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정상회담과 새로운 시대
1989년 12월 지중해의 몰타에서 조지 H.W. 부시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만난다. 격동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역사적 회담이었다. 고르바초프는 "냉전이 끝났다"고 선언한다. 45년간 세계를 지배한 양극체제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해 가을은 믿기 힘든 속도로 변화가 일어났다. 폴란드에서 자유노조가 선거에서 승리했다. 헝가리가 오스트리아 국경의 철조망을 제거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벨벳 혁명이 일어났다.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정권이 무너졌다. 동유럽 전체가 민주화의 물결에 휩싸였다.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다. 동독 시민들이 망치와 곡괭이로 장벽을 부순다. 샴페인을 터뜨리며 축하한다. 분단의 상징이 사라지는 순간, 전 세계가 TV로 지켜본다. "역사의 종말"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독일 통일과 새로운 유럽
부시 행정부는 독일 통일을 적극 지지한다. 영국의 대처, 프랑스의 미테랑은 우려를 표시하지만, 미국은 통일 독일이 나토에 잔류한다는 조건으로 지원한다. 1990년 10월 3일, 동서독이 통일된다. 유럽의 지정학적 판도가 근본적으로 바뀐다.
소련은 급속히 약화된다. 발트 3국이 독립을 선언한다.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중앙아시아 공화국들도 독립을 준비한다. 고르바초프는 개혁을 시도하지만 보수파의 저항에 부딪친다. 1991년 8월 쿠데타가 일어나지만 실패한다.
보리스 옐친이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한다.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인 그는 고르바초프보다 급진적이다. 12월 소련 연방이 공식 해체된다. 망치와 낫의 붉은 깃발이 내려가고 러시아 삼색기가 오른다. 초강대국 소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중국과의 관계 악화
1989년 6월 4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비극이 일어난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을 중국 정부가 탱크로 진압한다. 수백에서 수천 명이 죽거나 다친다.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진다. 동유럽과 달리 중국의 민주화는 좌절된다.
부시 행정부는 제재 조치를 취한다. 무기 수출을 금지하고 고위급 교류를 중단한다. 하지만 완전한 단절은 피한다. 중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비밀리에 특사를 파견해 관계 개선을 모색한다.
미중 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다. 냉전 시대의 전략적 협력은 끝났다. 중국은 덩샤오핑 노선에 따라 경제 개혁은 지속하지만 정치 개혁은 거부한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표방한다. 미국과의 이념적 갈등이 시작된다.
파나마 침공과 마약 전쟁
1989년 12월, 미국은 파나마를 침공한다. 마누엘 노리에가 장군을 체포하기 위해서였다. 노리에가는 CIA의 협력자였지만 마약 밀매에 연루되어 있었다. 미국 시민 살해 사건을 계기로 군사 작전이 시작된다. "정의 작전"이라 명명된다.
2만 5천 명의 미군이 투입된다. 파나마군은 거의 저항하지 못한다. 노리에가는 바티칸 대사관에 피신했다가 결국 투항한다. 미국으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는다. 민간인 희생자가 수백 명에 달했지만 미국 내에서는 성공적인 작전으로 평가된다.
마약과의 전쟁이 본격화된다.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등 안데스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한다. 군사 원조와 고문단을 파견한다. DEA(마약단속국)의 활동이 확대된다. 하지만 마약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걸프전과 신세계질서
1990년 8월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다. 사담 후세인은 쿠웨이트가 역사적으로 이라크 영토였다고 주장한다. 석유 과잉생산으로 이라크 경제를 해쳤다고 비난한다. 국제사회는 충격에 빠진다.
부시 대통령은 즉각 대응한다. "침략은 용납될 수 없다"고 선언한다. UN 안보리에서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킨다. 미군을 사우디아라비아에 배치한다. "사막의 방패" 작전이 시작된다. 30개국의 연합군이 결성된다.
1991년 1월 17일, "사막의 폭풍" 작전이 개시된다. CNN이 바그다드 폭격을 생중계한다. 정밀 유도 폭탄이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한다. 하이테크 전쟁의 시대가 열린다. 100시간의 지상전 끝에 쿠웨이트가 해방된다. 이라크군은 궤멸적 타격을 입는다.
소련 붕괴와 미국의 승리
1991년 12월 25일, 고르바초프가 사임한다. 소련이 공식적으로 해체된다.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 남는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을 선언한다. 자유민주주의의 최종 승리라는 것이다.
부시는 "신세계질서"를 제창한다. UN을 중심으로 한 국제협력, 법치주의, 인권 존중을 강조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단극체제가 시작된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가 도래한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도 나타난다. 유고슬라비아가 붕괴하며 내전이 시작된다. 소말리아에서 인도적 위기가 발생한다. 구소련 지역의 핵무기 관리 문제가 대두된다. 냉전은 끝났지만 새로운 불안정이 시작된다.
국내 정치와 경제
부시는 외교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국내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1990-91년 경기침체가 발생한다. 실업률이 상승하고 경제 불안이 커진다. "레이건 민주당원"들이 민주당으로 돌아간다.
재정적자 문제로 세금을 인상한다. "내 입술을 읽어라, 새로운 세금은 없다(Read my lips, no new taxes)"는 공약을 어긴 것이다. 보수파의 지지를 잃는다. 팻 뷰캐넌이 공화당 경선에 도전한다.
LA 폭동이 일어난다. 로드니 킹 폭행 사건에 대한 무죄 평결이 계기가 된다. 흑인 사회의 분노가 폭발한다. 한인 상점들이 표적이 된다. 인종 갈등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도시 문제가 다시 부각된다.
NAFTA와 세계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협상이 진행된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간 자유무역을 추진한다. 부시 행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선다. 노동계와 환경단체는 반대한다. 일자리 유출을 우려한다.
세계화가 가속화된다.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늘어난다. 제조업 일자리가 해외로 이전된다. 서비스업과 정보산업이 성장한다. 실리콘밸리가 부상한다.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시작한다.
이민도 증가한다. 1990년 이민법이 개정되어 쿼터가 늘어난다.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서 이민자들이 몰려온다.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이 가속화된다. 영어 공용어 운동 같은 반발도 나타난다.
미디어와 대중문화
CNN이 뉴스 보도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24시간 뉴스 채널이 정착한다. 걸프전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CNN 효과"를 만든다. 정보의 즉시성이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MTV 세대가 성장한다. 그런지 록이 유행한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시대의 아이콘이 된다. 힙합이 주류 문화로 진입한다. 다문화주의가 확산된다.
할리우드는 블록버스터 시대를 연다. 특수효과가 발달한다. 《터미네이터 2》, 《쥬라기 공원》 같은 대작들이 나온다. 하지만 독립영화도 성장한다. 선댄스 영화제가 주목받는다.
결론
냉전의 종식은 세계사의 큰 전환점이었다.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으로 부상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역사의 종말"이라는 낙관론이 퍼졌다. 미국식 모델이 보편적 표준이 되는 듯했다.
걸프전은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입증했다. 첨단 무기와 정밀 타격으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베트남 신드롬"을 극복했다고 평가받았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확고해졌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들도 나타났다. 민족·종교 갈등이 분출했다. 테러리즘이 새로운 위협으로 부상했다. 경제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환경 문제가 글로벌 이슈가 되었다. 단극체제가 영원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신호들이었다.
부시는 훌륭한 외교 지도자였지만 국내 문제에는 소홀했다. 경제 침체와 사회 갈등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1992년 선거에서 젊은 빌 클린턴에게 패배한다. 냉전의 승리자가 국내 정치의 패배자가 되는 아이러니였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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