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hics

윤리학 13. 메타윤리학 – 자연주의 vs. 비자연주의, 에모티비즘

SSSCH 2025. 4. 9. 00:13
반응형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윤리학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동안 윤리학자들은 주로 '무엇이 옳고 그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규범적 질문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윤리적 언어의 의미는 무엇인가?', '도덕적 판단은 어떤 종류의 판단인가?'와 같은 메타적인 질문들이 철학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된다. 이것이 바로 메타윤리학(meta-ethics)의 탄생이다. 이번에는 이러한 메타윤리학적 논쟁, 특히 자연주의와 비자연주의의 대립, 그리고 에모티비즘의 등장에 대해 살펴보자.

메타윤리학이란 무엇인가?

메타윤리학은 윤리적 언어, 판단, 개념의 본질과 지위에 관한 철학적 탐구다. 규범윤리학이 '무엇이 옳은가?'라는 일차적 질문을 다룬다면, 메타윤리학은 '옳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도덕적 판단은 객관적 진리를 담고 있는가?' 등의 이차적 질문을 다룬다. 이는 마치 과학이 세계에 대한 사실을 탐구하고, 과학철학은 과학적 방법론과 지식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과 유사한 관계라고 볼 수 있다.

20세기 초 분석철학의 발전과 함께, 언어와 의미에 대한 관심이 윤리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영국의 분석철학자들은 도덕적 언어의 논리와 의미를 분석함으로써 윤리학의 근본 문제들을 새롭게 조명하려 했다. 이런 접근법은 윤리학을 형이상학적 투기나 규범적 주장으로부터 분리하여, 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탐구로 만들고자 했다.

메타윤리학의 중심 질문 중 하나는 도덕적 판단이 사실을 기술하는 명제인지, 아니면 다른 종류의 발화인지에 관한 것이다. 또한 '좋음', '옳음', '해야 함'과 같은 도덕적 용어들이 자연적 속성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특별한 비자연적 속성을 가리키는지도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이러한 질문들은 도덕 판단의 객관성과 지식 가능성에 대한 깊은 철학적 문제로 이어진다.

G.E. 무어와 자연주의적 오류

메타윤리학적 논쟁의 시발점으로 꼽히는 것은 G.E. 무어(George Edward Moore, 1873-1958)의 『윤리학 원리(Principia Ethica)』(1903)다. 이 책에서 무어는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윤리학에 새로운 물음을 던졌다.

무어가 비판한 자연주의는 '선(good)'을 쾌락, 행복, 진화적 적응 등과 같은 자연적 속성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다. 그는 이러한 정의 시도가 모두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한다고 주장했다. 이 오류의 핵심은 '~이다(is)'에서 '~해야 한다(ought)'를 도출하려 하거나, 도덕적 속성을 비도덕적 속성으로 환원하려는 시도에 있다.

무어는 유명한 '열린 질문 논변(open question argument)'을 통해 이 오류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선은 쾌락이다'라고 정의한다면, '쾌락적인 것은 과연 선한가?'라는 질문은 동어반복적인 '쾌락적인 것은 쾌락적인가?'와 같은 의미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질문은 여전히 의미 있는 질문으로 남아있다. 이는 '선'이 '쾌락'이나 다른 어떤 자연적 속성으로도 정의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는 것이 무어의 주장이다.

무어에 따르면 '선'은 노랑이나 둥금과 같은 단순한 속성으로,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원초적 개념이다. 이러한 도덕적 속성은 자연과학의 방법으로는 관찰할 수 없는 비자연적(non-natural) 속성이며, 우리는 이를 일종의 도덕적 직관이나 '도덕적 지각'을 통해 인식한다는 것이다.

비자연주의와 도덕적 직관주의

무어의 입장은 흔히 '도덕적 비자연주의(moral non-naturalism)'로 분류된다. 그는 선과 같은 도덕적 속성이 실재하며 객관적이지만, 자연적 속성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도덕적 속성은 직관(intuition)을 통해 직접적으로 파악된다는 점에서, 그의 이론은 '직관주의(intuitionism)'라고도 불린다.

비슷한 시기에 W.D. 로스(W.D. Ross)는 『옳음과 선함(The Right and The Good)』(1930)에서 '일견의무(prima facie duties)'라는 개념을 통해 직관주의를 발전시켰다. 로스에 따르면 우리는 특정 상황에서 여러 도덕적 의무들이 충돌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직관을 통해 어떤 의무가 우선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

H.A. 프리차드(H.A. Prichard)도 『도덕 의무란 무엇에 근거하는가(Does Moral Philosophy Rest on a Mistake?)』(1912)에서 도덕적 의무는 다른 것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직접적인 도덕적 인식을 통해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비자연주의와 직관주의는 도덕적 지식의 객관성과 실재성을 보존하려는 시도였으나, 심각한 인식론적 문제에 직면했다. 도덕적 직관이 정확히 무엇이며, 서로 충돌하는 직관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직관으로 파악되는 이 신비로운 비자연적 속성이 어떻게 인과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논리실증주의와 에이어의 에모티비즘

1920-30년대에 등장한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는 메타윤리학의 논의를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다. 비엔나 학파(Vienna Circle)를 중심으로 발전한 이 철학적 조류는 '검증 원리(verification principle)'를 중심으로 의미 있는 진술과 그렇지 않은 진술을 구분했다. 이 원리에 따르면, 어떤 진술이 의미를 가지려면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하거나 논리적으로 참이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A.J. 에이어(Alfred Jules Ayer)는 『언어, 진리, 그리고 논리(Language, Truth and Logic)』(1936)에서 도덕적 판단은 사실에 관한 의미 있는 진술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도둑질은 나쁘다"와 같은 도덕적 판단은 사실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나 태도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야호!"라고 외치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것과 같은 감정 표현에 가깝다.

이러한 견해를 '에모티비즘(emotivism)'이라고 한다. 에모티비즘에 따르면 도덕적 언어의 주요 기능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감정 표현과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에이어는 "도둑질은 나쁘다"라는 말이 "도둑질을 한 것!"이라고 말하며 분노나 불승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은 도덕적 판단의 객관성과 인식 가능성에 관한 형이상학적·인식론적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것처럼 보였다. 도덕적 판단이 사실 명제가 아니라면, 비자연적 속성이나 도덕적 사실에 관한 난해한 질문들을 더 이상 다룰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스티븐슨의 정교화된 에모티비즘

에이어의 에모티비즘은 C.L. 스티븐슨(Charles Leslie Stevenson)에 의해 더욱 정교화되었다. 스티븐슨은 『윤리학과 언어(Ethics and Language)』(1944)와 『사실과 가치(Facts and Values)』(1963)에서 도덕적 언어의 '정서적-인지적 의미 이론'을 발전시켰다.

스티븐슨에 따르면 도덕적 판단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나는 이것을 승인한다; 너도 그렇게 하라!'와 같은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즉, 도덕적 언어는 화자의 태도를 표현하면서 동시에 청자에게 같은 태도를 갖도록 영향을 주려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도덕적 논쟁이 종종 사실에 관한 불일치가 아니라 태도의 불일치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도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실에 관한 합의뿐만 아니라, 태도나 감정적 반응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스티븐슨의 이론은 도덕적 언어의 복잡성을 더 잘 포착하면서도, 여전히 도덕적 판단이 단순히 사실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는 에모티비즘의 핵심 주장을 유지했다.

에모티비즘에 대한 비판과 한계

에모티비즘은 처음에는 도덕적 언어에 관한 혁신적인 분석으로 환영받았으나, 곧 여러 심각한 비판에 직면했다. 가장 중요한 비판 중 하나는 에모티비즘이 도덕적 추론과 논증의 합리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도덕적 판단이 단지 감정 표현이라면, 어떻게 우리는 도덕적 문제에 대해 이성적으로 논쟁하고 타당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가?

또한 에모티비즘은 도덕적 불일치의 본질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두 사람이 도덕적 문제에 대해 의견이 다를 때, 이는 단순히 서로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것 이상으로 보인다. 우리는 도덕적 불일치가 단순한 취향의 차이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피터 기치(Peter Geach)와, 존 설(John Searle)과 같은 철학자들은 에모티비즘이 도덕적 판단이 논리적 추론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기치는 "프레게-긱 문제(Frege-Geach Problem)"로 알려진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는 도덕적 판단이 복합 문장(예: 조건문)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에모티비즘이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들은 도덕적 언어의 의미와 기능에 대한 더 복잡한 이론의 필요성을 부각시켰고, 이는 후에 R.M. 헤어(R.M. Hare)의 규정주의(prescriptivism)나 J.L. 맥키(J.L. Mackie)의 오류이론(error theory)과 같은 새로운 메타윤리학적 입장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객관적 도덕의 가능성에 대한 성찰

자연주의, 비자연주의, 에모티비즘 사이의 논쟁은 결국 '객관적 도덕'의 가능성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질문은 세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존재론적, 인식론적, 의미론적 차원이다.

존재론적으로는 '도덕적 사실이나 속성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비자연주의자들은 이에 긍정적으로 대답하며, 자연주의자들은 도덕적 속성이 자연적 속성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에모티비스트들은 도덕적 사실의 존재를 부정한다.

인식론적으로는 '우리가 도덕적 진리를 알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중요하다. 직관주의자들은 특별한 도덕적 직관을 통해 도덕적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연주의자들은 경험적 방법을 통해 도덕적 지식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에모티비스트들에게는 이 질문 자체가 의미가 없다.

의미론적으로는 '도덕적 용어와 판단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핵심이다. 인지주의자(cognitivist)들은 도덕적 판단이 믿음을 표현하며 참이나 거짓일 수 있다고 본다. 반면 비인지주의자(non-cognitivist)들은 도덕적 판단이 믿음이 아닌 태도나 감정을 표현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다양한 입장들은 우리가 도덕의 본질과 도덕적 언어의 기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철학적 통찰을 제공한다. 메타윤리학적 논쟁은 단순히 추상적인 이론적 문제를 넘어, 우리가 도덕적 판단과 논쟁을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메타윤리학의 현대적 발전

무어, 에이어, 스티븐슨 등이 제기한 문제들은 이후 메타윤리학의 발전 방향을 크게 형성했다. 20세기 후반부터 오늘날까지 메타윤리학은 더욱 다양하고 정교한 이론들로 발전해왔다.

R.M. 헤어의 규정주의(prescriptivism)는 도덕적 판단이 명령이나 규정의 기능을 한다고 보면서도, 보편화 가능성을 통해 도덕적 추론의 합리성을 설명하려 했다. J.L. 맥키의 오류이론(error theory)은 도덕적 판단이 객관적 도덕적 사실을 전제하지만, 그러한 사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도덕적 판단은 일종의 오류라고 주장했다.

사이먼 블랙번(Simon Blackburn)의 준실재론(quasi-realism)은 비인지주의적 출발점에서 시작하면서도 도덕적 실재론의 많은 특징들을 수용하려는 시도다. 또한 도덕적 자연주의는 코넬 실재론(Cornell realism)이나 프랭크 잭슨(Frank Jackson)의 분석적 자연주의와 같은 형태로 새롭게 부활했다.

최근에는 샤론 스트리트(Sharon Street)와 같은 철학자들이 제시한 구성주의(constructivism)도 주목받고 있다. 이는 도덕적 진리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행위자의 실천적 추론을 통해 구성된다는 관점이다.

메타윤리학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메타윤리학은 일견 추상적이고 실천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도덕적 언어와 판단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실제 도덕적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도덕적 판단이 객관적 사실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도덕적 불일치는 적어도 한 쪽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도덕적 판단이 주관적 태도의 표현이라고 본다면, 도덕적 불일치는 서로 다른 태도의 충돌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도덕적 관용과 상대주의에 대한 입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한 메타윤리학적 이해는 도덕 교육이나 윤리적 설득에 대한 접근법에도 함의를 지닌다. 도덕을 객관적 진리로 보는 관점과 감정이나 태도의 문제로 보는 관점은 서로 다른 교육적 방법론을 시사할 수 있다.

메타윤리학은 결국 우리가 스스로를 도덕적 존재로 이해하는 방식과 관련된다. 인간의 도덕적 능력의 본질, 도덕적 진보의 가능성, 도덕적 지식의 확실성 등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철학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사회에 대한 이해의 핵심 부분이다.

비록 메타윤리학적 질문들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논쟁이 이어질 것이지만, 이러한 탐구 자체가 우리의 도덕적 사고를 더 깊고 섬세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메타윤리학적 성찰은 우리가 도덕적 문제에 대해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나 문화적 관습을 넘어서, 보다 비판적이고 자기인식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