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y

비교철학 5. 정치철학의 두 얼굴 - 한비자와 홉스의 권력론 비교

SSSCH 2025. 4. 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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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권력의 철학자들

역사적으로 인간 사회는 항상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체제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체제의 본질에 대해 질문해온 철학자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해왔다. 특히 권력과 법의 본질, 그리고 인간 본성과 정치 질서의 관계를 탐구해온 사상가들은 정치철학의 중요한 축을 형성해왔다. 이 중에서도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한비자(韓非子, 기원전 280-233년경)와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각자의 시대와 문화적 맥락 속에서 정치 권력의 본질과 필요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제시했다.

두 사상가는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권에서 활동했지만, 흥미롭게도 그들의 정치철학은 여러 면에서 놀라운 유사성을 보인다. 둘 다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강력한 통치 권력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법과 형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물론 그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도 존재한다. 한비자는 군주의 절대적 권위를 옹호한 반면, 홉스는 주권자의 권력이 시민들의 계약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이 글에서는 한비자와 홉스의 정치철학을 비교하며, 그들이 각자의 시대적 맥락에서 어떻게 권력과 법의 문제를 다루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사상이 현대 정치철학에 어떤 함의를 가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한비자와 법가(法家) 사상

한비자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한비자는 중국 전국시대 말기 한(韓) 나라의 귀족 출신으로, 당시 유명한 유가(儒家) 학자였던 순자(荀子)의 제자였다. 그러나 그는 스승의 유가 사상보다는 법가(法家) 사상을 발전시켰고, 후에 진(秦) 나라에 들어가 정책을 제안했으나, 정적들의 모함으로 옥에 갇혀 자살을 강요받았다.

한비자가 활동했던 전국시대는 중국 역사상 극심한 혼란과 전쟁의 시기였다. 여러 제후국들이 생존과 패권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의 부강과 통일을 위한 실용적 정책이 요구되었다. 한비자의 법가 사상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대한 응답이었다.

한비자의 정치철학

한비자의 정치철학은 크게 세 가지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법(法), 술(術), 세(勢).

  1. 법(法): 한비자에게 법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명확한 규칙과 그에 따른 상벌 체계를 의미한다. 그는 법이 인간의 주관적 판단에 좌우되지 않고,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은 금과 자(尺)와 같아서 곡직(曲直)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법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강조한 것이다.
  2. 술(術): 술은 군주가 신하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기술이다. 한비자는 군주가 신하들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방법을 알아야 하며, 신하들이 자신의 실제 능력과 업적을, 과장하지도 숨기지도 않고, 그대로 나타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즉 적을 이용해 적을 제어하는 전략을 제안했다.
  3. 세(勢): 세는 군주의 권력과 권위를 의미한다. 한비자는 군주의 권력이 그의 개인적 덕이나 능력이 아니라, 그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지위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군주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결코 권력을 위임하거나 분산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세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한비자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방법론을 제시했다. 그에게 이상적인 정치 체제는 법에 의한 통치, 즉 법치(法治)였지만, 이때의 법은 군주의 의지를 실현하는 도구로서의 법이었다.

한비자의 인간관

한비자의 정치철학은 그의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적 견해에 기초한다. 그는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을 더욱 철저히 발전시켜,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며, 오직 이익과 형벌에 의해서만 움직인다고 보았다.

"사람은 이익을 보면 앞으로 나아가고, 해로움을 보면 물러선다"(『한비자』「유로(有度)」)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비자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존재라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도덕적 설득이나 개인의 덕성에 의존하는 유가적 접근법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대신 한비자는 명확한 상과 벌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형벌이 무거우면 명령이 행해지고, 상이 많으면 금지가 지켜진다"(『한비자』「유로」)라고 말하며, 특히 형벌의 억제력을 강조했다. 그에게 형벌은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필수적인 도구였다.

한비자의 군주론

한비자에게 군주는 국가의 절대적 중심이자 권력의 원천이다. 그러나 그는 군주가 개인적 덕성이나 능력으로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군주가 '무위(無爲)'의 자세를 취하면서, 법과 제도를 통해 통치해야 한다고 보았다.

"현명한 군주는 자신의 지혜를 드러내지 않고, 법을 통해 다스린다"(『한비자』「주도(主道)」)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비자는 군주가 직접 정책을 결정하거나 집행하기보다는, 객관적인 법과 제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통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한비자는 군주가 신하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권력을 위임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신하가 강하면 군주는 약해지고, 국가가 혼란해진다"(『한비자』「남면(難面)」)라고 경고하며, 군주가 항상 신하들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홉스와 사회계약론

홉스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토마스 홉스는 1588년 영국 말미즈버리에서 태어나, 1679년에 사망했다. 그의 생애는 영국 역사의 격동기와 일치한다. 그는 엘리자베스 1세의 통치 말기에 태어나, 스튜어트 왕조의 통치, 청교도 혁명과 내전, 크롬웰의 호국경 정치, 그리고 왕정복고까지 경험했다.

특히 영국 내전(1642-1651)은 홉스의 정치철학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내전의 혼란과 무질서는 홉스로 하여금 강력한 중앙 권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다. 그의 대표작 『리바이어던(Leviathan)』(1651)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홉스의 정치철학

홉스의 정치철학은 그의 유물론적 세계관과 과학적 방법론에 기초한다. 그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물질적 입자들의 운동으로 설명하려 했으며, 정치학 역시 기하학적 엄밀성을 갖춘 과학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홉스의 정치철학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1. 자연 상태(state of nature): 홉스는 정치 사회 이전의 인간 상태, 즉 '자연 상태'를 가정했다. 그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생존과 안전을 위협받는 극도의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 상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으로 묘사되며,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불쾌하고, 잔인하고, 그리고 짧다"(『리바이어던』 13장).
  2. 사회계약(social contract): 이러한 비참한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들은 상호 합의를 통해 자신들의 자연권을 주권자에게 양도하는 계약을 맺는다. 이 계약을 통해 정치 사회, 즉 국가가 형성된다.
  3. 주권(sovereignty): 사회계약을 통해 설립된 주권은 절대적이고 불가분하며, 주권자는 신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를 갖는다. 주권자의 권력은 신민들의 동의에서 비롯되지만, 일단 설립된 후에는 거의 제한받지 않는다.

홉스의 이러한 정치철학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는 정치 권력의 기원을 신이나 전통이 아닌, 인간들의 합리적 계약에서 찾음으로써 근대 정치철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홉스의 인간관

홉스의 정치철학은 그의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적 견해에 기초한다. 그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자기 보존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이를 위해 끊임없이 권력을 추구한다고 보았다.

"나는 모든 인간에게서 영원하고 끊임없는 욕망을 하나의 일반적 성향으로 본다. 그것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한 권력에서 다른 권력으로 나아가려는 욕망이다"(『리바이어던』 11장)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홉스는 인간의 권력 욕구가 인간 본성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홉스는 인간이 서로 평등하다고 보았다. 이 평등은 신체적, 정신적 능력의 평등이 아니라, 서로를 해칠 수 있는 능력의 평등이다. 아무리 약한 사람도 가장 강한 사람을 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 상태에서 모든 인간은 서로를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자기 보존을 위해 선제적 공격을 감행하게 되고, 이것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 상태를 초래한다. 홉스에게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보존을 추구하는 존재였다.

홉스의 주권론

홉스에게 주권은 정치 공동체의 핵심이다. 그는 주권을 "모든 사람에 대해, 모든 일에 있어서 최고의 명령권을 가진 자"(『리바이어던』 18장)로 정의했다. 주권자는 국내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거의 무제한의 권력을 가진다.

홉스에 따르면, 주권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진다:

  1. 절대성: 주권자의 권력은 절대적이며, 신민들은 주권자에게 복종할 의무가 있다. 단, 자기 보존의 권리만은 양도할 수 없는 것으로, 주권자가 신민의 생명을 직접 위협할 경우에는 저항할 수 있다.
  2. 불가분성: 주권은 나누어질 수 없다. 홉스는 권력 분립론을 비판하며, 주권이 분할되면 내전과 혼란이 초래된다고 주장했다.
  3. 합법성: 주권자는 법을 제정하고 해석하고 집행하는 권한을 가진다. 법은 주권자의 의지의 표현이며, 주권자 자신은 법 위에 있다.

홉스의 주권론은 전통적인 왕권신수설과 달리, 주권이 신이 아닌 인간의 합의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일단 설립된 주권은 거의 제한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권위주의적 성격을 띤다.

한비자와 홉스의 비교

인간관의 유사성

한비자와 홉스는 모두 인간 본성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둘 다 인간을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로 보았다.

한비자는 "사람은 이익을 보면 앞으로 나아가고, 해로움을 보면 물러선다"고 말했고, 홉스는 인간의 "영원하고 끊임없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강조했다. 두 사상가 모두 인간의 선한 본성이나 도덕적 직관에 대한 신뢰보다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전제로 정치 체제를 구상했다.

이러한 인간관의 유사성은 그들이 각자 경험한 혼란의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 한비자는 전국시대의 끊임없는 전쟁과 혼란을, 홉스는 영국 내전의 폭력과 무질서를 목격했다. 두 사상가 모두 이러한 경험을 통해 인간 본성의 어두운 측면과 그것을 통제할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권력과 법에 대한 관점

한비자와 홉스는 모두 강력한 중앙 권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두 사상가 모두 권력이 분산되면 사회가 혼란에 빠진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권력의 집중을 옹호했다.

또한 두 사상가 모두 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비자에게 법은 군주의 의지를 실현하는 도구이자,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객관적 규칙이었다. 홉스에게 법은 주권자의 명령이자,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필수적인 장치였다.

그러나 두 사상가의 법 개념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한비자에게 법은 군주의 의지를 실현하는 도구였지만, 동시에 군주도 법에 따라 통치해야 한다는 관념이 있었다. 반면 홉스에게 법은 전적으로 주권자의 의지의 표현이었으며, 주권자 자신은 법 위에 있었다.

정치 권력의 기원과 정당성

한비자와 홉스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정치 권력의 기원과 정당성에 대한 견해에 있다. 한비자는 군주의 권력이 자연스러운 질서의 일부로서 존재한다고 보았으며, 그 정당성에 대해 특별히 문제 삼지 않았다. 반면 홉스는 주권의 기원을 인민들의 합의, 즉 사회계약에서 찾았다.

홉스의 사회계약론은 정치 권력이 신민들의 동의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근대적이고 민주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물론 홉스는 일단 주권이 설립된 후에는 신민들이 저항할 권리가 거의 없다고 보았지만, 주권의 기원을 인민의 동의에서 찾았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반면 한비자는 그러한 계약론적 관점을 갖지 않았다. 그에게 군주의 권력은 자연스러운 질서의 일부였으며, 그 정당성은 효율성과 실용성에 의해 평가되었다. 한비자에게 중요한 것은 군주의 권력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국가의 부강을 이끌어내는가 하는 점이었다.

형(刑)·명(名)과 사회계약

한비자의 '형명(刑名)' 사상과 홉스의 사회계약론 사이에는 흥미로운 대비점이 있다. '형명'이란 '이름(名)'과 '형벌(刑)'의 관계를 의미하는데, 이는 각 관직에 부여된 직책(名)과 그에 따른 실제 성과(實)가 일치하는지 감독하고, 불일치할 경우 형벌을 가하는 제도를 말한다.

한비자는 이 '형명' 제도를 통해 군주가 신하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신하들은 자신의 직책에 맞는 성과를 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형벌을 받게 된다. 이는 일종의 계약적 관계로 볼 수 있지만, 군주와 신하 사이의 일방적인 계약이다.

반면 홉스의 사회계약론은 모든 개인들 사이의 상호 계약이다. 각 개인은 자신의 자연권을 주권자에게 양도하는 대신, 생명과 재산의 보호를 보장받는다. 이 계약은 주권자와 신민 사이의 직접적인 계약이 아니라, 신민들 상호 간의 계약이다.

이러한 차이는 두 사상가가 활동했던 시대와 문화적 맥락의 차이를 반영한다. 한비자는 군주제가 자연스러운 정치 형태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에 활동했던 반면, 홉스는 근대 초기 유럽에서 정치 권력의 기원과 정당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발전하던 시기에 활동했다.

한비자와 홉스 사상의 현대적 함의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한비자와 홉스의 사상은 모두 강력한 중앙 권력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권위주의적 성격을 띤다. 그러나 그들의 사상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도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먼저, 두 사상가의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적 견해는 권력의 견제와 균형, 법치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현대 민주주의 제도의 기본 전제와 맞닿아 있다. 민주주의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가정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을 가진 인간은 부패하기 쉽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또한 홉스의 사회계약론은 정치 권력이 인민의 동의에서 비롯된다는 근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예고했다. 비록 홉스 자신은 절대 주권을 옹호했지만, 그의 계약론적 접근은 이후 로크, 루소 등에 의해 발전되어 현대 민주주의 이론의 토대가 되었다.

한편 한비자의 법가 사상은 '법 앞의 평등'이라는 현대 법치주의의 중요한 원칙을 선구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법이 모든 사람에게, 심지어 고위 관료와 귀족들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 안보와 개인의 자유

한비자와 홉스는 모두 국가의 안정과 안보를 최우선 가치로 여겼다. 이는 국가 안보와 개인의 자유 사이의 균형이라는 현대 정치의 중요한 과제와 연관된다.

현대 사회에서도 테러리즘, 사이버 공격, 전염병 등 다양한 안보 위협이 존재하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의 감시와 통제 권한이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데, 이는 한비자와 홉스가 다루었던 문제의 현대적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두 사상가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의 안정과 안보는 개인의 자유보다 우선한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이 두 가치 사이의 균형을 추구한다. 국가의 안보를 확보하면서도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현대 정치의 중요한 과제이다.

법치주의와 통치술

한비자와 홉스는 모두 법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그들의 법 개념은 현대 법치주의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현대 법치주의는 법이 모든 사람, 심지어 통치자까지도 구속한다는 원칙에 기초한다. 반면 한비자와 홉스의 법은 주로 통치자의 의지를 실현하는 도구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두 사상가의 사상에서도 현대 법치주의의 맹아를 발견할 수 있다. 한비자는 법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홉스도 주권자가 신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를 강조했다.

현대 사회에서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 중 하나이지만, 그것의 구체적인 실현 방식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법이 단순히 다수의 의지를 실현하는 도구인가, 아니면 다수의 횡포로부터 소수를 보호하는 방패인가? 법의 집행과 해석에 있어 얼마만큼의 재량권이 허용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한비자와 홉스가 다루었던 법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문제의 현대적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한비자의 '형명(刑名)' 사상과 홉스의 법 개념은 법이 통치 권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법은 국가 권력의 중요한 표현 수단이지만, 동시에 그 권력을 제한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중적 성격은 법치주의의 본질적 딜레마를 보여준다.

특히 최근의 '행정국가(administrative state)'의 확대와 함께, 법의 집행에 있어 행정부의 재량권이 커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한비자가 강조한 군주의 통치술과 현대 민주주의의 법치주의 사이의 긴장을 보여준다. 법이 단순히 통치 권력의 도구가 되지 않고, 진정한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법부의 독립성과 시민사회의 감시가 필수적이다.

권력의 본질에 대한 통찰

한비자와 홉스의 가장 중요한 공헌 중 하나는 권력의 본질에 대한 냉철한 통찰이다. 두 사상가 모두 정치를 도덕적 이상이나 추상적 원칙이 아니라, 권력의 현실적 역학 관계로 이해했다.

한비자는 "권력(勢)이 없으면 현명함도 발휘할 수 없다"고 말하며, 권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홉스 역시 "권력 없는 계약은 단지 말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정치적 약속과 합의가 권력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권력 정치(power politics)'에 대한 통찰은 현대 국제 관계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국제 사회에는 국내 사회와 달리 중앙집권적 권위체가 없기 때문에, 국가 간 약속과 조약은 종종 힘의 균형에 의존한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은 이러한 관점에서 한비자와 홉스의 사상을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현대 사회는 순수한 권력 정치를 넘어, 법과 제도, 국제 규범을 통한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한비자와 홉스의 비관적 현실주의를 부분적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결론: 권력과 법의 변증법

한비자와 홉스의 정치철학을 비교함으로써, 우리는 동서양의 서로 다른 지적 전통에서 발전한 사상 사이의 흥미로운 유사점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 사상가 모두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적 견해를 바탕으로, 강력한 중앙 권력과 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치 권력의 기원과 정당성에 대한 이해에서는 중요한 차이를 보였다.

한비자와 홉스의 사상은 현대 정치철학에도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그들의 인간관은 권력의 견제와 균형, 법치주의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며, 그들의 권력론은 국가 안보와 개인의 자유 사이의 긴장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현대 사회는 한비자와 홉스가 살았던 시대와는 크게 다르지만, 권력과 법, 안보와 자유, 통제와 자율 사이의 균형을 찾는 문제는 여전히 우리 시대의 중요한 과제다. 한비자와 홉스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우리는 이러한 과제에 대한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두 사상가가 보여준 권력과 법의 변증법적 관계는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전개되고 있다. 권력은 법을 통해 실현되지만, 동시에 법에 의해 제한된다. 법은 권력의 도구이면서도, 권력 남용을 방지하는 방패이기도 하다. 이러한 복잡한 관계 속에서 정의로운 정치 질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현대 정치철학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한비자와 홉스는 각자의 시대와 문화적 맥락 속에서 권력과 법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했다. 그들의 사상은 때로는 냉혹하고 비관적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정치적 이상주의의 한계를 넘어 권력의 현실을 직시하려는 시도였다. 오늘날 우리는 그들의 현실주의적 통찰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더 정의롭고 자유로운 정치 공동체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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