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y

언어철학 17. 번역의 불확정성과 퀸의 의미 홀리즘 – 언어와 의미의 네트워크적 이해

SSSCH 2025. 4. 18.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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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라드 밴 오먼 퀸(Willard Van Orman Quine, 1908-2000)은 20세기 분석철학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언어, 의미, 지식의 본질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탐구했다. 특히 그의 '번역의 불확정성(indeterminacy of translation)' 논제와 '의미의 홀리즘(holism)' 이론은 의미와 언어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에 중대한 도전을 제기했다. 퀸의 사상은 단순히 언어철학의 특정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언어, 지식, 실재의 관계에 대한 총체적 관점을 제시하는 포괄적인 철학적 비전이다.

퀸의 철학적 배경과 자연주의

퀸의 철학적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자연주의(naturalism)를 살펴봐야 한다. 퀸에게 철학은 과학과 연속선상에 있으며, 철학적 질문들은 궁극적으로 과학적 탐구의 틀 내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그는 철학이 과학보다 '선험적(a priori)'이거나 더 '근본적'이라는 생각을 거부했다.

이러한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퀸은 언어와 의미에 대한 '신화적' 또는 '초자연적' 설명을 거부했다. 그에게 언어는 자연 세계의 일부로서, 관찰 가능한 행동과 경험적 증거를 통해 연구되어야 했다. 이는 그의 행동주의적 경향과도 연결된다.

퀸의 자연주의는 또한 그의 유명한 '존재론적 상대성(ontological relativity)' 개념으로 이어진다. 이에 따르면, 존재에 관한 질문들은 항상 특정 이론적 틀이나 개념 체계에 상대적이다. "무엇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절대적인 답은 없으며, 오직 "이 이론에 따르면 무엇이 존재하는가?"라는 상대적 질문만 의미가 있다.

번역의 불확정성 논제

퀸의 가장 유명한 기여 중 하나는 『말과 대상(Word and Object)』(1960)에서 제시된 '번역의 불확정성(indeterminacy of translation)' 논제다. 이 논제는 근본적으로 다른 언어 간의 번역에는 원리적인 불확정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급진적 번역의 사고실험

퀸은 이 논제를 설명하기 위해 '급진적 번역(radical translation)'이라는 사고실험을 제안했다. 이는 언어학자가 이전에 전혀 접촉이 없었던 원주민 부족의 언어를 번역하려고 시도하는 상황을 가정한다.

언어학자는 오직 원주민의 행동과 환경적 자극에 대한 관찰만을 통해 번역을 시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언어학자와 원주민이 함께 있을 때 토끼가 지나가고 원주민이 "가바가이(Gavagai)"라고 말한다면, 언어학자는 이것이 "토끼"를 의미한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퀸은 이러한 관찰 증거만으로는 "가바가이"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가바가이"는 "토끼"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분리되지 않은 토끼 부분", "토끼의 시간적 단계", "토끼됨(rabbithood)"과 같은 다양한 대안적 해석도 가능하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대안적 해석들이 모두 관찰 가능한 증거와 일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확정성의 종류

퀸은 두 가지 유형의 불확정성을 구분한다:

  1. 번역의 불확정성(holophrastic indeterminacy): 이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전체 문장이나 표현의 번역이 여러 가지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서로 모순되는 번역 매뉴얼들이 모든 행동 증거와 일치할 수 있다.
  2. 지시의 불가해성(inscrutability of reference): 이는 개별 용어가 정확히 무엇을 지시하는지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바가이"가 토끼 전체, 토끼의 부분, 또는 토끼의 시간적 단계를 지시하는지는 행동 증거만으로는 결정할 수 없다.

퀸에 따르면, 이러한 불확정성은 단순히 실용적인 한계가 아니라 원리적인 문제다. 아무리 많은 증거를 수집하더라도, 항상 여러 가지 상충하는 번역 체계가 가능하다.

번역의 불확정성과 인식론

번역의 불확정성은 깊은 인식론적 함의를 갖는다. 그것은 언어와 세계 사이의 관계가 우리가 흔히 가정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며, 단어와 외부 대상 사이에 직접적이고 확정적인 대응 관계가 없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불확정성은 단지 다른 언어 간의 번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퀸은 사실상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사한 불확정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각자 약간씩 다른 개념 체계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의미의 홀리즘과 네트워크적 이해

불확정성 논제와 밀접하게 연관된 또 다른 핵심 개념은 퀸의 '의미 홀리즘(meaning holism)'이다. 이는 개별 문장이나 단어의 의미가 고립적으로 결정되지 않고, 전체 언어 체계나 믿음 네트워크 내에서의 위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확증 홀리즘(Confirmational Holism)

퀸의 의미 홀리즘은 그의 '확증 홀리즘' 또는 '두건 논제(Duhem thesis)'에서 출발한다. 이에 따르면, 과학적 가설은 결코 고립적으로 검증되거나 반증될 수 없으며, 항상 배경 이론이나 보조 가설의 맥락에서만 검증된다.

퀸은 이 통찰을 언어 전반으로 확장한다. 그에 따르면, 언어적 표현의 의미는 그것이 전체 언어 체계 내에서 담당하는 역할에 의해 결정된다. 단어나 문장은 다른 표현들과의 관계 네트워크 내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의미의 분자적 모델 vs. 홀리스틱 모델

전통적인 '분자적(molecular)' 의미 이론에서는 각 표현이 비교적 독립적이고 안정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가정한다. 단어의 의미는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이나 그것과 연관된 생각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퀸의 홀리스틱 모델에서는:

  1. 단어의 의미는 그것이 속한 언어 체계 전체와의 관계에 의존한다.
  2. 한 표현의 의미 변화는 전체 체계에 파급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3. 고립된 표현의 번역이나 이해는 불가능하며, 항상 더 넓은 맥락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은 의미를 고정된 실체가 아닌, 역동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관계의 네트워크로 본다.

언어와 이론의 유기체적 이미지

퀸은 언어와 이론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종종 유기체적 이미지를 사용했다. 그는 우리의 지식과 언어를 "경험의 주변부에서 접촉점을 가진 인간의 구성물의 힘의 장"으로 묘사했다.

이 비유에서 과학적 지식과 일상적 믿음은 하나의 연속체를 형성한다. 수학이나 논리학과 같은 이론적 영역은 이 구조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감각 경험과 직접 관련된 관찰 진술은 주변부에 있다. 중심부는 경험적 반증에 상대적으로 더 저항하지만, 원칙적으로는 어떤 믿음도 수정 불가능하지 않다.

분석-종합 구분의 거부

퀸의 가장 영향력 있는 논문 중 하나인 "경험주의의 두 가지 독단(Two Dogmas of Empiricism)"(1951)에서, 그는 전통적인 분석-종합 구분을 거부한다. 이 구분은 칸트 이래로 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논리실증주의에서 특히 강조되었다.

분석-종합 구분이란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 분석적 진술(analytic statements): 의미에 의해서만 참인 진술. 예: "모든 총각은 미혼이다."
  • 종합적 진술(synthetic statements): 세계의 사실에 의해 참이 되는 진술. 예: "비가 내린다."

분석적 진술은 경험과 독립적으로, 언어의 의미만으로 참이라고 여겨졌다. 종합적 진술은 경험을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퀸의 비판

퀸은 이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비판은 두 가지 주요 논점을 포함한다:

  1. 동의어 비판: 분석적 진술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동의어(synonymy)' 개념이 필요하다. 그러나 동의어 자체가 분석성에 의존하지 않고는 정의하기 어렵다. 이는 순환적 설명을 초래한다.
  2. 확증 홀리즘: 어떤 진술도 완전히 고립적으로 확증되거나 반증될 수 없다. 관찰과 이론적 가정 사이의 관계는 복잡하며, 어떤 진술의 진리값도 전체 이론적 맥락에 의존한다.

따라서 퀸에 따르면, 분석적/종합적 구분은 정도의 차이일 뿐, 본질적인 차이가 아니다. 모든 진술은 경험과의 관련성이라는 연속선상에 위치한다.

분석-종합 구분 거부의 함의

이 구분의 거부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철학적 함의를 갖는다:

  1. 선험적 지식의 문제화: 경험과 독립된 순수한 선험적 지식이라는 전통적 관념이 의문시된다.
  2. 언어와 사실의 얽힘: 언어적 관습과 사실적 내용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의미에 관한 질문과 사실에 관한 질문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3. 철학의 자연화: 철학적 분석은 경험 과학과 연속선상에 있으며, 철학에 특별한 선험적 지위를 부여할 수 없다.

지향성과 언어의 자연화

퀸의 자연주의적 접근은 또한 '지향성(intentionality)'의 문제, 즉 언어와 사고가 무언가에 '관한' 것일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지향적 용어의 제거 가능성

전통적으로 '믿다', '의미하다', '~에 관한 것이다'와 같은 지향적 용어는 물리주의적 또는 행동주의적 용어로 환원되기 어렵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퀸은 원칙적으로 이러한 지향적 용어들이 과학적 설명에서 제거되거나 재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향적 용어를 포함하는 '명제적 태도(propositional attitudes)' 보고(예: "존은 눈이 온다고 믿는다")가 철학적으로 문제적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보통의 대체 가능성 원칙이 실패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존은 샛별이 밝다고 믿는다"가 참이라고 해서 반드시 "존은 개밥바라기가 밝다고 믿는다"가 참인 것은 아니다(비록 '샛별'과 '개밥바라기'가 같은 대상—금성—을 지시하더라도).

'공감적(empathetic)' 접근 vs. '철저한(stern)' 접근

퀸은 지향적 용어를 다루는 두 가지 접근법을 구분했다:

  1. 공감적 접근: 이는 일상적인 심리적 용어를 받아들이고, 타인의 관점에서 그들의 믿음과 욕구를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이 접근법은 실용적으로 유용하지만, 과학적으로 엄밀하지 않다.
  2. 철저한 접근: 이는 순수하게 물리적, 행동적 용어로 인간 행동을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이는 과학적으로 더 엄밀하지만, 일상적 심리 설명의 풍부함을 놓칠 수 있다.

퀸은 두 접근법 모두 각자의 맥락에서 가치가 있다고 보았지만, 궁극적으로는 철저한 접근법이 과학적 이해를 위해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반개인주의와 사회적 언어

퀸의 또 다른 중요한 입장은 언어에 대한 그의 '반개인주의(anti-individualism)'다. 이는 언어의 의미가 개인의 머릿속 상태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언어의 사회적 차원

퀸에게 언어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현상이다. 언어의 의미는 개인의 내적 상태가 아니라, 공적으로 관찰 가능한 언어 사용 패턴과 언어 공동체의 사회적 관습에 기반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언어는 사회적 기술이다. 우리는 그것을 서로에게서 배운다. 언어가 어떤 사람에게 나타나는 방식에 대한 증거는 전적으로 타인의 언어적 행동과 비언어적 자극에 대한 그 사람의 반응에 있다."

내재주의와 외재주의

이러한 입장은 퀸을 의미에 관한 '외재주의(externalism)'의 선구자로 만든다. 의미의 외재주의는 언어적 의미가 화자의 머릿속에만 있지 않고, 환경과 사회적 맥락에도 의존한다는 견해다.

이는 때때로 퀴치키(David Kaplain), 퍼트남(Hilary Putnam), 버지(Tyler Burge) 등과 연관된 더 최근의 외재주의 이론들과 비교된다. 그러나 퀸의 외재주의는 주로 행동주의적 접근에서 비롯된 반면, 이후의 이론가들은 종종 다른 철학적 기반에서 출발했다.

퀸의 이론에 대한 비판과 논쟁

퀸의 이론은 많은 비판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주요 비판점들을 살펴보자:

분석-종합 구분 수호

일부 철학자들은 분석-종합 구분을 구하려 했다. 그라이스(H. P. Grice)와 스트로슨(P. F. Strawson)은 이 구분이 퀸이 생각했던 것처럼 쉽게 폐기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분석성의 개념이 일상적 언어 사용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언어에 대한 우리의 직관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지시의 불확정성에 대한 도전

크립키(Saul Kripke), 도널드 데이비드슨(Donald Davidson) 등은 다양한 방식으로 퀸의 불확정성 논제에 도전했다. 크립키는 자신의 '인과적 지시 이론'을 통해, 용어의 지시가 화자의 의도나 인과 사슬에 의해 더 확정적으로 고정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급진적 번역 사고실험의 현실성

일부 비평가들은 퀸의 급진적 번역 사고실험이 현실적인 언어학적 상황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언어학자들은 단순히 행동만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맥락, 비언어적 의사소통, 공유된 환경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해 번역 작업을 수행한다.

의미 홀리즘의 문제점

의미 홀리즘은 또한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1. 의사소통의 가능성: 만약 의미가 전체 믿음 체계에 의존한다면, 서로 다른 믿음 체계를 가진 두 사람이 어떻게 의미 있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가?
  2. 언어 학습의 문제: 홀리즘은 언어 학습을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아이들이 점진적으로 단어를 배우는 과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3. 개념적 변화: 한 사람의 믿음이 변할 때마다 모든 개념의 의미가 변한다면, 시간에 걸친 개념적 안정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퀸의 영향과 현대적 의의

퀸의 철학은 20세기 후반 철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유산은 다양한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연주의와 과학철학

퀸의 자연주의는 현대 과학철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철학이 과학과 연속선상에 있다는 관점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으며, 이는 오늘날 많은 철학자들이 공유하는 입장이다.

인지과학과 심리철학

퀸의 의미 이론은 초기 인지과학과 심리철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의 홀리즘은 마음과 언어에 대한 네트워크 모델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사회적 언어철학

퀸의 언어에 대한 사회적, 외재주의적 관점은 후대의 사회적 언어철학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언어를 사회적 관습과 실천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접근법은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과 함께, 현대 언어철학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했다.

형이상학의 부활

역설적으로, 퀸의 작업은 그가 비판했던 전통적 형이상학의 일종의 부활에도 기여했다. 그의 존재론적 상대성 논제는 존재와 실재에 관한 질문들을 철학적 담론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았다.

결론: 네트워크 속의 의미

퀸의 철학은 언어, 의미, 지식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그의 번역의 불확정성 논제와 의미 홀리즘은 의미가 고정되고 원자적인 단위가 아니라, 역동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네트워크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퀸에게 언어는 세계를 '거울처럼 비추는' 투명한 매체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고 조직하는 복잡한 도구다. 의미는 단어와 대상 사이의 단순한 대응 관계가 아니라, 언어적 표현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것들과 세계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관점은 언어와 실재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깊은 겸손함을 요구한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언어적 묘사는 항상 미완성이며, 우리의 개념적 틀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것이 세계에 대한 지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퀸은 우리가 언어와 이론을 계속해서 수정하고 개선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더 나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퀸의 철학은 언어와 의미의 본질에 대한 단순한 해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우리에게 더 복잡하고 미묘한 질문들을 제기하도록 도전한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위대한 철학의 진정한 표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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