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y

아리스토텔레스 8.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기초와 행복론

SSSCH 2025. 3. 2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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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오늘날까지도 서양 윤리 사상의 핵심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그의 윤리 사상이 집대성된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단순한 도덕 규범집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삶의 목적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는 철학적 탐구서다. 특히 '행복(eudaimonia)'과 '덕(arete)'이라는 두 개념을 중심으로 인간이 어떻게 좋은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사유를 제공한다. 오늘은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기초를 살펴보며, 그가 말하는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인 행복(eudaimonia)의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실천학으로서의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윤리학은 단순히 앉아서 사유하는 이론적 학문이 아니다. 그는 윤리학을 '실천학(practical science)'으로 규정했다. 이는 윤리학이 궁극적으로 지식의 축적이 아닌 행동의 변화와 인격의 형성을 목표로 한다는 의미다. 이론적 학문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한 것이라면, 실천학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배우기 위한 학문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서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현재 탐구는 이론적 지식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덕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은 단지 덕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덕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함이다."

이런 관점은 당시 그리스 철학의 주요 흐름과도 일치한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도 철학이 궁극적으로 '좋은 삶을 살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윤리적 지식이 구체적인 행동과 습관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즉, 우리는 단지 정의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아니라, 정의롭게 행동함으로써 정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천학으로서의 윤리학 개념은 현대 윤리교육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윤리적 지식의 전달보다 윤리적 행동의 실천과 습관화가 더 중요하다는 점은 오늘날 인성교육과 도덕교육에서도 핵심적인 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목적론적 세계관과 인간의 기능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그의 목적론적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자연계의 모든 것은 고유한 목적(telos)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목적을 실현할 때 '좋음'을 성취한다. 칼의 목적이 자르는 것이라면, 좋은 칼은 잘 자르는 칼이다. 의사의 목적이 치료라면, 좋은 의사는 잘 치료하는 의사다.

그렇다면 인간의 고유한 목적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만의 고유한 기능(ergon)을 찾아냄으로써 이 질문에 답하고자 했다. 식물은 영양을 섭취하고 성장하는 기능을, 동물은 감각하고 욕구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기능은 '이성적 활동'이다.

"인간의 기능은 이성에 따른, 혹은 이성을 결여하지 않은 영혼의 활동이다."

따라서 인간의 '좋음'은 이성적 능력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데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성이 단순히 지적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성은 우리의 욕구와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고, 상황에 맞는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을 포함한다.

이런 관점은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서 지능'이나 '실천적 지혜'의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단순히 많은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하며, 구체적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진정한 인간의 탁월함이라는 것이다.

행복(eudaimonia)의 의미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핵심 개념인 '행복(eudaimonia)'은 현대적 의미의 행복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행복이 주로 주관적 감정 상태나 만족감을 의미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eudaimonia는 '잘 사는 것(living well)'이나 '잘 행동하는 것(doing well)'에 가깝다.

"행복은 덕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다."

이는 행복이 단순한 쾌락이나 부, 명예와 같은 외적 조건에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외적 조건들이 행복한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인정했다.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이나 좋은 친구, 적절한 사회적 인정은 행복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 자체가 행복은 아니다.

진정한 행복은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기능, 즉 이성적 능력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삶에서 찾아진다. 그리고 이러한 탁월함은 일시적인 행위가 아니라 지속적인 성품과 습관으로 자리잡을 때 가능하다.

이런 관점은 현대 긍정심리학의 '번영(flourishing)' 개념과 유사하다. 마틴 셀리그만을 비롯한 많은 심리학자들은 진정한 행복이 단순한 쾌락이나 만족감이 아니라, 자신의 강점과 덕성을 발휘하여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23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eudaimonia 개념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덕(arete)과 탁월함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덕(arete)은 단순한 도덕적 선함을 넘어 '탁월함' 또는 '우수함'을 의미한다. 칼의 덕이 날카로움이듯, 인간의 덕은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뛰어나게 수행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두 종류로 구분했다:

  1. 지적 덕(intellectual virtues): 학습과 교육을 통해 발달하는 이론적 지혜(sophia)와 실천적 지혜(phronesis) 등의 덕성.
  2. 품성적 덕(character virtues): 습관과 훈련을 통해 형성되는 용기, 절제, 관대함 등의 덕성.

특히 품성적 덕의 형성에서 습관(hexis)의 역할을 강조했다:

"우리는 정의로운 행동을 함으로써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절제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절제 있는 사람이 된다."

이는 윤리적 성품이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실천을 통해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악기 연주나 스포츠 기술이 꾸준한 훈련을 통해 체득되듯, 윤리적 탁월함도 지속적인 실천을 통해 습득된다는 것이다.

현대 심리학에서도 이러한 통찰은 '습관 형성'이나 '학습된 행동'의 개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간의 성품이 유전적 요인만이 아니라 환경과 교육, 반복된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는 사실은 오늘날 성격 심리학의 기본 전제가 되었다.

선택(prohairesis)과 자발성

아리스토텔레스는 덕 있는 행위가 단순히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을 넘어, 올바른 방식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는 세 가지 조건을 포함한다:

  1. 행위자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을 것
  2. 그 행위를 의도적으로 선택할 것
  3. 그 행위가 견고하고 변함없는 성품에서 비롯될 것

이런 관점에서 우연히 올바른 행동을 하거나, 외부의 강제나 무지로 인해 행동하는 경우는 진정한 덕 있는 행위라 할 수 없다. 진정한 덕은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인식, 자발적 선택, 그리고 견고한 성품에서 비롯되는 일관된 행동 패턴에서 드러난다.

"덕 있는 사람은 알면서 선택하고, 덕 자체를 위해 선택한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선택(prohairesis)'의 개념을 중요시했다. 이는 단순한 욕구나 충동과 달리, 숙고를 통해 이루어지는 의도적 결정을 의미한다. 현대 철학에서 말하는 '자율성(autonomy)'이나 '의도적 행위(intentional action)'의 개념과 유사하다.

오늘날 우리가 도덕적 책임을 논할 때 행위자의 의도와 선택을 중요시하는 것도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결과만으로 행위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어떤 의도와 사고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는지도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다.

행복한 삶의 구성 요소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1권에서 다양한 삶의 형태와 이에 따른 행복관을 검토한다:

  1. 쾌락적 삶: 많은 사람들이 쾌락을 추구하지만, 이는 동물적 삶에 가깝고 진정한 행복이라 할 수 없다.
  2. 정치적 삶: 명예와 인정을 추구하는 삶은 외부적 요인에 너무 의존적이다.
  3. 금전적 삶: 부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다른 것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4. 관조적 삶: 이론적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적 삶은 가장 높은 형태의 행복을 제공한다.

그러나 인간은 순수한 이성적 존재만은 아니기에, 완전한 행복은 다양한 덕의 실현과 적절한 외적 조건이 결합될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는 오늘날 '삶의 질'이나 '웰빙'을 다차원적으로 이해하는 관점과 맞닿아 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임을 강조하며, 진정한 행복이 공동체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완성된다고 보았다. 이는 현대 심리학이 사회적 연결성과 관계의 질을 웰빙의 핵심 요소로 보는 관점과도 일치한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현대적 의의

23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1. 덕 윤리의 부활: 20세기 후반부터 칸트의 의무론이나 공리주의와 같은 근대 윤리학의 한계를 보완하는 대안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가 재조명받고 있다. 앨러스데어 매킨타이어, 필리파 풋, 로잘린드 허스트하우스 등의 철학자들은 현대적 맥락에서 덕 윤리를 발전시켰다.
  2. 교육과 인성 형성: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인격과 성품의 형성을 중시하는 교육 패러다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와 습관 형성 이론에 기반하고 있다.
  3. 긍정심리학과의 연결: 마틴 셀리그만,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등의 심리학자들이 주창하는 웰빙, 강점, 번영의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eudaimonia와 덕 이론을 현대 심리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4. 공동체주의와 정치철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관과 행복론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공동체주의적 정치철학의 토대가 되고 있다. 마이클 샌델, 찰스 테일러 등의 정치철학자들은 공동선과 시민적 덕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을 현대 정치이론에 접목시키고 있다.

나가며: 실천으로서의 윤리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윤리가 추상적 이론이 아닌 구체적 실천에 있다는 것이다. 단지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앎이 행동으로, 습관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격으로 체화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윤리적 문제들—환경 위기부터 기술 윤리, 사회적 불평등까지—은 단순한 규칙이나 원칙의 적용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구체적 상황에서 무엇이 옳은지를 분별하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실천적 지혜와 윤리적 성품이 요구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윤리학의 유산은 단순한 역사적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더 나은 삶,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참고해야 할 살아있는 지혜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영원한 질문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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