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y

스콜라 철학 6: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와 사상 개관

SSSCH 2025. 4. 2.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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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스콜라 철학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다. 그는 스콜라 철학의 방법론을 완성하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기독교 신학의 통합을 이루어낸 위대한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천사적 박사(Doctor Angelicus)'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그는 중세를 넘어 현대까지 기독교 사상과 철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늘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와 주요 저작, 그리고 그의 철학 사상의 큰 틀을 살펴보려 한다.

시대적 배경: 13세기 유럽의 지적 르네상스

토마스 아퀴나스가 활동했던 13세기는 중세 유럽의 '지적 르네상스' 시기였다. 여러 요인들이 이 시기의 지적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첫째, 대학의 성장이다. 12세기 말부터 13세기에 걸쳐 파리, 옥스퍼드, 볼로냐, 살라망카 등 유럽 곳곳에 대학이 설립되었다. 이 대학들은 중세 학문의 중심지로서 활발한 지적 교류의 장이 되었다.

둘째, 새로운 수도회의 등장이다. 도미니코회와 프란체스코회 같은 탁발수도회(mendicant orders)가 창설되어 도시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이들은 전통적인 수도원과 달리 학문과 설교를 강조했으며, 대학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재발견이다. 12-13세기에 걸쳐 아라비아어와 그리스어로 보존되어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이 라틴어로 번역되어 서유럽에 소개되었다. 이전까지 『범주론』과 『명제론』 정도만 알려져 있었던 것과 달리, 이제 『자연학』, 『형이상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정치학』 등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 저작들이 모두 접근 가능해졌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유입은 중세 지성계에 큰 충격과 도전을 가져왔다. 그의 체계적인 자연 철학과 형이상학은 기존의 신학적 세계관과 충돌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베로에스(라틴어 이름으로는 아베로이스, Averroes)와 같은 이슬람 철학자들의 아리스토텔레스 해석은 더욱 논쟁적이었다.

이 시기 파리 대학에서는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들이 등장하여 신앙과 이성의 '이중 진리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즉, 신학적 진리와 철학적 진리가 서로 모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교회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1270년과 1277년 파리 주교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여러 명제들을 단죄하기도 했다.

바로 이러한 격변의 시기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기독교 신학과 조화시키는 거대한 종합을 이루어냈다. 그는 반(反)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과 급진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 사이에서 중도적 입장을 취하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기독교 신앙이 상호 보완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퀴나스의 생애: 귀족에서 수도사로, 그리고 위대한 신학자로

토마스 아퀴나스는 1225년경 이탈리아 남부 아퀴노(Aquino) 지역의 로카세카(Roccasecca) 성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와 연결된 유력한 귀족 가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란돌프 백작이었고, 어머니 테오도라는 나폴리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다섯 살 때 그는 교육을 위해 가까운 몬테 카시노(Monte Cassino) 수도원에 보내졌다. 이 수도원은 베네딕토 수도회의 창시자인 성 베네딕토가 설립한 유서 깊은 곳이었다. 그러나 황제와 교황 사이의 갈등으로 수도원이 위협받자, 열여섯 살의 토마스는 나폴리 대학으로 옮겨 자유학예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공부했다.

나폴리에서 공부하던 중, 토마스는 새로 설립된 도미니코회에 매료되었다. 1244년, 19세의 나이에 그는 가족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미니코회에 입회했다. 가족들은 그가 명망 높은 몬테 카시노 수도원의 원장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전설에 따르면, 그의 형제들은 그를 납치하여 1년간 가족 성에 가두고, 심지어 창녀까지 보내어 그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토마스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가족은 그의 선택을 받아들였다.

도미니코회에 입회한 후, 토마스는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의 지도 아래 파리와 쾰른에서 공부했다. 알베르투스는 당시 가장 뛰어난 학자 중 한 명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정통했으며 토마스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았다. "이 '말 없는 소'(dumb ox)의 울음소리가 언젠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질 것이다"라는 그의 유명한 말은 토마스의 과묵한 성격과 그의 잠재적 위대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1252년부터 1256년까지 토마스는 파리 대학에서 신학 학사(baccalaureus)로 성서를 강의했고, 1256년부터 1259년까지는 같은 대학의 교수(magister)로 재직했다. 이후 그는 이탈리아로 돌아와 오르비에토, 로마, 비테르보 등에서 교황청을 위해 일했다. 1268년, 그는 다시 파리로 돌아와 1272년까지 가르쳤다.

파리에서의 두 번째 교수 기간 동안, 토마스는 여러 논쟁에 휘말렸다. 그는 한편으로는 보수적인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급진적인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과 논쟁했다. 이 시기에 그는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의 대부분을 집필했다.

1272년, 토마스는 나폴리 대학에 새로운 신학 연구소를 설립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1273년 12월 6일, 미사 중에 그는 강렬한 신비 체험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그는 "내가 보았던 것에 비하면, 내가 쓴 모든 것이 지푸라기에 불과하다"라고 말하며 저술을 중단했다.

1274년 초, 교황 그레고리 10세의 요청으로 리옹 공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여행하던 중, 토마스는 병에 걸렸다. 그는 포사노바(Fossanova) 시토회 수도원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1274년 3월 7일,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 이후에도 그의 사상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었다. 1277년 파리 주교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단죄는 토마스의 일부 견해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의 사상은 점차 널리 인정받았고, 1323년 그는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1567년, 교황 피우스 5세는 그를 '교회 박사(Doctor of the Church)'로 선언했다.

주요 저작: 『신학대전』과 『대이교도대전』

토마스 아퀴나스는 엄청난 양의 저작을 남겼다. 그의 전집(Opera Omnia)은 50권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두 저작은 『신학대전(Summa Theologiae)』과 『이교도 대전(Summa Contra Gentiles)』이다.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신학대전』은 아퀴나스의 대표작으로, 그의 완숙기(1265-1273)에 저술되었다. 이 작품은 신학 초보자들을 위한 교과서로 기획되었으며, 신학의 모든 주제를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다. 1273년의 신비 체험 이후 저술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신학대전』은 세 부분(Prima Pars, Secunda Pars, Tertia Pars)으로 나뉘어 있다:

  1. 제1부(Prima Pars): 신론, 창조론, 천사론, 인간론을 다룬다. 신의 존재와 본질, 삼위일체, 창조, 천사의 본성, 인간의 영혼과 육체 등이 주요 주제다.
  2. 제2부(Secunda Pars): 윤리학을 다루며,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뉜다:
    • 제2-1부(Prima Secundae): 일반 윤리학으로, 인간의 궁극적 목적, 행위론, 감정, 덕과 악덕, 죄, 율법, 은총 등을 논한다.
    • 제2-2부(Secunda Secundae): 특수 윤리학으로, 신앙, 희망, 사랑이라는 신학적 덕과 사덕(四德, 지혜, 정의, 용기, 절제)을 비롯한 개별 덕목들을 상세히 다룬다.
  3. 제3부(Tertia Pars): 그리스도론과 성사론(聖事論)을 다룬다. 그러나 이 부분은 미완성으로 남았다.

『신학대전』의 각 주제는 '물음(quaestio)'으로 제시되고, 각 물음은 다시 여러 '항목(articulus)'으로 나뉜다. 각 항목은 정형화된 구조를 따른다:

  1. 질문 제시("~인가?", Utrum...?)
  2. 이의 제기("~처럼 보인다", Videtur quod...)
  3. 반대 의견("반대로", Sed contra...)
  4. 응답("대답하건대", Respondeo dicendum...)
  5. 이의에 대한 답변("~에 대하여", Ad primum...)

이러한 구조는 스콜라 철학의 전형적인 '문답법(quaestio disputata)'을 반영한다.

『대이교도대전(Summa Contra Gentiles)』

『대이교도대전』은 1259년에서 1264년 사이에 저술되었다. 전통적으로 이 책은 무슬림과 유대인들에게 기독교를 변증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고 알려져 왔으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책의 주요 독자는 당시 스페인의 도미니코회 선교사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저작은 네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제1권: 자연 이성으로 알 수 있는 신의 존재와 속성에 관해 다룬다.
  2. 제2권: 창조, 피조물의 다양성, 지성적 피조물에 관해 논한다.
  3. 제3권: 신의 섭리, 인간의 궁극적 목적, 도덕과 사회 질서에 관해 다룬다.
  4. 제4권: 삼위일체, 성육신, 부활 등 계시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 진리들을 다룬다.

『대이교도대전』의 특징은 자연 이성과 계시 신앙을 명확히 구분하면서도, 둘 사이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처음 세 권은 주로 자연 이성으로 접근 가능한 진리를 다루고, 마지막 권은 계시에 의존하는 진리를 다룬다.

기타 주요 저작들

토마스 아퀴나스의 다른 중요 저작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 주석: 『형이상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자연학』, 『영혼론』 등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 저작들에 대한 주석.
  • 『진리론(De Veritate)』: 스물네 개의 '논쟁 문제(Quaestiones Disputatae)'로 구성된 저작으로, 진리, 지식, 의지, 선(善) 등의 주제를 다룬다.
  • 『존재와 본질에 관하여(De Ente et Essentia)』: 초기 저작으로, 존재(esse)와 본질(essentia)의 구분을 중심으로 형이상학적 개념들을 설명한다.
  • 『신의 능력에 관하여(De Potentia Dei)』: 신의 능력, 창조, 삼위일체 등을 다루는 논쟁 문제집.
  • 『성서 주석』: 욥기, 시편, 이사야서, 마태복음, 요한복음 등 성서의 여러 책에 대한 주석.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의 큰 틀: 신앙과 이성의 조화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의 가장 큰 특징은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그는 '이중 진리설'을 거부하고, 신앙과 이성이 서로 보완적이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신앙과 이성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근본적으로 모순될 수 없다. 이성은 자연의 빛(lumen naturale)이고, 신앙은 은총의 빛(lumen gratiae)이다. 두 빛은 서로 다른 강도와 범위를 가지지만, 본질적으로 대립하지 않는다.

아퀴나스는 신학적 진리를 두 가지로 구분했다:

  1. 자연 이성으로 알 수 있는 진리: 신의 존재, 신의 일부 속성, 자연법, 영혼의 불멸성 등.
  2. 계시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 진리: 삼위일체, 성육신, 원죄 등.

그는 첫 번째 유형의 진리는 철학적 논증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두 번째 유형의 진리는 인간 이성을 초월하지만, 이성에 모순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런 구분은 아퀴나스가 세속 학문과 신학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에도 반영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포함한 세속 학문들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신학의 '시녀(handmaid)'가 아니라 동반자로 보았다.

이러한 신앙과 이성의 조화 모델은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Gratia non tollit naturam, sed perficit)"는 그의 유명한 원칙에 잘 요약되어 있다. 이는 초자연적인 은총이 자연적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전제하고 고양시킨다는 의미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아퀴나스: 고대 철학의 기독교적 재해석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은 기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기독교적 재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들을 받아들이되, 기독교 신앙과 조화되도록 수정하고 발전시켰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받아들이면서도 변형시킨 주요 개념들은 다음과 같다:

질료-형상론(Hylomorphism)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 이론에 따르면, 모든 물체는 질료(materia)와 형상(forma)의 복합체다. 질료는 가능태로서의 물질적 기반이고, 형상은 질료를 특정한 것으로 만드는 현실태다.

아퀴나스는 이 이론을 인간 본성의 이해에 적용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육체(질료)와 영혼(형상)의 복합체다. 영혼은 육체의 형상이며, 육체와 영혼은 하나의 실체를 이룬다. 이는 플라톤주의의 영혼-육체 이원론과 구별되는 입장이다.

잠재태와 현실태(Potentiality and Actuality)

아리스토텔레스의 잠재태(potentia)와 현실태(actus) 개념도 아퀴나스 형이상학의 중심이 된다. 모든 변화는 잠재태에서 현실태로의 이행으로 이해된다.

아퀴나스는 이 개념을 확장하여 존재(esse)와 본질(essentia)의 구분에 적용했다. 피조물에서 본질은 잠재태이고, 존재는 현실태다. 신만이 순수 현실태(actus purus)로서, 그 안에는 어떤 잠재태도 없다.

네 가지 원인론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사물의 원인을 질료인, 형상인, 작용인, 목적인이라는 네 가지로 구분했다. 아퀴나스는 이 틀을 수용하면서, 특히 목적인을 강조했다.

그는 목적론적 세계관을 통해 우주의 모든 것이 신을 향해 나아간다고 보았다. 모든 피조물은 자신의 본성에 따라 신을 반영하고, 궁극적으로는 신에게 돌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덕 윤리학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학을 기독교적 맥락에서 재해석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네 가지 기본 덕(지혜, 용기, 절제, 정의)을 수용하면서, 여기에 신앙, 희망, 사랑이라는 세 가지 신학적 덕을 추가했다.

그에 따르면, 철학적 덕은 자연적 행복(eudaimonia)을 위한 것이고, 신학적 덕은 초자연적 행복(beatitudo)을 위한 것이다. 두 종류의 덕은 서로 보완적이며, 은총은 자연적 덕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

존재와 본질: 아퀴나스 형이상학의 핵심

토마스 아퀴나스 형이상학의 가장 독창적인 기여는 존재(esse)와 본질(essentia)의 구분이다. 이는 『존재와 본질에 관하여』라는 초기 저작에서 이미 발전된 개념이다.

아퀴나스에 따르면, 모든 피조물에서 존재와 본질은 실재적으로 구분된다. 본질은 "무엇임(what-ness)"을 규정하는 것으로, 사물이 속한 종에 따라 결정된다. 반면 존재는 사물이 실재하도록 하는 현실화의 원리다.

예를 들어, 인간의 본질은 "이성적 동물"이라는 정의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의는 인간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를 말해주지 않는다. 존재는 본질에 추가되어 그것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신과 피조물 사이의 근본적 차이를 설명한다. 피조물에서는 존재와 본질이 구분되지만, 신에게는 이러한 구분이 없다. 신은 "자신의 존재인 존재자(ipsum esse subsistens)"로서, 그의 본질이 곧 존재다. 이것이 신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이유다.

이 이론은 또한 피조물의 근본적인 우연성을 설명한다. 모든 피조물은 그 존재를 자신으로부터가 아니라 다른 것(궁극적으로는 신)으로부터 받는다. 따라서 피조물은 본질적으로 의존적이고 우연적이다.

아퀴나스의 이러한 형이상학은 스콜라 철학에서 '존재의 형이상학(metaphysics of esse)'이라고 불리며, 이는 이후 에티엔 질송(Etienne Gilson)과 같은 현대 철학자들에 의해 토마스주의의 핵심으로 재발견되었다.

자연신학과 '5가지 길': 신 존재 증명의 새로운 접근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자연신학은 계시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 이성만으로 신에 관한 지식을 탐구하는 분야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제1부, 질문 2, 항목 3)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명한 '5가지 길(quinque viae)'을 제시한다:

  1. 운동의 길(via motus): 세계에는 운동이 있고, 모든 운동은 다른 것에 의해 움직여진다. 이는 무한 소급으로 갈 수 없으므로, 최초의 움직이지 않는 움직이게 하는 자(unmoved mover)가 있어야 한다.
  2. 작용인의 길(via causalitatis): 세계에는 인과 관계가 있고, 모든 결과는 원인을 가진다. 이 인과 사슬은 최초의 원인(First Cause)에 도달해야 한다.
  3. 우연성과 필연성의 길(via contingentiae): 세계의 존재자들은 우연적이다(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우연적이라면, 어떤 시점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필연적 존재자(Necessary Being)가 있어야 한다.
  4. 완전성의 정도에 의한 길(via gradibus): 사물들 사이에는 선함, 진리, 고귀함 등의 정도 차이가 있다. 이러한 정도는 최고선(Supreme Good)에 의해 측정된다.
  5. 목적론적 길(via finalitatis): 자연에는 목적을 향한 질서가 있다. 지성이 없는 사물들도 일정한 방식으로 목적을 향해 행동한다. 이는 이들을 목적을 향해 이끄는 지성적 존재자(Intelligent Being)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 '5가지 길'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이슬람 철학자들(특히 아비첸나)의 영향을 보여주지만, 아퀴나스는 이를 기독교적 맥락으로 재해석했다. 그의 증명은 경험적 세계에서 출발하여 신의 존재를 추론하는 '후험적(a posteriori)' 방법을 취한다. 이는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증명'과 같은 '선험적(a priori)' 방법과 대조된다.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의 특징은 그것이 '초월적 인과성(transcendental causality)'의 개념에 기초한다는 점이다. 신은 단순히 세계 내의 첫 번째 원인이 아니라, 세계 전체의 초월적 원인이다. 신은 시간의 첫 지점에서 세계를 움직인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의 존재를 유지하는 원인이다.

또한 아퀴나스는 이러한 증명이 신의 존재만을 보여줄 뿐, 신의 본질을 완전히 드러내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인간 이성은 신이 존재한다는 것과 신이 어떤 속성을 가져야 하는지는 알 수 있지만, 신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이는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의 존재론적 간극 때문이다.

인식론: 경험에서 추상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식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경험주의적 출발점

아퀴나스에 따르면, "지성 안에 있는 것은 먼저 감각 안에 있었다(Nihil est in intellectu quod non prius fuerit in sensu)." 모든 지식은 감각 경험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는 플라톤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상기설(recollection theory)'이나 '신적 조명설(divine illumination)'과 대조된다.

추상화 과정

감각 경험에서 지적 지식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추상화(abstractio)'를 통해 이루어진다. 인간 지성은 감각적 이미지(phantasmata)로부터 보편적 형상이나 본질을 추상해낸다. 이 과정은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1. 능동 지성(intellectus agens): 감각적 이미지에서 지성적 형상을 추상해내는 활동적 능력.
  2. 가능 지성(intellectus possibilis): 추상된 형상을 받아들여 실제 이해를 형성하는 수동적 능력.

지식의 객관성

아퀴나스는 지식의 객관성을 강조했다. 지식은 외부 실재와 정신의 일치(adaequatio intellectus et rei)다. 이는 회의주의와 상대주의를 거부하는 입장이다.

동시에 그는 인간 지식의 한계도 인정했다. 인간은 사물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특히 신의 본질은 인간 이성으로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유비적 언어(Analogical Language)

아퀴나스는 신에 대한 인간의 언어가 유비적(analogical)이라고 보았다. 우리가 신에 대해 사용하는 언어는 문자 그대로(univocal)도 아니고, 완전히 다른 의미(equivocal)도 아니라, 유사성에 기초한 유비적 의미를 가진다.

예를 들어, "신은 선하다"고 말할 때, 이는 인간의 선함과 정확히 같은 의미도 아니고, 완전히 다른 의미도 아니다. 신의 선함은 인간의 선함과 유비적 관계에 있다. 이러한 유비적 언어 이해는 신에 대한 의미 있는 담론을 가능하게 한다.

윤리학: 행복과 자연법

토마스 아퀴나스의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학과 스토아학파의 자연법 전통, 그리고 기독교 윤리를 종합한 것이다. 그의 윤리 사상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목적론적 틀

아퀴나스 윤리학의 기본 구조는 목적론적이다. 모든 인간 행위는 궁극적으로 행복(beatitudo)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피상적인 쾌락이나 부, 명예가 아니라 최고선(summum bonum)인 신과의 합일에 있다.

현세에서 인간은 불완전한 행복만을 누릴 수 있고, 완전한 행복은 내세에서 신을 직접 바라봄(beatific vision)으로써만 가능하다.

자연법 이론

아퀴나스의 윤리 체계의 핵심은 자연법(lex naturalis) 개념이다. 자연법은 인간의 본성에 새겨진 신의 영원법(lex aeterna)의 반영이다. 자연법의 첫 번째 원리는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이며, 이로부터 더 구체적인 도덕 원칙들이 파생된다.

자연법은 세 가지 수준으로 나눌 수 있다:

  1. 일차적 원리: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와 같은 기본 원칙. 모든 인간이 자연적으로 이해한다.
  2. 이차적 원리: 십계명과 같은 더 구체적인 원칙들. 약간의 추론이 필요하다.
  3. 삼차적 원리: 매우 구체적인 도덕적 결론들. 상당한 추론이 필요하다.

자연법은 모든 실정법(인간이 만든 법)의 기초가 된다. 자연법에 어긋나는 실정법은 진정한 법이 아니라 법의 왜곡이다.

행위의 도덕성

아퀴나스는 행위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 세 가지 요소를 고려한다:

  1. 대상(object): 행위 자체의 본질적 성격.
  2. 의도(intention): 행위자의 목적.
  3. 상황(circumstances): 행위의 맥락적 조건들.

행위가 도덕적으로 선하기 위해서는 이 세 요소 모두 선해야 한다. 예를 들어, 좋은 목적(가난한 사람 돕기)이 나쁜 수단(도둑질)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덕 이론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이론을 받아들이면서, 여기에 기독교적 요소를 추가했다. 그는 덕을 두 종류로 구분한다:

  1. 철학적(또는 도덕적) 덕: 자연적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덕들.
    • 지성적 덕: 지혜(sapientia), 학식(scientia), 이해(intellectus), 기술(art), 실천적 지혜(prudentia).
    • 도덕적 덕: 정의(justice), 용기(fortitude), 절제(temperance) 등.
  2. 신학적 덕: 계시를 통해 알려진, 초자연적 목적을 위한 덕들.
    • 신앙(faith), 희망(hope), 사랑(charity).

철학적 덕들은 자연적 행복을 위한 것이고, 신학적 덕들은 초자연적 행복을 위한 것이다. 후자는 전자를 대체하지 않고 완성한다.

사회 철학과 정치 사상

아퀴나스의 사회 정치 사상은 『신학대전』의 일부분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주석 등에 나타난다. 그의 사회 철학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사회적 본성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 인간을 본질적으로 사회적 동물(animal sociale et politicum)로 보았다. 인간은 혼자서는 완전한 삶을 살 수 없으며, 공동체 안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번영한다.

공동선의 중요성

모든 사회적 질서의 목적은 공동선(bonum commune)의 실현이다. 공동선은 단순한 개인 이익의 총합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의 통합적 선이다.

분배적 정의와 교환적 정의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1. 분배적 정의(iustitia distributiva): 공동체의 부와 명예, 의무 등을 각자의 지위와 공헌도에 따라 분배하는 정의.
  2. 교환적 정의(iustitia commutativa): 개인 간 거래와 관계에서의 평등과 공정성.

최선의 정치 체제

아퀴나스는 절대군주제보다 혼합 정체(mixed constitution)를 선호했다. 이상적인 정부는 군주제, 귀족제, 민주제의 요소들을 결합한 것이다. 이는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다양한 사회 계층의 참여를 보장한다.

법의 이론

아퀴나스는 법을 "공동선을 위해 공동체를 책임지는 자에 의해 공포된 이성의 명령"으로 정의했다. 그는 법을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1. 영원법(lex aeterna): 우주를 지배하는 신의 이성.
  2. 자연법(lex naturalis): 인간 본성에 새겨진 영원법의 반영.
  3. 인정법(lex humana): 자연법에서 파생된 특정 사회의 실정법.
  4. 신법(lex divina): 성서를 통해 계시된 신의 법.

이 법들은 계층적 관계에 있으며, 하위 법은 상위 법에 근거해야 한다.

정당한 반란의 조건

아퀴나스는 폭정에 대한 저항권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는 다음과 같은 엄격한 조건 하에서만 정당화된다:

  1. 폭정이 심각하고 지속적일 때.
  2. 다른 모든 평화적 해결책이 실패했을 때.
  3. 성공 가능성이 있을 때.
  4. 반란으로 인한 해악이 폭정으로 인한 해악보다 작을 때.
  5. 공동체의 권위 있는 대표자들의 동의가 있을 때.

신학적 기여: 아퀴나스의 신론과 성사론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적 기여는 매우 광범위하지만, 여기서는 그의 신론과 성사론의 주요 특징을 살펴보자.

신론(Doctrine of God)

아퀴나스의 신론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1. 단순성(simplicity): 신은 어떤 복합체도 아니며, 완전히 단순하다. 신 안에는 질료와 형상, 본질과 존재, 속성과 실체 같은 구분이 없다.
  2. 완전성(perfection): 신은 모든 완전성을 무한한 정도로 소유한다. 피조물의 모든 선한 특성은 신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3. 무한성(infinity): 신은 어떤 한계도 없는 무한한 존재다. 이는 질적 무한성으로, 양적 무한성(무한한 시공간)과는 다르다.
  4. 불변성(immutability): 신은 변화하지 않는다. 이는 그가 이미 모든 완전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5. 영원성(eternity): 신은 시간 밖에 존재하며, 모든 시간을 동시에 포괄한다. 신의 영원성은 단순히 무한한 시간이 아니라, 시간과 질적으로 다른 존재 방식이다.
  6. 전지전능(omniscience and omnipotence): 신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예: 정사각형 원)까지 포함하지는 않는다.
  7. 신의 지식: 신은 자신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통해 모든 피조물을 알고,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도 안다.

성사론(Sacraments)

아퀴나스는 교회의 일곱 성사(세례, 견진, 성체, 고해, 종부, 신품, 혼인)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의 성사 이해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성사의 정의: 성사는 "보이지 않는 은총의 보이는 표징"이다. 성사는 상징적 의미를 넘어, 실제로 은총을 전달한다.
  2. 인과적 효력: 성사는 '행해진 행위 자체로(ex opere operato)' 은총을 전달한다. 즉, 성사의 효력은 집전자나 수혜자의 덕에 의존하지 않는다.
  3. 성사의 구성 요소: 각 성사는 질료(materia)와 형상(forma)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세례에서 질료는 물이고, 형상은 "나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세례를 준다"라는 말이다.
  4. 성체성사(Eucharist): 아퀴나스는 '실체변화(transubstantiation)'를 통해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고 설명했다. 이때 빵과 포도주의 외적 특성(accidents)은 유지되지만, 그 실체(substance)는 변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역사적 영향과 현대적 평가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은 중세 이후에도 기독교 철학과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세와 르네상스에서의 영향

아퀴나스 사후, 그의 사상은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277년 파리 주교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단죄는 아퀴나스의 일부 견해도 포함했다. 그러나 1323년 그가 성인으로 시성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14-15세기에 도미니코회는 아퀴나스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발전시켰다. 카프레올루스(Capreolus), 카예탄(Cajetan) 등이 그의 사상을 체계화하고 변호했다.

한편 스코투스(Duns Scotus)와 오컴(William of Ockham) 등은 아퀴나스와 다른 철학적 노선을 발전시켰다. 특히 오컴의 유명론(nominalism)은 아퀴나스의 온건 실재론(moderate realism)과 대립되었다.

근대에서의 영향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교회는 아퀴나스의 사상을 공식적인 철학으로 채택했다. 특히 1879년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영원한 아버지(Aeterni Patris)」는 '신토마스주의(Neo-Thomism)'의 부흥을 촉진했다.

수아레스(Francisco Suárez)와 같은 예수회 학자들은 아퀴나스의 사상을 근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했다. 이들은 아퀴나스 사상과 스코투스, 오컴 등 다른 스콜라 철학자들의 사상을 종합하려 했다.

20세기 토마스주의의 부흥

20세기에는 자크 마리탱(Jacques Maritain), 에티엔 질송(Etienne Gilson) 등의 학자들이 '존재의 토마스주의(Existential Thomism)'를 발전시켰다. 그들은 아퀴나스의 '존재(esse)' 개념을 중심으로 그의 사상을 재조명했다.

카를 라너(Karl Rahner), 베르나르 로너건(Bernard Lonergan) 등의 신학자들은 아퀴나스의 사상을 현대 철학(특히 칸트, 하이데거)과 대화시키는 '초월적 토마스주의(Transcendental Thomism)'를 발전시켰다.

한편 가레트(Garrigou-Lagrange), 마키인타이어(Alasdair MacIntyre) 등은 더 전통적인 토마스주의 해석을 옹호했다.

현대적 평가

오늘날 아퀴나스의 사상은 다양한 각도에서 재평가되고 있다:

  1. 분석철학과의 대화: 안토니 케니(Anthony Kenny), 알빈 플랜팅가(Alvin Plantinga) 등 분석철학자들이 아퀴나스의 논증을 현대적 맥락에서 분석하고 재구성하고 있다.
  2. 자연법 윤리학의 부활: 존 피니스(John Finnis), 로버트 조지(Robert P. George) 등이 아퀴나스의 자연법 이론을 현대 윤리학과 법철학에 적용하고 있다.
  3. 형이상학적 재평가: 윌리엄 올스톤(William Alston), 브라이언 데이비스(Brian Davies) 등이 아퀴나스의 형이상학, 특히 신론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평가하고 있다.
  4. 종교 간 대화: 아퀴나스의 사상은 기독교와 이슬람, 유대교 간의 철학적 대화에서 중요한 참조점이 되고 있다.
  5. 생태 윤리학: 일부 학자들은 아퀴나스의 창조론과 자연관이 현대 환경 윤리학에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론: 토마스 아퀴나스, 신앙과 이성의 대화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 스콜라 철학의 정점에 서 있는 사상가로, 그의 지적 업적은 가히 백과사전적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기독교 신앙의 통합을 통해 중세 지성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아퀴나스의 가장 큰 공헌은 신앙과 이성의 조화로운 관계를 정립한 것이다. 그에게 신앙과 이성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었다.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는 그의 원칙은 오늘날에도 종교와 과학, 신앙과 철학 사이의 건설적인 대화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또한 그의 존재론, 인식론, 윤리학, 정치철학 등은 단순히 역사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 현대의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통찰력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특히 그의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 자연법 윤리학, 공동선 개념 등은 오늘날의 사회적, 윤리적 논쟁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아퀴나스의 사상은 중세적 세계관의 가장 체계적인 표현이자,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영원한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다. 그의 "이성의 빛"과 "신앙의 빛"은 오늘날에도 인간 지성의 길을 밝히는 두 등불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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