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y

언어철학 16. 스키너에서 촘스키로 – 언어심리학적 접근의 혁명적 전환

SSSCH 2025. 4. 1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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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반 언어에 대한 이해는 극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경험했다. 이 전환의 중심에는 B. F. 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의 행동주의적 언어관과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의 생득주의적 언어관 사이의 대립이 있었다. 이 논쟁은 단순한 학문적 의견 차이를 넘어, 인간 본성, 마음, 언어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을 대표한다. 스키너의 행동주의에서 촘스키의 생성문법으로의 전환은 언어학뿐만 아니라 심리학, 철학, 인지과학 전반에 걸친 '인지 혁명(cognitive revolution)'의 핵심 요소였다.

행동주의와 스키너의 언어관

행동주의의 기본 전제

20세기 초중반 심리학을 지배했던 행동주의는 과학적 객관성을 추구하며 직접 관찰 가능한 행동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행동주의자들은 내적 심리 상태나 의식과 같은 '블랙박스' 내부를 탐구하는 것은 비과학적이라고 여겼다. 대신 그들은 자극(stimulus)과 반응(response) 사이의 관계, 그리고 강화(reinforcement)의 역할에 초점을 맞췄다.

이 패러다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인 B. F. 스키너는 이러한 행동주의적 원칙을 언어 학습과 사용에 적용했다. 그의 저서 『언어행동(Verbal Behavior)』(1957)은 언어를 외적으로 관찰 가능한 '언어행동(verbal behavior)'으로 개념화했다.

스키너의 언어행동 이론

스키너에게 언어는 다른 행동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언어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했다:

  1. 조작적 조건화: 언어는 기본적으로 조작적 조건화(operant conditioning)를 통해 습득된다. 즉, 특정 발화가 강화되면 그 발화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아이가 "우유"라고 말하고 실제로 우유를 받게 되면, 그 언어 행동은 강화된다.
  2. 기능적 분석: 스키너는 언어 행동을 그 기능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분류했다:
    • 맨드(Mand): 요청이나 명령(예: "물 좀 주세요")
    • 택트(Tact): 환경에 대한 반응(예: "저기 새가 있어요")
    • 에코익(Echoic):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 하는 것
    • 인트라버벌(Intraverbal): 다른 언어적 자극에 대한 반응(예: 질문에 대한 대답)
    • 오토클리틱(Autoclitic): 다른 언어 행동을 수정하거나 자격을 부여하는 표현
  3. 환경적 결정론: 스키너는 언어 발달과 사용이 주로 환경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었다. 그에게 언어는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능력이라기보다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된 행동의 복잡한 집합이었다.
  4. 의미론적 접근 거부: 스키너는 전통적인 의미 이론을 거부하고, 대신 특정 상황에서 특정 발화가 강화되는 방식에 초점을 맞췄다. 그에게 '의미'란 화자, 청자, 상황 사이의 기능적 관계였다.

스키너의 접근법은 당시 지배적이던 행동주의 패러다임과 일치했으며, 언어를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객관적 방법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이론은 곧 젊은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촘스키의 비판과 생성문법의 등장

『스키너의 '언어행동' 비평』(1959)

1959년,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노암 촘스키는 스키너의 『언어행동』에 대한 비평을 발표했다. 이 비평은 단순한 서평을 넘어, 언어와 심리에 대한 행동주의적 접근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었으며, 인지 혁명의 중요한 촉매제가 되었다.

촘스키의 주요 비판점은 다음과 같다:

  1. 자극-반응 모델의 부적절성: 촘스키는 언어가 단순한 자극-반응 관계로 설명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전에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문장을 끊임없이 생성하고 이해한다. 이는 단순히 이전에 강화된 반응의 반복이 아니다.
  2. 창의성과 재귀성: 인간 언어의 특징인 창의성과 재귀성(문장 안에 문장을 내포할 수 있는 능력)은 행동주의 모델로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유한한 요소(단어와 규칙)를 사용하여 무한한 수의 문장을 생성할 수 있다.
  3. 추상적 구조의 중요성: 촘스키는 언어가 표면적인 발화 너머에 추상적인 구조적 규칙을 포함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존이 메리를 좋아한다"와 "메리가 존에게 좋아된다"는 표면적으로 다르지만 동일한 의미 관계를 표현한다.
  4. 언어 습득의 빠른 속도: 아이들은 제한된 언어 입력(input)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속도로 언어를 습득한다. 이는 단순한 강화와 모방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5. 심리적 실체의 무시: 스키너의 접근법은, 촘스키가 보기에, 언어 사용에 필수적인 마음의 내적 구조와 과정을 무시했다.

생성문법의 기본 원리

촘스키는 행동주의적 언어관을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안적인 언어 이론인 '생성문법(generative grammar)'을 발전시켰다. 이 이론의 핵심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보편문법(Universal Grammar): 촘스키는 모든 인간이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생득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능력은 '보편문법'이라 불리는 추상적 원리와 매개변수(parameters)의 집합으로 구성된다.
  2. 심층구조와 표면구조: 초기 생성문법은 문장이 심층구조(deep structure)와 표면구조(surface structure)라는 두 수준을 가진다고 제안했다. 심층구조는 의미론적 해석과 관련되고, 표면구조는 실제 발화되는 문장 형태다. 변형 규칙(transformational rules)은 심층구조를 표면구조로 변환한다.
  3. 언어 능력과 수행: 촘스키는 언어 능력(competence, 언어의 내재적 지식)과 언어 수행(performance, 실제 언어 사용)을 구분했다. 그는 언어학이 주로 능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4. 빈곤한 자극(Poverty of Stimulus): 아이들이 접하는 언어 입력은 그들이 궁극적으로 습득하는 복잡한 문법 체계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이것은 일부 언어 지식이 생득적이어야 함을 시사한다.
  5. 모듈성: 촘스키는 언어 능력이 다른 인지 능력과 구분되는 독립적인 정신 모듈이라고 제안했다. 이는 언어가 일반적인 학습 메커니즘이 아닌, 특화된 언어 습득 장치(Language Acquisition Device, LAD)를 통해 습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촘스키의 이론은 언어를 단순한 행동이 아닌, 복잡한 정신적 구조와 과정의 산물로 재개념화했다. 이는 언어와 마음에 대한 이해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행동주의에서 생득주의로: 철학적 함의

언어 본성에 대한 관점 변화

스키너에서 촘스키로의 전환은 단순한 이론적 논쟁을 넘어, 언어의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적 관점의 변화를 나타낸다:

  1. 환경주의에서 생득주의로: 스키너는 언어가 전적으로 환경에 의해 형성된다고 보았던 반면, 촘스키는 언어 능력의 핵심 측면이 생물학적으로 타고난다고 주장했다. 이는 오랜 철학적 논쟁인 '본성(nature) vs 양육(nurture)' 문제와 연결된다.
  2. 행동에서 정신으로: 행동주의는 마음을 '블랙박스'로 취급하고 관찰 가능한 행동에만 집중했다. 반면 촘스키는 내적 정신 구조와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심리학에서 마음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정당성을 회복시켰다.
  3. 경험주의에서 합리주의로: 철학적으로 볼 때, 이 전환은 로크와 흄으로 대표되는 경험주의 전통에서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로 대표되는 합리주의 전통으로의 이동을 반영한다. 촘스키 자신도 자신의 접근을 '데카르트적 언어학'으로 묘사했다.
  4. 기계론에서 생물학적 관점으로: 스키너의 접근은 인간을 기계적인 입력-출력 시스템으로 봤다면, 촘스키는 언어를 진화한 생물학적 기관(organ)으로 보는 관점을 발전시켰다.

의미론과 인지의 관계

이 패러다임 전환은 언어 의미와 인지의 관계에 대한 이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 형식적 의미론의 발전: 촘스키의 작업은 언어의 형식적, 구조적 측면을 강조했으며, 이는 몬태규(Montague) 문법과 같은 형식적 의미론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접근법은 언어 의미를 정밀한 논리적 체계로 분석할 수 있게 했다.
  2. 인지적 의미론: 동시에, 촘스키의 인지적 접근은 레이코프(Lakoff)와 랭애커(Langacker) 같은 언어학자들의 인지언어학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의미가 인간의 개념적 체계와 인지 과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3. 언어와 사고의 관계: 촘스키의 접근은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제기했다. 언어는 단순히 사고를 표현하는 도구인가, 아니면 사고 자체를 구조화하는가? 이는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과 같은 언어 상대성 이론과의 논쟁으로 이어졌다.

생성문법의 진화

촘스키의 초기 이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당한 진화를 겪었다. 이 변화는 언어의 본질과 습득에 대한 그의 기본 통찰을 유지하면서도, 이론의 형식적 구조를 정교화하고 수정했다:

표준 이론에서 원리와 매개변수로

  1. 표준 이론(Standard Theory, 1965년경): 심층구조와 표면구조를 연결하는 복잡한 변형 규칙 체계에 초점을 맞췄다.
  2. 확장된 표준 이론(Extended Standard Theory, 1970년대): 의미론적 해석이 심층구조만이 아니라 다양한 수준에서 일어날 수 있음을 인정했다.
  3. 관리와 결속 이론(Government and Binding Theory, 1980년대): 언어 간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보편적 원리와 언어별 매개변수의 개념을 도입했다. 이 접근법은 언어 다양성을 생득적 보편문법의 틀 내에서 설명하려 했다.
  4. 최소주의 프로그램(Minimalist Program, 1990년대~현재): 언어 체계를 가능한 한 경제적이고 최소한의 원리로 설명하려는 시도다. 이 접근법은 언어가 본질적으로 완벽한 계산 체계라고 제안한다.

I-언어와 E-언어의 구분

촘스키는 또한 'I-언어(Internalized Language)'와 'E-언어(Externalized Language)'를 구분했다:

  • I-언어: 개인의 마음/뇌에 내재된 언어 지식 체계
  • E-언어: 사회적, 외적 현상으로서의 언어

그는 언어학의 적절한 연구 대상이 I-언어라고 주장했으며, 이는 그의 접근법이 본질적으로 심리학적이고 생물학적임을 강조한다.

비판과 대안적 접근법

촘스키의 이론은 언어학과 인지과학에 혁명을 가져왔지만, 다양한 비판과 대안적 접근법도 발전했다:

경험주의의 귀환: 연결주의와 통계적 학습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연결주의(connectionism)는 생득적 언어 지식 없이도 단순한 학습 메커니즘이 복잡한 언어 패턴을 습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모델을 제시했다. 제프리 엘먼(Jeffrey Elman)과 같은 연구자들은 인공 신경망이 문법적 구조를 학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더 최근에는 통계적 언어 모델과 기계 학습이 제한된 입력에서도 상당한 언어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빈곤한 자극' 논증에 대한 도전을 제기한다.

기능주의와 사용 기반 이론

촘스키의 형식적 접근에 대한 대안으로, 마이클 토마셀로(Michael Tomasello)와 같은 학자들은 언어 습득이 사회적 상호작용과 일반적 인지 능력에 더 의존한다고 주장하는 사용 기반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 관점에서 문법은 실제 언어 사용 패턴으로부터 추상화된 것이다.

유사하게, 인지기능언어학(Cognitive-Functional Linguistics)은 문법 구조가 의사소통 기능과 인지적 제약에 의해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진화 언어학의 도전

촘스키는 오랫동안 언어가 의사소통을 위해 진화했다는 관점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언어의 핵심 특성, 특히 재귀성이 의사소통이 아닌 사고 구조화를 위해 진화했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반면,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와 같은 진화 심리학자들은 언어를 자연선택에 의해 의사소통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본능으로 보는 관점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관점 차이는 언어의 기원과 목적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인지과학과 심리철학에 미친 영향

스키너에서 촘스키로의 전환은 언어학을 넘어 인지과학과 심리철학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인지 혁명의 촉발

촘스키의 행동주의 비판은 더 넓은 '인지 혁명'의 핵심 요소였다. 이 혁명은 심리학의 초점을 외적 행동에서 내적 정신 과정으로 옮겼다. 1960년대에 시작된 인지과학의 학제간 분야는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모듈성 논쟁과 마음의 구조

촘스키의 언어 모듈성 주장은 마음의 구조에 대한 더 넓은 철학적 논쟁을 촉발했다. 제리 포더(Jerry Fodor)는 이 개념을 확장하여 『마음의 모듈성(The Modularity of Mind)』(1983)에서 인지 체계의 모듈식 구성에 대한 영향력 있는 이론을 발전시켰다.

반면, 연결주의자들과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지지자들은 마음이 덜 모듈화되어 있고 더 통합적이라고 주장한다.

인지신경과학적 접근

현대 인지신경과학은 브로카 영역(Broca's area)이나 베르니케 영역(Wernicke's area)과 같은 언어 처리 영역의 발견을 통해, 언어의 생물학적 기반에 대한 촘스키의 주장을 부분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뇌 연구는 또한 언어 처리가 보다 분산되어 있고 영역별로 덜 특화되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현대 언어철학에서의 위치

오늘날 스키너와 촘스키의 논쟁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종합적 관점의 등장

현대 언어 연구는 종종 생득주의와 경험주의의 요소를 통합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제 언어 습득과 처리에 생물학적 제약과 환경적 입력이 모두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쟁점은 이 두 요소의 상대적 기여와 상호작용 방식이다.

인공지능과 언어

현대 인공지능, 특히 대규모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s, LLMs)의 발전은 언어 능력을 위한 생득적 구조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을 다시 제기한다. GPT와 같은 모델은 명시적인 문법 규칙 없이도 상당한 언어 능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이 진정한 언어 이해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활발한 논쟁이 있다.

언어와 사회의 관계

현대 언어철학은 또한 언어의 사회적 차원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촘스키의 I-언어 강조에 대한 반응으로, 많은 학자들은 언어가 본질적으로 사회적 현상이며 공유된 관습과 사회적 상호작용의 맥락에서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론: 언어의 본질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

스키너에서 촘스키로의 전환은 언어와 마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행동주의의 단순한 환경 결정론에서 벗어나, 우리는 이제 언어를 복잡한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현상으로 인식한다.

이 논쟁의 유산은 언어의 본질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에 있다: 언어는 얼마나 독특하게 인간적인가? 그것은 얼마나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가? 언어와 사고는 어떻게 관련되는가? 언어는 개인적인가, 사회적인가?

5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이러한 질문들은 여전히 언어철학, 언어학, 인지과학의 핵심에 있다. 스키너와 촘스키의 논쟁은 단순한 역사적 일화가 아니라, 인간 본성의 핵심 측면에 대한 계속되는 탐구의 중요한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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