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론의 근본 물음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의 궁극적 실재는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본질과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변은 각 문화권마다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어 왔다. 특히 서양 형이상학의 핵심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과 불교 중관학파의 창시자 나가르주나의 '공성(空性)' 개념은 존재에 대한 상이한 이해 방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 두 사상가의 핵심 개념을 비교하는 작업은 단순히 동서양 철학의 차이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존재와 비존재, 실체와 관계, 영속성과 변화라는 인류 보편의 철학적 문제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나가르주나는 각자의 문화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남겼으며, 그 사유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존재론의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우선실체(ousia)'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년)의 존재론은 그의 스승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플라톤이 개별 사물과 분리된 이데아의 세계에서 진정한 실재를 찾았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감각하는 구체적 사물들 속에서 실재를 찾고자 했다. 그의 주저 『형이상학(Metaphysics)』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바로 '우시아(ousia)', 즉 '실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실체란 무엇일까? 그는 『범주론(Categories)』에서 실체를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즉,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실체다. 그는 실체를 다시 '제일(第一) 실체'와 '제이(第二) 실체'로 구분한다. 제일 실체는 개별적 존재자들, 예컨대 '이 특정한 사람'이나 '저 구체적인 말'과 같은 것이다. 반면 제이 실체는 '사람'이나 '말'과 같은 종(種) 또는 유(類)를 가리킨다.
『형이상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에 대한 논의를 더욱 심화시킨다. 여기서 그는 실체의 본질적 특성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시한다:
- 기체성(基體性, substratum): 실체는 다른 속성들이 귀속되는 기본적인 주체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라는 실체에 '현명함', '아테네인임' 등의 속성이 귀속된다.
- 독립성(independence): 실체는 다른 것들에 의존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다. 반면 '하얌'이나 '3미터임'과 같은 속성은 그 자체로는 존재할 수 없고, 항상 어떤 실체에 귀속되어야만 한다.
- 개별성(individuality): 실체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것이다. '이 사람', '저 나무'와 같이 지시할 수 있는 개별자가 실체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다.
- 본질(essence): 실체는 우연적 속성들과 구별되는 본질적 속성을 가진다. 소크라테스의 키나 머리 색깔은 변할 수 있지만, 그가 '이성적 동물'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를 '형상(form)'과 '질료(matter)'의 결합으로 이해했다. 질료는 아직 특정한 형태를 갖지 않은 가능태의 상태이고, 형상은 그것을 특정한 존재자로 규정하는 현실태다. 예를 들어 청동 조각상에서 청동은 질료이고, 그것이 갖는 특정한 모양은 형상이다. 그런데 형상과 질료의 관계는 상대적이다. 청동 자체도 더 기본적인 원소들의 형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에서 가장 근본적인 실체는 무엇일까? 그는 『형이상학』 12권에서 '부동의 동자(不動의 動者, unmoved mover)'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모든 운동과 변화의 궁극적 원인이지만, 그 자신은 결코 변하지 않는 순수한 형상, 즉 신(神)을 의미한다. 이 부동의 동자는 질료 없는 순수한 현실태로서, 모든 존재자들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적인 동시에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원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은 서양 형이상학의 기본 틀을 형성했다. 특히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는 그의 실체 개념이 기독교 신학과 결합하여 더욱 체계화되었고, 근대 철학에서도 데카르트의 '사유하는 실체'와 '연장적 실체',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었다. 칸트와 헤겔을 거쳐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의 존재론적 물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과의 대화 속에서 전개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가르주나와 '공성(空性, śūnyatā)'
인도의 불교 철학자 나가르주나(龍樹, 약 150-250년)는 서양 철학의 아리스토텔레스만큼이나 동아시아 사상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는 중관학파(中觀學派, Mādhyamika)의 창시자로, 불교의 핵심 개념인 '공(空, śūnyatā)'을 철학적으로 정교화했다.
나가르주나의 주저 『중론(中論, Mūlamadhyamakakārikā)』은 당시 불교 내외의 다양한 존재론적 견해들을 비판하면서, '연기(緣起, pratītya-samutpāda)'와 '공성(空性)'이라는 붓다의 가르침을 철학적으로 재해석한다. 그의 사상은 종종 '부정의 철학'으로 오해되지만, 실제로는 모든 고정된 관점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통해 궁극적 진리에 접근하는 '중도(中道)'의 철학이다.
나가르주나의 존재론적 사유는 다음과 같은 핵심 개념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 연기(緣起): 모든 현상은 상호의존적으로 발생한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무수한 조건들의 일시적 집합이다. 예를 들어 '나무'라는 존재는 흙, 물, 햇빛 등 다양한 조건들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 공성(空性): 이러한 연기적 존재 방식을 갖는 모든 것은 '자성(自性, svabhāva)', 즉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본질을 결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공성'이다. '공'하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고정불변한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 중도(中道): 나가르주나는 '존재한다(有)'와 '존재하지 않는다(無)'라는 이분법적 견해를 모두 거부한다. 현상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양 극단을 떠난 중간적 관점이 '중도'다.
- 사구부정(四句否定, tetralemma): 나가르주나는 인도 논리학의 전통인 '사구(四句)'를 활용하여 모든 형이상학적 견해를 비판한다. 그는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네 가지 가능한 형이상학적 입장을 모두 부정한다.
『중론』의 첫 구절은 그의 사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어떤 것도 스스로 생겨나지 않고, 다른 것으로부터 생겨나지 않으며, 둘 다에서 생겨나지 않고, 원인 없이 생겨나지도 않는다." 이는 모든 존재자가 특정한 원인이나 조건에 의해 독립적으로 생성된다는 견해를 부정하는 것이다.
나가르주나에게 '공성'은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모든 개념적 구성물을 넘어서는 궁극적 진리에 대한 접근 방식이다. 그는 모든 현상이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한다는 연기의 진리와 모든 현상이 고정된 자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공성의 진리가 동일하다고 본다. 이를 '연기즉공(緣起卽空)', '공즉연기(空卽緣起)'라고 표현한다.
나가르주나의 사상은 동아시아 불교, 특히 중국의 삼론종(三論宗)과 천태종(天台宗), 그리고 선종(禪宗)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선종의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과 같은 교리는 나가르주나의 공 사상을 실천적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서구 철학과의 대화 속에서 나가르주나의 사상이 재조명되고 있으며, 특히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이나 데리다의 해체주의와의 유사성이 주목받고 있다.
실체와 공성의 대화: 존재론적 가정의 충돌과 소통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과 나가르주나의 공성 개념은 언뜻 보면 완전히 대립되는 것처럼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독립적이고 본질적인 실체의 존재를 긍정하는 반면, 나가르주나는 그런 실체의 존재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사상가의 존재론을 더 깊이 살펴보면, 단순한 대립을 넘어선 흥미로운 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
존재론적 가정의 차이
먼저 두 사상가의 존재론적 가정의 차이를 살펴보자:
- 실체와 속성: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와 속성을 구분한다. 실체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속성은 실체에 의존한다. 반면 나가르주나는 이러한 구분 자체를 문제 삼는다. 그에게는 실체와 속성 모두 연기적으로 존재하며, 어떤 것도 독립적인 자성을 갖지 않는다.
- 동일성과 변화: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 속에서도 유지되는 동일성을 설명하기 위해 실체 개념을 도입한다. 소크라테스는 나이가 들고 외모가 변해도 여전히 동일한 소크라테스다. 반면 나가르주나는 이러한 동일성 자체를 환상으로 본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고정된 '자아'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 인과관계: 아리스토텔레스는 원인과 결과가 실체로서 구분된다고 본다. 반면 나가르주나는 원인과 결과가 상호의존적이며, 독립적인 '원인'이나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 언어와 실재: 아리스토텔레스는 언어가 실재를 적절히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범주론은 언어의 구조가 실재의 구조를 반영한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반면 나가르주나는 언어와 개념이 궁극적 실재를 포착할 수 없다고 본다. 언어는 항상 이분법적 구조(있다/없다, 하나/여럿 등)를 전제하지만, 궁극적 실재는 이러한 이분법을 초월한다.
존재론적 질문의 유사성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상가가 탐구하는 존재론적 질문에는 중요한 유사성이 있다:
- 현상의 본질 탐구: 두 사상가 모두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 세계의 궁극적 본질을 탐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실체'에서 찾고, 나가르주나는 '공성'에서 찾지만, 둘 다 표면적 현상 너머의 근본 원리를 추구한다.
- 변화와 영속성의 문제: 두 사상가 모두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어떤 것이 지속되는가라는 문제를 다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 속에서도 유지되는 실체를 상정하고, 나가르주나는 변화 자체가 모든 것의 본질이라고 본다.
- 관계성에 대한 인식: 표면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상가 모두 존재자들 간의 관계성을 중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질료' 구조나 '부동의 동자'가 세계와 맺는 관계, 나가르주나의 '연기' 개념은 모두 관계성에 주목한다.
- 언어와 사유의 한계 인식: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사유와 언어의 궁극적 원리인 '모순율'을 정식화했지만, 동시에 그것의 한계도 인정했다. 나가르주나는 모든 개념적 구성물의 한계를 더 철저히 비판했지만, 두 사상가 모두 언어와 사유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다.
현대적 대화의 가능성
실체와 공성이라는 상이한 존재론적 관점은 현대 철학에서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까?
- 과정 철학적 관점: 화이트헤드나 들뢰즈와 같은 과정 철학자들은 고정된 실체보다는 '생성'과 '관계'를 강조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을 나가르주나의 연기 사상과 접목시키는 한 방식이 될 수 있다.
- 언어 비판: 비트겐슈타인이나 데리다와 같은 철학자들은, 나가르주나처럼, 언어의 이분법적 구조가 실재를 왜곡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적 접근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는 데 도움을 준다.
- 인지과학과의 대화: 현대 인지과학에서는 '확장된 마음' 이론이나 '체화된 인지' 이론과 같이, 마음을 고정된 실체가 아닌 환경과의 역동적 상호작용으로 보는 관점이 발전하고 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질료 구조와 나가르주나의 연기 사상이 현대적 맥락에서 만날 수 있는 지점이다.
- 양자물리학과의 접점: 현대 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은 고전적인 실체 개념에 도전한다. 양자 수준에서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으며(불확정성 원리), 입자는 관찰되기 전에는 확률적 상태로만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은 나가르주나의 공성 개념과 흥미로운 접점을 형성한다.
존재/비존재의 범주 구분 방식 비교
아리스토텔레스와 나가르주나는 존재와 비존재를 구분하는 방식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동서양의 사유 방식 자체의 차이를 반영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 체계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론』에서 존재자가 서술될 수 있는 열 가지 범주를 제시한다:
- 실체(substance): 무엇인가(소크라테스, 말)
- 양(quantity): 얼마나 큰가(두 규빗, 세 규빗)
- 질(quality): 어떤 종류인가(하양, 문법에 능함)
- 관계(relation): 무엇과 관련되는가(두 배, 절반)
- 장소(place): 어디에 있는가(시장에, 리케이온에)
- 시간(time): 언제인가(어제, 작년)
- 상태(position): 어떤 자세인가(앉아있음, 누워있음)
- 소유(having):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신발을 신음, 무장함)
- 행함(doing): 무엇을 하는가(자름, 불태움)
- 겪음(being affected): 무엇을 겪는가(잘림, 불태워짐)
이 범주 체계는 '무엇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서술 방식을 체계화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존재한다'는 항상 특정한 방식으로 존재함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는 '실체'로 존재하고, 그의 키는 '양'으로, 그의 지혜는 '질'로 존재한다.
이러한 범주 체계는 서양 철학의 존재론적 사유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실체'가 가장 기본적인 범주로 설정됨으로써, 서양 철학에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에 대한 탐구가 중심을 이루게 되었다.
나가르주나의 사구 체계
나가르주나는 이와는 전혀 다른 접근법을 취한다. 그는 인도 전통의 '사구(四句, catuṣkoṭi)'라는 논리적 틀을 사용하여 모든 존재론적 명제를 비판한다:
- A이다(有, asti): 존재한다
- A가 아니다(無, nāsti): 존재하지 않는다
- A이면서 A가 아니다(亦有亦無, ubhaya):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 A도 아니고 A가 아닌 것도 아니다(非有非無, anubhaya):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가르주나는 이 네 가지 가능한 입장을 모두 부정한다(사구부정, catuṣkoṭi-niṣedha). 예를 들어 『중론』 1장에서 그는 '생성'에 대해 이 사구 체계를 적용한다: "어떤 것도 자기 자신으로부터 생겨나지 않고(제1구 부정), 다른 것으로부터 생겨나지 않으며(제2구 부정), 자기 자신과 다른 것 모두로부터 생겨나지 않고(제3구 부정), 원인 없이 생겨나지도 않는다(제4구 부정)."
이러한 부정을 통해 나가르주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모든 개념적 구성물을 넘어선 '중도'의 관점이다. 현상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모순적으로 '둘 다인 것'도 아니고, '둘 다 아닌 것'으로 개념화할 수도 없다. 현상의 진정한 모습은 이러한 개념적 그물망을 초월한다.
존재론적 범주화의 차이
아리스토텔레스와 나가르주나의 접근법 차이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 긍정 vs. 부정: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범주화하는 반면, 나가르주나는 모든 범주화를 부정함으로써 궁극적 진리에 접근한다.
- 정태적 vs. 역동적: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는 비교적 고정된 존재론적 구조를 전제하는 반면, 나가르주나의 사구는 모든 고정된 관점의 한계를 드러내는 역동적 도구다.
- 실체 중심 vs. 관계 중심: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에서는 '실체'가 중심이 되고 다른 범주들은 실체에 종속되는 반면, 나가르주나의 사유에서는 모든 것이 '연기'라는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이해된다.
- 사유의 목적: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은 세계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한 것인 반면, 나가르주나의 사구부정은 궁극적으로 개념적 사유를 초월한 깨달음을 위한 방편이다.
동서양 존재론의 현대적 의의
아리스토텔레스와 나가르주나의 존재론적 사유는 현대 철학과 과학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두 사상가의 관점은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대적 맥락에서는 상호보완적인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현대 존재론에 대한 시사점
- 관계적 존재론: 현대 철학, 특히 과정 철학이나 생태철학에서는 고정된 실체보다 관계와 과정을 강조하는 관계적 존재론이 발전하고 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에 대한 비판과 나가르주나의 연기 사상이 만나는 지점이다.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나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과 같은 현대 철학 작품들은 실체보다는 '관계'와 '생성'을 중심으로 존재를 이해한다.
- 복잡계 이론과 생태학적 관점: 현대 과학, 특히 복잡계 이론이나 생태학은 모든 존재자가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한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는 나가르주나의 연기 사상과 깊은 공명을 이룬다.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유기체적 세계관 역시 이러한 관점에 통찰을 제공한다.
- 존재론적 다원주의: 현대 철학에서는 단일한 존재론적 틀보다는 다양한 존재 방식을 인정하는 존재론적 다원주의가 발전하고 있다. 하이데거의 '존재 방식(ways of being)'이나 데리다의 '차연(différance)' 개념은 존재에 대한 단일한 범주화를 넘어서려는 시도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나가르주나의 대화를 통해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
- 인지과학과 불교 철학의 대화: 현대 인지과학에서는 '무아(無我)'나 '공(空)'과 같은 불교 개념이 인간의 인지와 의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체화된 마음' 이론이나 대니얼 데닛의 '자아 서사' 이론은 고정된 자아나 의식이 아닌, 역동적이고 구성적인 의식 현상을 강조한다.
두 존재론의 실천적 함의
아리스토텔레스와 나가르주나의 존재론은 단순한 이론적 구성물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윤리적 태도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 삶의 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중심 존재론은 각 존재자의 본질과 목적(telos)을 강조하며, 이는 '덕의 윤리학'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자신의 본질인 이성을 최대한 발휘함으로써 행복(eudaimonia)에 이른다는 것이다. 반면 나가르주나의 공성 사상은 모든 고정된 자아와 대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연기적 세계 속에서 자비와 지혜를 실천하는 불교적 삶의 방식으로 이어진다.
- 자연과 환경에 대한 관점: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자연관은 각 존재자가 자신의 내재적 목적을 실현하며 조화를 이루는 유기체적 세계를 그린다. 나가르주나의 연기 사상은 모든 존재자가 상호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두 관점 모두 현대 환경 윤리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 존재와 인식의 관계: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존재와 인식은 조화를 이룬다. 인간의 이성은 세계의 본질적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반면 나가르주나는 궁극적 실재가 개념적 인식을 초월한다고 본다. 이러한 차이는 지식의 본질과 한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한다.
결론: 존재론적 대화의 가능성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중심 존재론과 나가르주나의 공성 사상은 표면적으로는 대립되지만, 더 깊은 수준에서는 인류의 근본적인 존재론적 물음에 대한 상보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두 사상가 모두 현상 세계의 표면적 모습 너머에 있는 근본 원리를 탐구했으며, 각자의 문화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깊은 철학적 지혜를 발전시켰다.
현대의 비교철학은 이 두 위대한 사상가의 대화를 통해, 존재와 비존재, 영속성과 변화, 실체와 관계에 대한 더욱 풍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무엇임(what-ness)'과 나가르주나가 강조한 '어떻게 됨(how-ness)'은 서로를 배제하기보다, 실재의 서로 다른 측면을 드러내는 상보적인 관점으로 이해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비교철학의 목표는 서로 다른 철학 전통 간의 단순한 비교를 넘어, 인류의 보편적인 철학적 물음에 대한 더 깊고 풍부한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나가르주나의 대화는 이러한 목표를 향한 중요한 한 걸음이 될 수 있다. 이들의 사유는 2천 년이 넘는 시간과 수천 킬로미터의 공간을 가로질러, 여전히 우리에게 존재의 신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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