬양한다. 가족 가치를 강조하는 시트콤이 인기를 끈다. MTV가 등장해 뮤직비디오 시대를 연다. 마이클 잭슨, 마돈나 같은 슈퍼스타가 탄생한다.

하지만 어두운 면도 있었다. 코카인이 유행하고 크랙이 도시를 황폐화시킨다. 에이즈가 확산되어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노숙자가 증가하고 도시 빈민가는 더욱 피폐해진다. 번영의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냉전의 종식과 고르바초프

레이건의 강경책은 의외의 결과를 낳는다. 1985년 고르바초프가 소련 지도자가 된다. 그는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추진한다. 군비경쟁의 부담을 견디지 못한 소련이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여러 차례 정상회담을 갖는다. 처음엔 긴장했지만 점차 신뢰를 쌓는다. 1987년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을 체결한다. 유럽에 배치된 중거리 미사일을 폐기하기로 한다. 냉전 해빙의 신호탄이었다.

레이건은 1987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연설한다. "고르바초프 서기장, 이 문을 여십시오! 이 장벽을 허무십시오!"라고 외친다. 2년 뒤 베를린 장벽은 실제로 무너진다. 레이건은 냉전 종식의 일등공신으로 평가받는다.

유산과 논란

레이건은 미국 정치의 지형을 바꿨다. 보수주의를 주류로 만들었다. 큰 정부에 대한 불신을 심었다. 자유시장 경제를 신봉하게 했다. 공화당을 보수정당으로 확고히 자리매김시켰다. 민주당조차 중도 우경화하게 만들었다.

경제적 성과는 엇갈린다. 인플레이션을 잡고 성장을 회복시켰다. 하지만 재정적자가 폭증했다. 무역적자도 심화되었다. 빈부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중산층이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외교적으로는 냉전 종식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중앙아메리카 개입, 이란-콘트라 스캔들 등은 오점으로 남는다. 국제법을 무시한 일방주의라는 비판도 있다.

결론

레이건 시대는 미국 현대사의 분수령이었다. 1930년대 이후 지속된 진보적 흐름이 역전되었다. 보수주의가 헤게모니를 잡았다.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고 시장의 힘이 강화되었다. 개인의 책임이 강조되고 집단의 연대가 약화되었다.

레이거노믹스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열었다. 규제완화, 민영화, 세계화가 가속화되었다. 금융자본주의가 실물경제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주주 자본주의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대체했다.

문화적으로도 큰 변화가 있었다. 물질적 성공이 미덕이 되었다. 종교적 보수주의가 정치에 개입했다. 문화전쟁이 일상화되었다. 사회적 연대보다 개인의 성취가 중시되었다.

레이건의 유산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작은 정부 이념은 여전히 강력하다. 감세 정책은 공화당의 필수 공약이다. 군사력을 통한 국제질서 유지도 계속된다. 하지만 불평등 심화, 인프라 노후화, 사회 안전망 약화 등의 문제도 누적되었다. 레이건 혁명은 미국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지만, 그 빛과 그림자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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