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비판철학은 근대철학에 혁명적인 전환점을 가져왔다. 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으로 인간 인식의 구조와 한계에 대한 깊은 통찰이 가능해졌지만, 동시에 많은 철학적 과제와 난제를 남기기도 했다. 특히 '현상계'와 '물자체'의 구분은 새로운 문제를 던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서 독일 관념론이 태동했다.
1. 독일 관념론의 등장 배경
칸트 철학은 경험론과 합리론의 한계를 극복하고 종합하려는 위대한 시도였다. 그러나 그의 체계에는 몇 가지 핵심적인 난제가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물자체(Ding an sich)'와 '현상' 사이의 분리였다. 칸트에 따르면 우리는 사물 자체를 직접 인식할 수 없고, 오직 우리의 인식 틀을 통해 나타나는 현상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구분은 인식론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으나, 존재론적으로는 많은 의문점을 남겼다.
독일 관념론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칸트의 비판철학을 출발점으로 삼되, 그것을 더욱 체계화하고 완성시키려 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한 목표는 '주관'과 '객관', '정신'과 '자연', '자아'와 '비자아'의 분리를 극복하는 통합적인 철학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2.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
2.1 피히테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피히테는 1762년 독일 라메나우(Rammenau)의 가난한 직조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재능을 인정받아 후원을 통해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예나(Jena)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게 된다. 그러나 무신론 논쟁에 휘말려 교수직을 잃고, 이후 베를린 대학교의 초대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피히테는 철학적 저술 활동뿐만 아니라 독일의 국민적 각성과 민족주의 운동에도 참여했다.
피히테가 활동하던 시기는 프랑스 혁명의 여파와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 전체가 격변하던 때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그의 철학이 단순한 이론적 탐구를 넘어 실천적 의미를 강조하게 된 맥락을 제공한다.
2.2 '지식론(Wissenschaftslehre)'과 절대적 자아
피히테의 철학적 출발점은 칸트의 '선험적 통각(transcendental apperception)'이다. 칸트가 말한 선험적 통각, 즉 "나는 생각한다"라는 의식의 통일성에서 피히테는 모든 철학의 근본 원리를 발견하려 했다. 그의 주저 『전체 지식론의 기초(Grundlage der gesamten Wissenschaftslehre)』(1794)에서 그는 자신의 철학 체계를 '지식론'이라 명명했다.
피히테 철학의 핵심은 '절대적 자아(absolute Ich)'이다. 이 자아는 단순한 개인적 의식이 아니라, 모든 존재와 앎의 근원이 되는 원리다. 그는 세 가지 근본 원리를 제시한다:
- 첫 번째 원리: 자아는 근원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정립한다. (A=A)
- 두 번째 원리: 자아는 비자아(물질 세계)를 자신에게 대립시킨다. (A≠~A)
- 세 번째 원리: 자아와 비자아는 서로를 제한하며 상호작용한다.
이러한 세 원리를 통해 피히테는 자아의 활동성을 강조한다. 자아는 단순히 수동적으로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세계를 구성하고 변형시키는 실천적 활동의 주체다.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행위(Tathandlung)'의 철학이다.
2.3 자유와 도덕의 철학
피히테 철학의 또 다른 특징은 강한 도덕적·실천적 측면이다. 그에게 철학은 단순한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인간의 자유와 도덕적 사명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모든 계시 비판의 시도(Versuch einer Kritik aller Offenbarung)』(1792)와 『자연법의 기초(Grundlage des Naturrechts)』(1796)에서 그는 인간의 자유와 도덕적 책임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제시한다.
피히테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주관적으로 구성하는 세계 속에서 도덕적 행위를 통해 자유를 실현한다. 자아는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Streben)을 통해 발전하며, 이러한 노력이 바로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그의 철학에서 자아의 자유는 단순한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도덕적 완성을 향한 지속적인 활동으로 이해된다.
2.4 피히테의 사회·정치 사상
피히테는 또한 『독일 국민에게 고함(Reden an die deutsche Nation)』(1808)에서 민족의식과 국가의 역할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다. 프랑스의 점령 하에 있던 독일의 상황에서 그는 교육을 통한 국민적 각성을 촉구했다. 그의 이상적인 국가는 모든 시민이 자유롭게 도덕적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공동체였다.
피히테의 '폐쇄적 상업국가(Der geschlossene Handelsstaat)'(1800) 개념은 국가가 경제적 자급자족을 통해 시민의 복지를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이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 사회주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사회·경제적 비전이었다.
3.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Schelling, 1775-1854)
3.1 셸링의 생애와 철학적 발전
셸링은 1775년 레온베르크(Leonberg)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튀빙겐 신학교에서 헤겔, 횔덜린과 함께 수학했으며, 불과 23세의 나이에 예나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셸링의 철학은 그의 생애를 통해 여러 단계로 발전했는데, 초기의 자연철학에서 시작하여 동일성 철학, 예술철학, 그리고 후기의 신화와 계시의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탐구했다.
셸링은 동시대의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하나의 완결된 체계를 구축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그는 종종 '변화하는 철학자'로 불리기도 한다.
3.2 자연철학과 '무의식적 정신'
셸링의 초기 철학은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에 영향을 받았지만, 곧 자신만의 독창적인 '자연철학'을 발전시켰다. 『자연철학의 관념(Ideen zu einer Philosophie der Natur)』(1797)과 『자연철학의 체계에 관한 서론(Erster Entwurf eines Systems der Naturphilosophie)』(1799)에서 그는 자연을 단순한 기계적 과정이 아닌 살아있는 유기체로 파악했다.
셸링에게 자연은 '무의식적 정신'이다. 그는 물질과 정신의 근본적인 동일성을 주장하며, 자연은 점차 자신의 정신성을 실현해가는 역동적인 과정에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은 당시 낭만주의 사조와 맞닿아 있으며, 괴테의 자연관과도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
셸링의 자연철학은 주관과 객관,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을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그에게 자연은 단순히 자아가 구성하는 타자(비자아)가 아니라, 자아와 동일한 근원에서 비롯된 자아의 거울이며 자아 발견의 장이다.
3.3 동일성 철학과 절대자
셸링은 이후 '동일성 철학(Identitätsphilosophie)'을 발전시켰다. 『초월적 관념론의 체계(System des transzendentalen Idealismus)』(1800)와 『나의 철학체계의 서술(Darstellung meines Systems der Philosophie)』(1801)에서 그는 자연과 정신, 실재와 이상, 객관과 주관의 근본적 동일성을 주장한다.
셸링에게 '절대자(das Absolute)'는 모든 대립을 초월하는 궁극적 실재다. 이 절대자는 단순한 실체가 아니라 역동적인 자기전개의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자연과 정신이 분화되어 나온다. 그는 절대자를 '무차별점(Indifferenzpunkt)'으로 표현하기도 했는데, 여기서는 모든 대립과 구별이 사라지고 순수한 동일성만이 남는다.
이러한 동일성 철학은 스피노자의 일원론적 실체 개념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셸링은 스피노자의 정적인 실체 개념을 역동적인 발전 과정으로 재해석했다.
3.4 예술철학과 미적 직관
셸링의 또 다른 중요한 공헌은 예술철학 분야에 있다. 그는 『초월적 관념론의 체계』에서 예술을 철학의 '기관(Organon)'이자 '문서(Dokument)'로 규정했다. 즉, 예술은 철학적 진리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표현하는 특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셸링에 따르면, 철학적 반성은 항상 주관과 객관의 분리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절대자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반면 예술적 직관은 이러한 분리를 뛰어넘어 절대자를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그에게 예술은 '무한한 것을 유한한 것으로 표현'하는 활동이며, 예술가의 창조는 자연의 창조적 활동과 유사하다.
이러한 셸링의 예술관은 당대 낭만주의 문학과 예술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노발리스나 슐레겔 형제와 같은 낭만주의 문인들에게 철학적 근거를 제공했다.
3.5 신화학과 계시철학
셸링의 후기 철학은 신화와 계시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신화의 철학(Philosophie der Mythologie)』과 『계시의 철학(Philosophie der Offenbarung)』에서 그는 인류의 신화적·종교적 의식이 발전하는 과정을 역사철학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셸링에게 신화는 단순한 허구나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 의식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단계다. 이는 인류가 절대자를 인식하고 표현하려는 시도로서, 이성적 철학과 마찬가지로 진리를 담고 있다. 특히 그는 기독교의 계시가 가진 철학적 의미를 재해석하려 했으며, 이는 키르케고르와 같은 후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4.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이 가지는 의의
4.1 칸트 철학의 확장과 극복
피히테와 셸링은 모두 칸트 철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체계를 완성하려 했다. 칸트가 남긴 이원론적 구도(현상계와 물자체, 이론이성과 실천이성)를 일원론적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는 독일 관념론의 공통된 목표였다. 특히 그들은 칸트가 인식 불가능한 영역으로 남겨둔 '물자체'의 문제를 자아의 활동이나 절대자의 자기전개를 통해 해결하려 했다.
4.2 주관성과 객관성의 새로운 관계 정립
피히테의 자아 중심 철학과 셸링의 동일성 철학은 주관과 객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피히테에게 객관 세계는 자아의 실천적 활동을 위한 '소재'로서 의미를 가진다면, 셸링에게 자연과 정신은 동일한 근원에서 나온 상보적 현상이다. 둘 다 데카르트 이래로 서양철학을 지배해온 주객 이원론을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4.3 철학적 체계 구축의 시도
피히테와 셸링은 모두 종합적인 철학 체계를 구축하려 했다. 이론철학과 실천철학을 통합하고, 인식론·존재론·윤리학·정치철학·예술철학을 포괄하는 체계적 사유를 추구했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의 절대정신 철학으로 이어지며 독일 관념론의 정점을 이루게 된다.
4.4 낭만주의 사조와의 연관성
특히 셸링의 철학은 당대 낭만주의 운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자연의 유기체적 해석, 예술의 형이상학적 위상 강조, 무의식과 신화에 대한 관심 등은 낭만주의 문학과 예술의 철학적 근거를 제공했다. 이는 철학이 순수한 학문적 탐구를 넘어 당대의 문화적·예술적 흐름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5. 피히테와 셸링 철학의 한계와 비판
5.1 현실성과 구체성의 결여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은 종종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체계 지향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현실적 경험과 구체적 현상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점은 이후 헤겔에 의해서도 지적된다. 피히테의 자아 철학은 구체적인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고, 셸링의 절대자 개념은 종종 신비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5.2 체계의 미완성
셸링의 경우 하나의 완결된 체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의 철학적 탐구는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지만, 그 사이의 연관성과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피히테 역시 자신의 '지식론'을 여러 차례 다시 쓰고 수정했는데, 이는 체계의 불완전성을 보여주는 증거로 볼 수 있다.
5.3 헤겔의 비판과 극복
헤겔은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을 각각 '주관적 관념론'과 '객관적 관념론'으로 규정하고, 이를 자신의 '절대적 관념론'으로 통합·극복하려 했다. 그는 피히테의 철학이 주관적 측면에 치우쳐 객관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했으며, 셸링의 절대자 개념이 '모든 소가 검은 밤'과 같이 구별 없는 추상적 동일성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6. 맺음말: 피히테와 셸링, 그 이후의 철학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은 근대철학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다. 그들은 칸트의 비판철학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 한계를 극복하려 했으며, 이는 이후 헤겔의 체계 철학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력은 단순히 헤겔로의 가교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피히테의 자아 철학은 실존주의와 현상학에, 셸링의 자연철학과 예술철학은 생철학과 해석학에 각각 영향을 미쳤다. 특히 셸링의 후기 철학에서 나타나는 무의식과 신화에 대한 관심은 20세기의 심리학(융)과 종교학에도 흔적을 남겼다.
독일 관념론은 단순히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철학적 사유를 자극하는 살아있는 전통이다. 피히테와 셸링이 제기한 문제들—자아와 세계의 관계, 자연의 존재론적 지위, 예술과 철학의 관계, 인간 자유의 의미 등—은 현대 철학에서도 중요한 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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