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판단력비판의 위치와 의의
「판단력비판」은 칸트의 세 가지 비판서 중 마지막으로, 그의 철학 체계를 완성하는 중요한 저작이다. 칸트는 이전의 두 비판서에서 다음과 같은 두 세계의 간극을 남겨두었다:
- 자연의 세계: 「순수이성비판」에서 다룬 이론적 인식의 영역. 인과법칙이 지배하는 필연성의 세계.
- 자유의 세계: 「실천이성비판」에서 다룬 도덕의 영역. 도덕법칙이 지배하는 자유의 세계.
이 두 세계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바로 「판단력비판」의 주요 목표이다. 칸트는 이 저작을 통해 자연과 자유, 필연성과 목적성, 이론과 실천 사이의 매개를 시도한다.
판단력(Urteilskraft)의 개념
칸트는 판단력을 "특수한 것을 보편적인 것 아래에 포섭하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그는 판단력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 규정적 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 보편적인 것(법칙, 원리)이 주어지고, 특수한 것(사례)을 그 아래 포섭하는 판단. 이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이미 다루어졌다.
- 반성적 판단력(reflektierende Urteilskraft): 특수한 것만 주어지고, 그에 해당하는 보편적인 것을 찾아야 하는 판단. 「판단력비판」의 주요 탐구 대상이다.
반성적 판단력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특수한 형태나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해 보편적 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작동한다. 이는 특히 미적 판단과 목적론적 판단에서 중요하다.
판단력의 선험적 원리: 합목적성
반성적 판단력의 선험적 원리는 '합목적성(Zweckmäßigkeit, purposiveness)'이다. 이는 자연이 마치 우리의 인식 능력에 부합하도록 조직되어 있다는 가정이다.
합목적성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 주관적 합목적성: 대상이 우리의 인식 능력과 조화를 이룰 때 느끼는 쾌의 감정에 관련됨. 미적 판단의 기초.
- 객관적 합목적성: 자연 대상이 마치 목적을 가진 것처럼 조직되어 있다는 판단. 목적론적 판단의 기초.
칸트는 합목적성이 실제로 자연에 존재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는 우리가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도입하는 '통제적 원리(regulative principle)'이다.
2. 미적 판단의 분석
「판단력비판」의 첫 번째 부분인 '미적 판단력 비판'에서 칸트는 미(美)에 관한 판단, 즉 취미판단(Geschmacksurteil)의 본질을 분석한다.
미적 판단의 네 가지 계기
칸트는 미적 판단을 네 가지 관점에서 분석한다:
- 질(quality)의 관점: "이것은 아름답다"라는 판단은 대상에 대한 무관심적(disinterested) 만족에 기초한다. 이는 감각적 쾌락이나 도덕적 선함과 구별된다.
- 양(quantity)의 관점: 미적 판단은 개념 없이도 보편성을 요구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우리의 미적 판단에 동의하기를 기대한다.
- 관계(relation)의 관점: 아름다움은 대상의 목적 없는 합목적성(purposiveness without purpose)의 형식이다. 대상이 마치 목적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특정한 목적은 없다.
- 양상(modality)의 관점: 미적 판단은 공통감(sensus communis)에 기초한 필연성을 가진다. 이는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판단 능력을 전제한다.
미와 숭고의 구분
칸트는 미(the beautiful)와 숭고(the sublime)를 구분한다:
- 미(美): 형식과 한계를 가진 대상에서 발견된다. 조화로움, 균형, 질서와 관련되며, 쾌(pleasure)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유발한다.
- 숭고(崇高): 무한하거나 압도적인 것에서 발견된다. 처음에는 불쾌(displeasure)를 유발하지만, 이성이 개입하면서 더 높은 차원의 쾌로 전환된다.
숭고는 다시 두 가지로 구분된다:
- 수학적 숭고: 크기나 무한성과 관련됨. 예: 별이 빛나는 밤하늘, 광대한 사막.
- 역학적 숭고: 힘이나 위력과 관련됨. 예: 폭풍우, 화산 폭발.
숭고의 경험은 우리의 감성적 한계를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이성적 존재로서의 우월함을 일깨운다. 이는 자연의 세계와 자유의 세계 사이의 중요한 연결점이 된다.
천재와 예술
칸트는 예술 창작에서 '천재(Genie, genius)'의 역할을 강조한다. 천재는 "자연이 예술에 규칙을 부여하는 재능"이다. 천재는 모방할 수 없는 독창성과 모범이 되는 보편성을 동시에 가진다.
천재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독창성: 모방이 아닌 새로운 규칙을 창조한다.
- 모범성: 단순한 기이함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
- 자연적 재능: 학습이나 규칙으로 얻을 수 없는 타고난 능력이다.
- 무의식적 창작: 자신의 창작 과정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칸트에게 예술은 단순한 오락이나 감각적 즐거움의 원천이 아니라, 자연과 자유, 감성과 이성 사이의 조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영역이다.
3. 미적 판단과 인식론의 관계
미적 판단은 칸트의 인식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적 경험에서 상상력과 오성은 특별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한다.
자유로운 유희(free play)의 개념
칸트에 따르면, 미적 경험에서 상상력과 오성은 '자유로운 유희' 상태에 있다. 이는 개념적 인식과는 다른 방식의 조화이다:
- 개념적 인식: 상상력이 오성의 개념에 종속된다. 특정한 목적(인식)을 위한 규정된 조화.
- 미적 경험: 상상력과 오성이 자유롭게 상호작용한다. 특정한 개념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조화.
이러한 자유로운 유희는 쾌의 감정을 유발하며, 이것이 바로 미적 만족의 근원이다.
미적 이념(aesthetic idea)
칸트는 '미적 이념'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지만 어떤 특정한 개념으로도 충분히 표현될 수 없는 상상력의 표상"으로 정의한다. 미적 이념은 개념을 넘어서는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다.
미적 이념은 개념적 사고의 한계를 넘어서, 이성의 이념(영혼, 자유, 신 등)에 감각적 형태를 부여하려는 시도이다. 이를 통해 예술은 추상적인 이념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미적 판단의 주관성과 보편성
칸트의 미학론에서 가장 역설적인 부분은 미적 판단이 주관적이면서도 보편성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주관적 보편성'은 어떻게 가능한가?
칸트는 이를 '공통감(sensus communis)'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공통감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판단 능력으로, 미적 경험에서 우리의 주관적 반응이 타인과 소통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미적 판단의 보편성은 논리적이거나 객관적인 보편성이 아니라, 주관들 간의 공유 가능성에 기초한 간주관적(intersubjective) 보편성이다.
4. 목적론적 판단력
「판단력비판」의 두 번째 부분인 '목적론적 판단력 비판'에서 칸트는 자연의 유기체와 자연 전체를 목적론적으로 판단하는 문제를 다룬다.
유기체와 내적 합목적성
칸트는 유기체(생명체)가 일반적인 기계적 인과관계로는 완전히 설명될 수 없다고 본다. 유기체는 '내적 합목적성(inner purposiveness)'을 가진다:
- 유기체의 부분들은 전체를 위해 존재한다.
- 동시에 전체는 부분들을 위해 존재한다.
- 각 부분은 다른 부분들을 생산하는 능력을 가진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유기체는 "자기 자신의 원인이자 결과"인 '자연 목적(Naturzweck)'으로 간주된다.
기계론과 목적론의 이율배반
자연을 이해하는 두 가지 원리인 기계론(mechanism)과 목적론(teleology) 사이에는 겉보기에 이율배반이 존재한다:
- 정립(thesis): 모든 자연 현상은 기계적 법칙에 따라 생산된다.
- 반정립(antithesis): 일부 자연 현상(유기체)은 기계적 법칙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으며, 목적인을 필요로 한다.
칸트는 이 이율배반이 두 원리를 존재론적 주장이 아닌 방법론적 원리로 이해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자연 연구에서 가능한 한 기계적 설명을 추구해야 한다.
- 그러나 유기체와 같은 특정 현상은 마치 목적에 따라 조직된 것처럼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목적론적 판단은 구성적(constitutive) 원리가 아니라 규제적(regulative) 원리이다. 즉, 자연이 실제로 목적론적으로 조직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그런 관점을 채택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최종 목적과 궁극 목적
칸트는 자연의 '최종 목적(letzter Zweck)'과 '궁극 목적(Endzweck)'을 구분한다:
- 최종 목적: 자연 내에서의 최종 목적으로, 인간의 문화와 문명이다.
- 궁극 목적: 자연을 넘어서는 궁극 목적으로, 도덕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이러한 구분을 통해 칸트는 자연의 목적론을 도덕의 영역과 연결한다. 자연의 진정한 의미는 도덕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가능하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5. 판단력비판의 체계적 의의
「판단력비판」은 단순히 미학과 목적론에 관한 논의를 넘어, 칸트 철학 체계 전체를 완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의 매개
「판단력비판」의 주요 성과는 다음과 같은 이분법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다:
- 자연 vs. 자유
- 필연성 vs. 목적성
- 이론적 인식 vs. 실천적 행위
- 감성 vs. 이성
판단력, 특히 반성적 판단력은 이러한 대립들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미적 판단과 목적론적 판단은 자연이 우리의 도덕적 목적과 조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체계의 완성
칸트는 「판단력비판」을 통해 그의 비판철학 체계를 완성한다. 그는 인간 정신의 세 가지 기본 능력과 그에 상응하는 철학의 영역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 인식 능력(오성) - 「순수이성비판」 - 자연의 영역
- 욕구 능력(이성) - 「실천이성비판」 - 자유의 영역
- 쾌·불쾌의 감정(판단력) - 「판단력비판」 - 예술과 목적론의 영역
이로써 칸트는 인간 경험의 전체 영역을 포괄하는 철학적 체계를 완성한다.
자연에서 자유로: 문화의 의미
「판단력비판」에서 칸트는 자연에서 자유로 이행하는 매개체로서 '문화(Kultur)'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문화는 자연적 존재인 인간이 도덕적 존재로 발전하는 과정이다.
미적 교양은 이러한 문화적 발전의 중요한 부분이다. 미적 경험은 감성과 이성, 자연적 충동과 도덕적 의무 사이의 조화를 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해 인간은 단순한 자연적 존재에서 자유로운 도덕적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
6. 칸트 미학의 역사적 의의
칸트의 미학 이론은 18세기 미학 담론의 정점이자, 이후 근대 및 현대 미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18세기 미학과 칸트
칸트 이전의 18세기 미학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뉜다:
- 합리주의적 미학: 보마르텐(Baumgarten), 볼프(Wolff) 등이 대표하며, 미를 '감각적으로 인식된 완전성'으로 정의했다.
- 경험주의적 미학: 흄(Hume), 버크(Burke) 등이 대표하며, 미를 주관적 감정과 취향의 문제로 보았다.
칸트는 이 두 전통을 종합하여, 미적 판단의 주관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설명하는 새로운 미학 이론을 제시했다.
독일 관념론 미학에 미친 영향
칸트의 미학 이론은 독일 관념론 철학자들, 특히 쉴러(Schiller), 셸링(Schelling), 헤겔(Hegel)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쉴러: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에서 감성과 이성, 자연적 충동과 도덕적 의무 사이의 조화를 가능하게 하는 '미적 상태(aesthetic state)'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 셸링: 예술을 자연과 정신, 무의식과 의식의 통일로 보는 예술철학을 발전시켰다.
- 헤겔: 예술을 절대정신이 자기를 실현하는 중요한 단계로 보는 체계적인 미학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칸트의 미학을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그의 비판적 한계를 넘어서 더 형이상학적인 미학 이론을 발전시켰다.
현대 미학에서의 칸트
칸트의 미학은 20세기와 21세기의 미학 이론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 형식주의 미학: 칸트의 '무관심성'과 '형식' 강조는 클라이브 벨(Clive Bell)과 로저 프라이(Roger Fry) 같은 형식주의 미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 미적 경험 이론: 존 듀이(John Dewey)의 경험 중심 미학은 칸트의 미적 판단 이론과 대화한다.
- 현대 수용미학: 한스 로버트 야우스(Hans Robert Jauss)와 같은 수용미학자들은 칸트의 미적 판단의 주관적-보편적 성격에 주목했다.
- 미학과 정치의 관계: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와 같은 철학자들은 칸트의 미적 판단 이론을 정치적 판단에 적용했다.
이처럼 칸트의 미학 이론은 20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현대 미학 담론의 중요한 참조점으로 남아있다.
7. 목적론의 철학적 함의
칸트의 목적론은 과학철학과 생물학 철학에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생물학과 목적론
칸트는 생명 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기계론적 접근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의 유기체에 대한 목적론적 관점은 현대 생물학 철학에 여전히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 환원주의의 한계: 생명 현상이 단순한 물리·화학적 과정으로 완전히 환원될 수 있는가?
- 자기조직화 이론: 현대 복잡계 이론과 자기조직화 모델은 칸트의 '자연 목적' 개념과 흥미로운 평행선을 보인다.
- 목적론적 설명의 지위: 생물학에서 '기능(function)'과 '목적(purpose)'에 관한 설명은 여전히 중요하다.
칸트의 관점은 생물학적 환원주의와 생기론(vitalism) 사이의 중도적 입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자연의 이해와 해석학적 차원
칸트의 목적론은 자연과학에 '해석학적 차원'을 도입한다. 자연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인과법칙을 발견하는 것을 넘어, 의미와 목적의 패턴을 해석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생태학과 환경철학에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자연을 단순한 자원이나 기계적 체계가 아니라, 내재적 가치와 목적을 가진 복합적 전체로 보는 관점은 칸트의 목적론적 사고와 연결된다.
과학과 인문학의 통합
칸트의 목적론은 과학적 설명과 인문학적 이해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다. 그는 기계론적 자연관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도덕적·미적 경험을 위한 공간을 확보했다.
이러한 통합적 관점은 C.P. 스노우(C.P. Snow)가 지적한 '두 문화(two cultures)'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칸트의 비판철학은 과학적 세계관과 인문학적 가치관이 상호보완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8. 칸트 판단력비판에 대한 비판과 재평가
칸트의 「판단력비판」은 그 혁신성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비판을 받아왔다.
주요 비판점
- 형식주의적 한계: 칸트의 미학 이론이 내용보다 형식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비판이 있다. 특히 헤겔은 칸트의 미학이 예술 내용의 역사적·문화적 차원을 간과한다고 비판했다.
- 무관심성의 문제: 미적 경험에서 '무관심성'을 강조하는 칸트의 입장은 예술의 정치적·사회적 차원을 배제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 주관주의 vs. 객관주의: 칸트의 미적 판단 이론이 결국 주관주의에 머문다는 비판이 있다. 반면, 그의 이론이 충분히 주관적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반대 비판도 있다.
- 목적론의 지위: 칸트가 목적론을 단지 규제적 원리로 제한한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현대적 재평가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판단력비판」은 현대 철학에서 새롭게 재평가되고 있다:
- 해석학과 현상학에서의 재발견: 가다머(Gadamer), 메를로-퐁티(Merleau-Ponty) 등은 칸트의 미학과 판단력 이론에서 중요한 통찰을 발견했다.
- 정치철학적 재해석: 한나 아렌트는 칸트의 반성적 판단력 개념을 정치적 판단의 모델로 재해석했다.
- 생태학적 관점에서의 재평가: 현대 환경철학은 칸트의 목적론적 자연관에서 생태학적 사고의 단초를 발견한다.
- 인지과학과의 연결: 인지과학자들은 칸트의 미적 판단 이론이 인간 인지 과정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고 본다.
이처럼 「판단력비판」은 칸트의 세 비판서 중에서 현대 철학에서 가장 활발하게 재해석되고 있는 저작이다.
9. 칸트 철학의 종합적 평가
「판단력비판」으로 완성된 칸트의 비판철학은 근대철학의 정점이자 현대철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칸트 비판철학의 주요 성과
- 이론과 실천의 통합: 칸트는 과학적 세계관(현상계)과 도덕적 자유(예지계)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고, 이 둘을 하나의 일관된 철학 체계 안에 통합했다.
- 인간 정신 능력의 체계적 분석: 인식, 욕구, 감정이라는 인간 정신의 세 가지 기본 능력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각 영역의 선험적 원리와 한계를 명확히 했다.
- 근대적 주체의 정립: 칸트는 '초월적 주체'의 개념을 통해 근대적 주체성의 철학적 기초를 확립했다. 이는 이후 독일 관념론과 현대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철학적 방법론의 혁신: '비판'이라는 새로운 철학적 방법론을 확립하여, 독단적 형이상학과 회의주의를 모두 극복하고자 했다.
- 학문 분야의 체계화: 칸트는 이론철학, 실천철학, 미학, 목적론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철학 체계를 구축했다. 이는.현대의 학문 분류에도 영향을 미쳤다.
칸트 철학의 한계와 미완성
그러나 칸트 철학은 다음과 같은 한계와 미완성의 측면도 가지고 있다:
- 물자체 개념의 모순: 물자체를 인식 불가능하다고 하면서도 그것의 존재를 상정하는 점은 모순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 이원론적 세계관: 현상계와 예지계의 구분은 데카르트적 이원론을 새로운 형태로 반복한다는 비판이 있다.
- 역사적·사회적 맥락의 간과: 칸트의 초월적 접근은 인식과 도덕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 형식주의의 한계: 칸트 철학은 전반적으로 형식과 구조를 강조하여, 내용과 구체성을 간과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러한 한계들은 이후 피히테, 셸링,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관념론 철학자들이 칸트 철학을 극복하고 발전시키는 출발점이 되었다.
10. 결론: 칸트와 근대철학의 완성
「판단력비판」으로 완성된 칸트의 철학 체계는 근대철학의 정점이자 총결산으로 평가된다.
근대철학의 완성으로서의 칸트
칸트는 데카르트에서 시작된 근대철학의 주요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일정한 결론에 도달했다:
- 인식론적 문제: 합리론과 경험론의 대립을 종합하여, 인간 인식의 가능성과 한계를 체계적으로 밝혔다.
- 형이상학적 문제: 전통적 형이상학의 독단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형이상학적 질문의 중요성과 의미를 보존했다.
- 윤리학적 문제: 도덕의 보편적 원리를 확립하고, 자유와 도덕법칙의 관계를 밝혔다.
- 미학과 목적론: 미적 판단과 목적론적 판단의 특성을 분석하여, 자연과 자유, 필연성과 목적성 사이의 매개를 시도했다.
칸트는 이 모든 문제를 단일한 비판철학 체계 안에 통합함으로써, 근대철학의 파편화된 논의들을 하나의 일관된 체계로 완성했다.
현대철학으로의 전환점
동시에 칸트 철학은 현대철학으로 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 독일 관념론의 출발점: 피히테, 셸링, 헤겔은 칸트 철학의 내적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관념론 체계를 발전시켰다.
- 현상학의 선구: 칸트의 초월적 방법론은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접근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 분석철학의 토대: 칸트의 개념적 분석과 비판적 접근은 분석철학 전통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
-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의식: 칸트가 제기한 주체성, 자유, 한계의 문제는 이후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에서 새롭게 전개되었다.
이처럼 칸트 철학은 근대철학의 완성이자 현대철학의 시작점으로서, 철학사의 중요한 분기점을 이룬다.
칸트 이후의 철학적 과제
칸트 이후의 철학은 그가 남긴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시켜 왔다:
- 이성의 비판적 자기성찰: 칸트가 시작한 이성의 비판적 자기성찰은 현대철학의 중요한 방법론적 원칙이 되었다.
- 이론과 실천의 통합: 지식과 도덕, 과학과 윤리의 관계는 여전히 현대철학의 중요한 과제이다.
- 인간 주체성의 의미: 칸트가 제시한 초월적 주체 개념은 현대의 주체성 논의의 출발점이 되었다.
- 예술과 미적 경험의 철학적 의미: 칸트의 미학 이론은 현대 예술철학과 미학의 중요한 참조점이 된다.
- 자연과 생명의 목적론적 이해: 칸트의 목적론은 현대 생태철학과 생명윤리학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칸트가 제기한 이 문제들은 20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철학적 사유의 중심에 있다. 이것이 바로 칸트가 "철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부른 그의 혁명적 사유가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이유이다.
임마누엘 칸트의 삶과 철학을 관통하는 두 가지 질문,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와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는 여전히 우리 시대의 근본적인 물음으로 남아있다. 그의 세 번째 질문 "나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는 이성의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도덕적 진보와 영구평화를 향한 인류의 여정에 대한 칸트의 낙관적 비전을 담고 있다. 이 세 질문이 수렴하는 궁극적 물음,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철학적 사유의 영원한 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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