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역사 58. 계몽주의의 밀라노·나폴리 확산과 베카리아·비코 사상의 사회 개혁 촉진

18세기 중반 이탈리아 반도는 정치적 변화와 함께 지적 혁명의 물결에 휩싸였다. 오스트리아의 계몽 정책과 부르봉 왕조의 개혁 의지가 만나면서, 밀라노와 나폴리는 계몽주의 사상이 꽃피우는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 이 시기 이탈리아 지식인들은 더 이상 과거의 영광에만 머물지 않고, 이성과 과학을 바탕으로 사회를 개혁하려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체사레 베카리아와 잠바티스타 비코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계몽주의는 단순히 외국 사상의 모방이 아니라, 이탈리아만의 독창적인 철학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밀라노 계몽주의의 발원지

오스트리아 통치 하의 밀라노는 18세기 이탈리아 계몽주의의 가장 중요한 중심지였다. 마리아 테레지아와 요제프 2세의 개혁 정책이 지적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했고, 이는 새로운 사상의 실험장이 되었다. 밀라노의 지식인들은 빈의 궁정과 직접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독자적인 사고를 발전시켜 나갔다.

밀라노 계몽주의의 특징은 실용성에 있었다. 프랑스의 백과전서파나 독일의 관념철학과 달리, 밀라노의 지식인들은 구체적인 사회 문제 해결에 집중했다. 이들은 추상적인 철학 논의보다는 법제 개혁, 경제 발전, 교육 개선 등 현실적인 과제에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경향은 이탈리아의 오랜 실용주의 전통과 맞닿아 있었다.

1764년부터 1766년까지 발행된 『일 카페』(Il Caffè)는 밀라노 계몽주의의 상징이었다. 이 잡지의 제목은 당시 새롭게 유럽에 전해진 커피와 커피하우스 문화를 의미했다. 편집자들은 커피하우스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토론처럼, 모든 주제에 대해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논의를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일 카페』를 중심으로 한 밀라노 지식인들은 '베르리 형제단'(Accademia dei Pugni)이라는 비공식적인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의 핵심 인물들은 피에트로 베르리, 체사레 베카리아, 알레산드로 베르리 등이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사회 문제를 토론했고, 그 결과를 잡지를 통해 대중에게 전파했다.

체사레 베카리아와 형법 개혁론

18세기 이탈리아 계몽주의의 가장 빛나는 성과는 체사레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Dei delitti e delle pene, 1764)이었다. 이 작품은 단순한 법학 저작을 넘어서 인권과 인도주의의 고전이 되었다. 베카리아는 당시 26세의 젊은 법학도였지만, 그의 사상은 유럽 전체의 형법 개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베카리아의 핵심 주장은 형벌의 목적이 복수가 아니라 범죄 예방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고문과 사형제를 강력히 비판했다. "고문은 약한 자를 무죄임에도 유죄라고 자백하게 만들고, 강한 자는 유죄임에도 무죄라고 부정하게 만든다"는 그의 명언은 당시 유럽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또한 베카리아는 형법의 명확성과 비례성을 강조했다. 법은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해야 하고, 형벌은 범죄의 중대성에 비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시 자의적이고 잔혹했던 형법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었다. 그는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범죄를 처벌하는 것보다 낫다"며 교육과 사회 개선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베카리아의 사상은 즉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볼테르는 이 책에 찬사를 보냈고, 독일의 프리드리히 대왕,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2세 등 계몽 군주들이 실제 정책에 반영했다. 특히 1786년 토스카나 대공국에서 유럽 최초로 사형제가 폐지된 것은 베카리아 사상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하지만 베카리아의 영향은 법학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의 인도주의적 사고는 교육, 경제, 사회 정책 전반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사회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는 과학적 접근법을 보여주었고, 이는 이후 사회과학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잠바티스타 비코의 역사 철학

나폴리에서는 베카리아보다 한 세대 앞선 잠바티스타 비코(1668-1744)가 독창적인 사상을 펼쳤다. 비코의 『새로운 학문』(Scienza Nuova, 1725)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역사 철학을 제시했다. 그는 인간 사회의 발전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후에 사회과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비코의 핵심 이론은 '순환사관'이었다. 그는 모든 민족이 신의 시대(età divina), 영웅의 시대(età eroica), 인간의 시대(età umana)라는 세 단계를 거쳐 발전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발전은 직선적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이루어지며, 각 시대는 고유한 특성과 가치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비코의 또 다른 중요한 기여는 언어와 문화의 관계에 대한 통찰이었다. 그는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니라 민족의 정신과 문화를 담는 그릇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은 후에 헤르더나 훔볼트 같은 독일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근대 언어학과 인류학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비코는 또한 '역사적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단순히 연대기적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각 시대의 정신과 문화를 이해하려는 새로운 역사학의 출발점이었다.

비코의 사상은 생전에는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 그의 복잡하고 난해한 문체, 그리고 당시 주류였던 계몽주의적 이성주의와는 다른 접근법 때문이었다. 하지만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그의 가치가 재평가되기 시작했고, 특히 독일 관념철학과 역사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경제학과 행정학의 발전

밀라노와 나폴리의 계몽주의는 법학과 철학뿐만 아니라 경제학과 행정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 시기 이탈리아 지식인들은 중상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경제 이론을 모색했고, 효율적인 국가 운영 방안을 연구했다.

피에트로 베르리는 『경제학 강의』(Lezioni di economia politica)에서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국가 간 교역이 모든 참여자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아담 스미스보다 앞선 자유주의 경제학의 선구적 사고였다. 또한 그는 인구 증가와 경제 발전의 관계를 분석했는데, 이는 맬서스의 인구론보다 훨씬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안토니오 제노베시는 나폴리 대학교에서 유럽 최초의 경제학 교수직을 맡았다. 그의 『시민 경제학 강의』(Lezioni di economia civile)는 경제학을 독립적인 학문으로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제노베시는 경제 발전이 단순히 부의 축적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행복 증진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정학 분야에서는 카를로 안토니오 필란지에리의 『입법학』(Scienza della legislazione)이 주목할 만했다. 그는 법과 행정이 과학적 원리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효율적인 관료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러한 사상은 이후 나폴레옹 시대의 행정 개혁에도 영향을 미쳤다.

교육 개혁과 여성의 지위 향상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교육 개혁을 사회 발전의 핵심으로 보았다. 밀라노와 나폴리의 지식인들도 기존의 낡은 교육 제도를 비판하고 새로운 교육 방법을 제시했다. 이들은 교육이 특권층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계층에게 개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밀라노의 교육 개혁가들은 실용적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 중심의 고전 교육보다는 모국어, 수학, 자연과학, 역사, 지리 등을 중시했다. 또한 직업 교육의 필요성도 제기했는데, 이는 산업 발전에 필요한 숙련 노동자를 양성하기 위함이었다.

여성 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마리아 가에타나 아녜시는 수학자로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지적 능력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는 데 기여했다. 그녀의 『해석적 연구』(Instituzioni analitiche)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수학 교재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엘리사베타 카밀라 토렐리는 『여성의 지적 능력에 관한 논고』에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사상이었으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

계몽주의는 이탈리아의 과학 기술 발전에도 큰 자극을 주었다. 이 시기 이탈리아 과학자들은 갈릴레이의 전통을 이어받아 실험과 관찰을 중시하는 근대 과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알레산드로 볼타는 전기 연구의 선구자였다. 그의 볼타 전지 발명은 전기학 발전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볼타는 단순한 실험에 그치지 않고 전기 현상을 수학적으로 분석했으며, 이는 후에 전자공학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루이지 갈바니는 생체 전기 현상을 발견했다. 그의 개구리 다리 실험은 생물학과 의학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으며, 후에 신경생리학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갈바니와 볼타 사이의 논쟁은 과학적 토론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라차로 스팔란차니는 생물학 연구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자연발생설을 실험으로 반박했으며, 박쥐의 초음파 항법 능력을 최초로 발견했다. 이러한 연구는 당시 유럽 과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예술과 문화의 계몽주의적 변화

계몽주의는 이탈리아의 예술과 문화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기존의 바로크 양식이 점차 신고전주의로 바뀌어 갔고, 예술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났다.

문학 분야에서는 카를로 골도니가 연극 개혁을 주도했다. 그는 기존의 즉흥극(코메디아 델라르테)을 벗어나 사실적이고 교훈적인 희곡을 썼다. 골도니의 작품들은 중산층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하여 계몽주의적 가치관을 반영했다.

음악에서는 도메니코 치마로사와 조반니 파이지엘로가 새로운 오페라 부파(희가극) 양식을 발전시켰다. 이들의 작품은 귀족적인 오페라 세리아와 달리 서민적이고 친근한 내용을 다루었으며, 음악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건축과 도시계획 분야에서도 계몽주의적 사고가 반영되었다.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1778년 개관)은 단순히 오락 시설이 아니라 시민들의 문화적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또한 넓은 광장과 직선적인 도로망을 가진 신고전주의 도시계획이 도입되었다.

종교와 세속화의 진전

계몽주의는 이탈리아의 종교생활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전통적인 가톨릭 신앙은 여전히 강했지만, 종교와 이성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사고가 확산되었다. 이는 과격한 반종교적 태도가 아니라 보다 합리적이고 관용적인 종교관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루도비코 안토니오 무라토리는 『교회사 연구』에서 가톨릭 교회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교회의 미신적 요소들을 비판하면서도 기독교의 핵심 가치는 옹호했다. 이러한 접근법은 '가톨릭 계몽주의'라는 독특한 사상 조류를 만들어냈다.

또한 이 시기에는 관용의 정신이 확산되었다. 비록 종교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태도가 생겨났다. 특히 유대인에 대한 차별 완화와 개신교도에 대한 관용 정책이 점차 확산되었다.

결론

18세기 밀라노와 나폴리에서 꽃핀 계몽주의는 이탈리아 근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베카리아의 인도주의적 법학과 비코의 창의적인 역사 철학은 유럽 사상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었다. 이들의 사상은 단순히 외국 이론의 모방이 아니라 이탈리아만의 독창적인 지적 성취였다.

계몽주의는 이탈리아 사회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법제도의 인도주의적 개혁, 경제학과 행정학의 과학적 접근, 교육 제도의 근대화, 여성 지위의 향상, 과학 기술의 발전, 예술의 사회적 기능 강화 등은 모두 계몽주의 사상의 결실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계몽주의가 이탈리아인들에게 비판적 사고와 개혁 의지를 심어주었다는 점이다. 이는 이후 나폴레옹 시대의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지적 토대가 되었고, 더 나아가 19세기 리소르지멘토 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계몽주의를 통해 이탈리아는 과거의 영광에만 머물지 않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