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초 팬데믹의 시작
2020년 1월 31일 브렉시트를 완료한 영국은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글로벌 브리튼' 전략을 본격 추진하며, 레벨링 업(Levelling Up) 정책으로 지역 격차 해소에도 나서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곧 전 세계를 강타하며 영국의 모든 계획을 뒤바꿔 놓았다.
3월 초까지만 해도 영국 정부의 대응은 상당히 느긋했다. 존슨은 "손 씻기와 '해피 버스데이' 노래 두 번 부르기"를 권장하며 일상 생활 유지를 강조했다. 정부의 초기 전략은 '집단 면역(herd immunity)'이었다. 인구의 60% 정도가 감염되면 자연스럽게 면역이 형성될 것이라는 과학적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3월 중순 상황이 급변했다. 임페리얼 컬리지 런던의 닐 퍼거슨 교수팀이 발표한 모델링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51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예측이었다. 이탈리아 북부의 참혹한 상황도 영국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3월 16일, 정부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고했다. 불필요한 접촉을 피하고, 재택근무를 하며, 펍과 레스토랑 방문을 자제하라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강제성은 없었고,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했다.
전국 봉쇄와 초기 대응의 혼란
3월 20일, 존슨은 마침내 펍, 레스토랑, 체육관 등의 영업 중단을 명령했다. 그리고 3월 23일 오후 8시 30분, 역사적인 TV 연설을 통해 전국 봉쇄(lockdown)를 발표했다. "집에 머물러라, NHS를 보호하라, 생명을 구하라"는 메시지는 간결하고 강력했다.
영국 역사상 평시에 이런 광범위한 자유 제약이 가해진 것은 처음이었다. 운동을 위한 하루 한 번 외출과 필수품 구매를 제외하고는 집을 떠날 수 없었다. 학교도 문을 닫고, 결혼식과 장례식도 최소 인원만 참석할 수 있었다. 경찰은 불필요한 이동을 단속했고,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것도 금지되었다.
하지만 초기 대응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개인보호장비(PPE) 부족으로 의료진들이 위험에 노출되었고, 요양원에서는 적절한 보호 없이 대량 감염이 발생했다. 검사 능력도 부족해서 증상이 있어도 검사를 받기 어려웠다. NHS의 과부하를 막기 위해 병원 침상을 비우는 과정에서 요양원으로 감염자들이 이송되기도 했다.
4월 초, 존슨 총리 자신도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증상이라고 했지만, 4월 5일 병원에 입원했고 6일에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도미닉 라압 외무장관이 총리 권한을 대행했지만,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최고 지도자의 부재는 큰 충격이었다.
경제적 충격과 정부 지원책
팬데믹은 영국 경제에 전례 없는 타격을 주었다. 2020년 2분기 GDP는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급락했다. 특히 서비스업이 타격이 컸는데, 관광, 숙박, 외식업은 거의 마비 상태가 되었다. 실업률도 급등해서 실업 수당 신청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
정부는 전례 없는 규모의 경제 지원책을 내놓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코로나바이러스 일자리 유지 제도(Coronavirus Job Retention Scheme)', 즉 '휴직 지원 제도(furlough scheme)'였다. 정부가 직원 급여의 80%(월 최대 2,500파운드)를 지원해서 기업들이 직원을 해고하지 않도록 했다. 이 제도로 1,170만 개의 일자리가 보호되었다.
자영업자들을 위해서는 '자영업자 소득 지원 제도'를 도입했다. 평균 소득의 80%를 지원해서 프리랜서와 소규모 사업자들의 생계를 도왔다. 또한 사업체 요금 면제, 부가가치세 유예, 대출 보증 등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았다.
이런 지원책의 총 규모는 2,800억 파운드가 넘었다. 이는 GDP의 약 14%에 해당하는 천문학적 금액이었다. 재정 적자도 급증해서 2020-21년 재정연도에는 3,170억 파운드에 달했다. 국가 부채비율도 100%를 넘어서면서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백신 개발 성공과 접종 프로그램
2020년 말, 영국은 백신 개발과 조달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옥스퍼드 대학과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 개발한 백신이 승인을 받았고,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도 신속하게 도입했다. 특히 영국은 EU보다 훨씬 빠르게 백신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는 브렉시트의 예상치 못한 이점으로 평가되었다. EU의 공동 조달 방식보다 영국의 독자적 접근이 더 효과적이었다. 정부는 일찌감치 여러 백신 후보에 투자했고, 생산 설비도 미리 확보했다. 또한 승인 과정에서도 유럽의약품청(EMA)보다 영국의약품보건제품규제청(MHRA)이 더 신속했다.
12월 8일, 코번트리의 마가렛 키넌(90세)이 세계 최초로 화이자 백신을 접종받았다. 이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백신 접종 프로그램은 NHS의 조직력을 바탕으로 매우 효율적으로 진행되었다. 연령대별로 우선순위를 정해서 고령자와 기저질환자부터 시작했다.
2021년 초반 영국의 백신 접종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하루 60만 회 이상 접종하기도 했고, 4월까지 성인의 절반 이상이 1차 접종을 완료했다. 이는 정부의 몇 안 되는 성공 사례 중 하나였다. 존슨은 이를 '영국 과학의 승리'라고 자랑했다.
변이 바이러스와 반복되는 봉쇄
하지만 2020년 말부터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 켄트에서 발견된 알파 변이(당시 영국 변이라고 불림)가 기존 바이러스보다 전파력이 50% 이상 높았다. 이로 인해 감염자가 급증하면서 12월 20일 런던과 남동부에 다시 봉쇄 조치가 내려졌다.
2021년 1월 4일에는 세 번째 전국 봉쇄가 시작되었다. 학교도 다시 문을 닫았고, 온라인 학습이 재개되었다. 이번 봉쇄는 이전보다 더 엄격했다. "집에 머물러라" 메시지가 다시 등장했고, 운동을 위한 외출도 하루 한 번으로 제한되었다.
NHS는 극한 상황에 몰렸다. 1월 중순 입원 환자 수가 4만 명을 넘어서면서 1차 봉쇄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런던의 일부 병원들은 중환자실 점유율이 100%를 넘어섰고, 응급실에서 대기하는 구급차들이 줄을 이뤘다. 정부는 나이팅게일 병원들을 재가동하고, 의료진을 추가 모집했다.
하지만 백신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령층의 입원률과 사망률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는 2월 22일 '봉쇄 해제 로드맵'을 발표했다. 4단계에 걸쳐 점진적으로 제한을 완화하되, 각 단계 사이에 5주 간격을 두고 데이터를 검토하겠다는 신중한 접근이었다.
도미닉 커밍스 파문과 정치적 신뢰도 하락
2020년 5월, 도미닉 커밍스 총리 특별보좌관의 봉쇄 규칙 위반 논란이 터졌다. 그가 코로나19 증상이 있는 상황에서 런던에서 더럼까지 260마일을 이동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더욱 논란이 된 것은 시력 검사를 위해 바나드 캐슬까지 드라이브를 했다는 그의 해명이었다.
언론과 야당은 물론 보수당 의원들도 커밍스의 사임을 요구했다. 하지만 존슨은 끝까지 그를 옹호했다. 이는 정부의 신뢰도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일반 국민들은 엄격한 봉쇄 규칙을 지키며 가족과의 만남도 포기하고 있었는데, 정부 핵심 인사는 예외였다는 인식이 퍼졌다.
이 사건은 정부의 '하나의 규칙은 그들을 위해, 다른 규칙은 우리를 위해'라는 인식을 강화했다. 여론조사에서 보수당 지지율이 하락했고, 존슨의 개인적 신뢰도도 타격을 받았다. 커밍스는 결국 2020년 11월 다우닝가에서 물러났지만, 그 여파는 오래 지속되었다.
2021년 5월 커밍스는 의회 청문회에서 정부의 초기 코로나 대응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존슨이 "쇼핑 트롤리처럼 이리저리 방향을 바꾼다"고 말하며, 초기에 집단 면역 전략을 추진했다고 폭로했다. 또한 수만 명의 불필요한 죽음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북아일랜드 프로토콜 문제
브렉시트 이후 가장 복잡한 문제 중 하나는 북아일랜드 프로토콜이었다. 이 협정에 따르면 북아일랜드는 일부 EU 규정을 따라야 했고, 영국 본토에서 북아일랜드로 가는 상품들도 검역을 받아야 했다. 이는 사실상 아일랜드해에 무역 국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연합주의자들은 이를 강력히 반발했다. 북아일랜드가 영국의 다른 지역과 다른 대우를 받는다며 연합 해체를 우려했다. 민주연합당(DUP)은 자치정부 구성을 거부했고, 일부 과격파들은 폭력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2021년 4월에는 벨파스트에서 버스가 불타는 등 폭동 양상까지 나타났다.
정부는 프로토콜 수정을 위해 EU와 협상했지만 쉽지 않았다. EU는 단일시장의 무결성을 지키려 했고, 영국은 북아일랜드 연합주의자들의 불만을 달래야 했다. 양측의 입장 차이가 워낙 커서 타협점을 찾기 어려웠다.
2021년 10월, 정부는 더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리즈 트러스 외무장관은 프로토콜의 일방적 수정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는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어서 EU의 강한 반발을 샀다. 미국도 성금요일 협정을 지키라며 영국에 압력을 가했다.
파티게이트 스캔들과 존슨의 위기
2021년 11월, 또 다른 정치적 스캔들이 터졌다. 2020년 봉쇄 기간 중 다우닝가에서 여러 차례 파티가 열렸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었다. 특히 2020년 12월 18일 다우닝가 직원들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당시는 런던이 3단계 제한 조치 하에 있었고, 일반 국민들은 가족과도 만날 수 없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정부 직원들은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언론은 이를 '파티게이트(Partygate)'라고 명명했다.
존슨은 처음에는 파티 사실을 부인했다. "모든 규정이 지켜졌다"고 주장했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증거들이 나왔다. 결국 정부는 수 크레이 공무원에게 조사를 의뢰했고, 경찰도 수사에 착수했다.
2022년 1월에는 존슨이 2020년 5월 20일 다우닝가 정원에서 열린 '업무상 술자리'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는 '집에 머물러라' 지침이 여전히 유효했던 시기였다. 존슨은 "이것이 업무 행사인 줄 알았다"고 해명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졌다.
2022년 지방선거 참패와 당내 반발
파티게이트 여파로 2022년 5월 지방선거에서 보수당은 참패했다. 런던 32개 자치구 중 웨스트민스터까지 잃으면서 1968년 이후 처음으로 런던에서 하나의 자치구도 장악하지 못했다. 전국적으로도 500개 가까운 의석을 잃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6월 웨이크필드와 혼튼 앤 시드니 보궐선거 동시 패배였다. 웨이크필드는 2019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노동당으로부터 빼앗은 '레드 월' 지역이었고, 혼튼 앤 시드니는 1997년 신설 이후 계속 보수당이 지켜온 안전한 의석이었다.
보궐선거 패배 직후 크리스 핀처 보수당 부총무의 성추행 의혹이 터졌다. 존슨이 이를 알고도 그를 기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내각 사임이 줄을 이었다. 7월 5일 리시 수낙 재무장관과 사지드 자비드 보건장관이 동시에 사임했고, 이틀 만에 50명 이상의 정부 각료가 사임했다.
결국 존슨은 7월 7일 보수당 당수직 사임을 발표했다. 그는 "지금은 새로운 리더가 필요한 때"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총리직은 새 당수가 선출될 때까지 유지하겠다고 했다. 3년간의 존슨 시대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리즈 트러스의 49일과 경제적 혼란
보수당 당수 선거에서는 8명의 후보가 경쟁했다. 여러 차례 투표를 거쳐 리시 수낙과 리즈 트러스가 최종 결선에 올랐다. 수낙은 경험 많은 재무장관으로 경제 전문성을 내세웠고, 트러스는 대처주의 계승을 주장하며 대폭적인 감세를 공약했다.
9월 5일, 당원 투표 결과 트러스가 81,326표(50.8%)로 수낙을 근소하게 이겼다. 9월 6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스코틀랜드 발모럴 성에서 그녀를 총리로 임명했다. 이는 여왕의 마지막 공식 행사 중 하나가 되었다.
트러스는 9월 23일 '미니 예산'을 통해 파격적인 감세 정책을 발표했다. 소득세 기본세율을 20%에서 19%로, 최고세율을 45%에서 40%로 낮췄다. 법인세 인상도 취소하고, 인지세도 폐지했다. 총 감세 규모는 450억 파운드에 달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시장에서 극도의 부정적 반응을 받았다. 재원 조달 방안도 없이 대폭 감세를 하면 재정 적자가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파운드화는 달러 대비 사상 최저치까지 떨어졌고, 국채 수익률은 급등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하루아침에 급상승했다.
영국은행이 연금기금 붕괴를 막기 위해 긴급 개입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IMF는 이례적으로 영국에 정책 재고를 권고했다. 트러스는 결국 감세 정책을 하나씩 철회할 수밖에 없었고, 콰시 콰르텡 재무장관도 경질했다.
10월 20일 수엘라 브래버먼 내무장관이 사임하면서 트러스에 대한 당내 반발이 극에 달했다. 브래버먼은 사임서에서 "정부가 방향을 잃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결국 트러스는 10월 20일 사임을 발표했다. 재임 49일 만의 일이었다.
리시 수낙의 등장과 안정화 노력
리즈 트러스 사임 후 보수당 내부에서는 더 이상 분열을 지속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당원 투표 없이 의원들만의 투표로 신속하게 새 당수를 선출하기로 했다. 결국 리시 수낙이 유일한 후보로 남아 10월 24일 당수가 되었다.
수낙은 인도계 이민자 2세로 42세의 젊은 나이에 총리가 되었다. 그는 영국 역사상 최초의 힌두교도 총리이자 최연소 총리(200년 만)가 되었다. 또한 스탠포드 MBA 출신의 억만장자로, 골드만삭스 출신 금융 전문가였다.
수낙의 첫 번째 과제는 경제 신뢰 회복이었다. 그는 트러스의 모든 감세 정책을 철회하고 제레미 헌트를 재무장관으로 유임시켜 정책 연속성을 보장했다. 또한 "어려운 결정이 필요하다"며 긴축 재정으로의 복귀를 시사했다.
시장은 즉각 안정을 되찾았다. 파운드화가 반등했고 국채 수익률도 하락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여론조사에서 보수당은 노동당에 20% 포인트 이상 뒤처져 있었고, 트러스 사태로 인한 신뢰도 하락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2세 서거와 찰스 3세 즉위
2022년 9월 8일,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 엘리자베스 2세가 96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70년 2개월간의 긴 재위 기간 동안 그녀는 15명의 총리와 함께 일했고, 영국의 급격한 변화를 지켜보았다. 탈식민화, EU 가입과 탈퇴,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겪으며 국가적 통합의 상징 역할을 했다.
여왕의 서거 소식은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영국 전역에서 조기가 게양되었고, 10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되었다. 웨스트민스터 홀에서의 누워계심(lying-in-state) 기간 동안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마지막 경의를 표했다.
9월 19일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국장이 거행되었다. 2,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 세계 왕족과 정상들이 모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이 참석했다. 장례식은 전 세계 40억 명이 시청한 역사적 행사가 되었다.
찰스 왕세자가 찰스 3세로 즉위했다. 73세의 나이로 즉위한 그는 영국 역사상 최고령 신임 국왕이었다. 70년간 왕세자로 지내며 환경 보호, 지속가능한 농업 등에 관심을 보인 그는 '행동하는 국왕'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2023년 윈저 협약과 북아일랜드 문제 진전
2023년 2월 27일, 수낙 총리는 EU와 '윈저 협약(Windsor Framework)'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북아일랜드 프로토콜을 수정한 새로운 협정으로, 양측이 2년간 협상한 결과였다.
핵심 내용은 '그린 레인/레드 레인' 시스템이었다. 영국 본토에서 북아일랜드로만 가는 상품은 그린 레인을 통해 간소한 절차로 이동할 수 있고, EU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는 상품만 레드 레인을 통해 완전한 검사를 받는다. 이는 북아일랜드 내 일상적 무역에서 불편을 크게 줄이는 것이었다.
또한 북아일랜드 의회에 '스토몬트 브레이크' 권한을 부여했다. 새로운 EU 규정이 북아일랜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경우 30명 이상의 의원이 반대하면 영국 정부가 이를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연합주의자들의 오랜 요구사항이었다.
DUP는 처음에는 여전히 회의적이었지만, 2024년 1월 마침내 자치정부 복귀에 합의했다. 2년간의 공백을 깨고 미셸 오닐 신페인당 부당수가 북아일랜드 최초의 가톨릭계 총리가 되었다. 이는 역사적인 변화였다.
윈저 협약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EU 관계에서 중요한 진전이었다. 양측이 실용적 해결책을 찾았다는 평가를 받았고, 북아일랜드의 정치적 안정에도 기여했다. 하지만 여전히 세부적인 운영에서는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생활비 위기와 사회적 불안
2022년부터 영국은 심각한 생활비 위기에 직면했다.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가정용 에너지 요금이 연간 3,000파운드를 넘어섰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식료품 가격 상승도 가계를 압박했다. 인플레이션은 11%까지 치솟으면서 1980년대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는 에너지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에너지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고 취약계층에 직접 지원금을 제공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많은 가정들이 '난방이냐 식사냐'의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파업도 잇따랐다. 철도 노조, 우체국 노조, 교사 노조, 간호사 노조 등이 연이어 파업에 나섰다. 실질임금 하락과 열악한 근무 조건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었다. 특히 간호사들의 파업은 NHS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어서 충격을 주었다.
푸드뱅크 이용자도 급증했다. 트러셀 트러스트에 따르면 2022-23년 푸드뱅크 이용이 전년 대비 37% 늘어났다. 아동 빈곤율도 다시 상승하면서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이민 문제와 르완다 계획
2022년부터 영국 해협을 통한 불법 이민이 급증했다. 소형 보트를 타고 프랑스에서 건너오는 이민자 수가 연간 4만 5천 명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사회 문제가 되었다. 많은 이민자들이 망명을 신청했지만 처리가 지연되면서 적체가 심화되었다.
정부는 강경한 대응책을 내놓았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르완다 계획'이었다. 영국에 불법 입국한 망명신청자들을 르완다로 송환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다른 불법 이민을 억제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법적, 도덕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인권단체들은 난민 보호 원칙에 위배된다고 비판했고, 법원들도 여러 차례 송환을 중단시켰다. 2023년 11월 대법원은 르완다가 안전한 제3국이 아니라며 계획을 위법으로 판결했다.
수낙 정부는 르완다와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고 국내법도 개정해서 계획을 강행하려 했다. 하지만 보수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렸고, 실제 송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문제는 다음 총선의 주요 쟁점이 되었다.
스코틀랜드 독립 운동의 변화
스코틀랜드에서는 니콜라 스터전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정치 지형이 바뀌었다. 2023년 3월 스터전이 개인적 이유로 사임을 발표하면서 스코틀랜드 정치에 충격을 주었다. SNP 당수 선거에서 험자 유사프가 당선되어 새로운 스코틀랜드 총리가 되었다.
하지만 SNP는 여러 어려움에 직면했다. 당 재정 스캔들, 성별 인정법을 둘러른 논란, 독립 전략의 불분명성 등이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2024년 지방선거에서도 SNP는 의석을 잃었다.
독립 여론도 변화했다. 브렉시트 직후 60%까지 올랐던 독립 지지율이 50% 이하로 떨어졌다. 경제 불안정과 생활비 위기 속에서 유권자들이 현실적 고려를 더 중시하게 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정부는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 승인을 지속적으로 거부했다. 2014년 국민투표를 '한 세대에 한 번(once in a generation)'이라고 했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이는 스코틀랜드와 중앙정부 간 헌법적 갈등을 지속시켰다.
2024년 총선과 노동당의 압승
2024년 7월 4일, 5년 만에 총선이 실시되었다.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이 압도적으로 앞서는 가운데 선거가 치러졌다. 키어 스타머가 이끄는 노동당은 "변화의 시간"이라는 슬로건으로 정권 교체를 호소했다.
결과는 노동당의 압승이었다. 412석을 얻어 174석의 안정적인 다수당이 되었다. 보수당은 121석으로 참패했는데, 이는 1906년 이후 최악의 결과였다. 14년간의 보수당 집권이 막을 내렸다.
특히 주목할 점은 개혁당(Reform UK)의 약진이었다. 나이젤 패라지가 복귀한 개혁당은 14.3%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보수당의 표를 크게 빼앗았다. 이민 문제와 반기성정치 정서가 결합된 결과였다.
스타머는 7월 5일 총리로 취임하면서 "봉사 정부"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경제 성장, NHS 재건, 청정 에너지 전환, 교육 개혁, 범죄 대책을 5대 과제로 제시했다.
새로운 도전과 미래 전망
스타머 정부는 여러 구조적 문제를 물려받았다. 국가 부채가 GDP의 100%를 넘어서는 재정 위기, 40년 만의 높은 세금 부담, NHS의 만성적 위기, 주택 부족, 지역 격차 등이 주요 과제였다.
대외적으로는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 유지, EU와의 관계 개선,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 등이 필요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과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는 새로운 변수였다.
기후 변화 대응도 중요한 과제였다. 2050년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와 산업 구조 전환이 필요했다. 북해 유전의 단계적 폐쇄와 재생 에너지 확대가 핵심 과제였다.
사회적으로는 분열 치유가 시급했다. 브렉시트, 코로나19, 생활비 위기를 거치며 심화된 세대갈등, 계층갈등, 지역갈등을 해결해야 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좌절감과 소외감 해소가 중요했다.
결론
2020년대 영국은 전례 없는 도전들에 직면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보건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냈고, 경제적 충격은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브렉시트 후유증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문제는 국가 통합을 위협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는 한 시대의 종료를 의미했다. 70년간 국가적 통합의 상징이었던 여왕의 부재는 영국 사회에 정체성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찰스 3세가 어떤 군주가 될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문제다.
정치적으로는 극심한 불안정을 겪었다. 존슨의 파티게이트, 트러스의 경제 실험 실패, 수낙의 선거 참패 등은 정치적 신뢰도를 크게 훼손했다. 노동당의 복귀로 안정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경제적으로는 생산성 정체, 지역 격차, 인플레이션 등의 구조적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 '글로벌 브리튼' 전략의 성과도 제한적이다.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이 시급한 과제다.
사회적으로는 다양성과 포용성이 증대되었지만, 동시에 분열도 심화되었다. 이민 문제, 문화 갈등, 세대 격차 등이 새로운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사회적 결속력 회복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영국은 여전히 중요한 국제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금융 허브로서의 런던, 영어의 세계적 확산, 소프트 파워 등은 영국의 자산이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정치적 리더십에 달려 있다.
천년의 역사를 가진 영국은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왔다. 산업혁명을 주도했고, 두 차례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제국의 평화로운 해체를 이뤄냈다. 현재의 도전들도 영국인들의 실용주의와 점진적 개혁 정신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영국의 미래는 여전히 열려 있다. 변화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영국이 어떤 역할을 할지, 브렉시트 이후 새로운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내부 분열을 어떻게 치유할지가 핵심 과제다. 역사는 계속되고 있고, 영국의 새로운 장이 지금 쓰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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