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y

현대철학 14. 사르트르와 실존주의

SSSCH 2025. 4. 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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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의 등장 배경

20세기 전반 유럽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파시즘의 대두, 대공황 등 전례 없는 위기와 파국을 경험한다. 이러한, 역사적 혼란은 인간 이성과 진보에 대한 근대적 신념을 심각하게 동요시킨다. 합리성과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은 전쟁의 참화 속에서 무너졌고, 인간 존재의 불안정성과 부조리함이 강하게 인식된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실존주의는 추상적 체계나 보편적 본질보다 개별적 인간의 구체적 실존에 주목하는 철학적·문학적 흐름으로 발전한다.

실존주의는 단일한 철학적 학파라기보다는 다양한 사상가들이 공유하는 문제의식과 주제를 중심으로 형성된 느슨한 사상적 조류이다. 키에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 등의 영향을 받은 실존주의는 특히 2차 세계대전 전후 프랑스에서 장-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시몬 드 보부아르 등에 의해 널리 확산된다. 이들은 철학적 저술뿐 아니라 소설, 희곡, 평론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실존주의적 사유를 대중적으로 전파한다.

사르트르의 생애와 지적 배경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중 한 명으로, 철학자, 작가, 극작가, 정치 활동가로서 다방면에 걸쳐 활동했다. 파리에서 태어난 사르트르는 어린 시절 부친을 잃고, 외조부의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 엘리트 교육기관인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서 수학한 그는 훗날 자신의 평생 동반자가 된 시몬 드 보부아르와 만나게 된다.

사르트르의 초기 사상은, 후설의 현상학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1933년 베를린에서 후설의 현상학을 직접 공부한 사르트르는 이를 자신의 철학적 출발점으로 삼았다. 또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접하면서 실존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켰고, 헤겔, 마르크스, 프로이트 등 다양한 사상가들의 영향을 종합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포로로 잡혀있던 경험은 그의 철학적 사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사르트르는 1943년 자신의 주저 『존재와 무』를 발표하면서 체계적인 실존주의 철학을 정립한다. 이후 1946년 강연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대중적으로 알리며 전후 프랑스 지식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부상한다. 말년에는 마르크스주의와의 접목을 시도하며 『변증법적 이성 비판』을 저술하고, 다양한 사회·정치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존재와 무』와 대자존재/즉자존재

『존재와 무: 현상학적 존재론 시론(L'Être et le Néant)』(1943)은 사르트르의 주요 철학적 저작으로, 그의 실존주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작품이다. 이 방대한 저서에서 사르트르는 인간 실존의 구조, 자유, 타자와의 관계 등을 현상학적 방법으로 분석한다. 그 핵심에는 존재 방식의 근본적 구분이 자리하고 있다: 즉자존재(l'être-en-soi)와 대자존재(l'être-pour-soi)이다.

'즉자존재'는 의식이 없는 물질적 존재, 즉 사물의 존재 방식을 가리킨다. 이는 완전히 자기 자신과 일치하며, 어떤 가능성이나 초월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인 존재이다. 돌, 의자, 나무와 같은 사물들은 자기 자신을 의식하지 못하고, 단지 존재할 뿐이다. 즉자존재는 완전하게 충만하고, 어떤 부정성도 없다.

반면 '대자존재'는 인간 의식의 존재 방식이다. 의식은 항상 '무엇에 대한' 의식으로, 자기 자신과 거리를 두고 자신을 대상화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이 아니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자기와의 불일치, 즉 의식 속에 있는 '무(néant)'를 인간 존재의 본질적 특성으로 본다. 이 '무'를 통해 인간은 주어진 상황을 초월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인간 실존의 고유한 특성을 드러낸다. 인간은 결코 자기 자신과 완전히 일치할 수 없으며, 항상 자신을 초월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사물처럼 존재할 수 없으며, 항상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고 그것을 향해 자신을 기투(projection)하는 존재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실존주의의 핵심 테제

사르트르 실존주의의 가장 유명한 테제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이다. 1946년 발표한 강연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서 그는 이 명제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간명하게 요약한다. 이 테제는 서양 철학의 전통적인 본질주의를 전복시키는 혁명적 주장이다.

전통적으로 철학은 사물의 '본질'이 그것의 구체적 '실존'에 선행한다고 가정했다. 예를 들어, '인간'이라는 보편적 본질이나 개념이 먼저 있고, 개별적 인간들은 그러한 본질의, 구체적 사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인간의 경우 이러한 관계가 역전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먼저 세계에 '던져진' 존재로 실존하고, 그 후에야 자유로운 선택과 행동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스스로 형성해 나간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미리 규정된 목적이나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다. 신이 없는 세계에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은 나중에 무엇이 될지 스스로 만들어가는 존재, 그리고 자신이 만든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

이 테제는 실존주의의 과감한 자유와 책임의 윤리로 이어진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변명을 할 수 없으며, 자신이 선택한 것에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선택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인간이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선언하는 보편적 의미를 갖는다.

자유와 책임: 실존적 불안과 구토

사르트르 철학에서 자유는 인간 실존의 가장 근본적인 구조이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은(condemned)' 존재이다. 이는 자유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방식 자체임을 의미한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선택하지 않을 자유조차, 없다. 심지어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그러나 이러한 급진적 자유는 동시에 무거운 책임을 수반한다. 자유롭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선택과 행동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달리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와 같은 변명은 정당화될 수 없다. 사르트르는 이를 '상황(situation)'과 '자유' 사이의 관계로 설명한다. 인간은 특정한 상황 속에 던져져 있지만,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선택에 달려있다.

이러한 급진적 자유와 책임은 필연적으로 '불안(angoisse)'을 낳는다. 불안은 자유에 대한 의식, 즉 내가 나의 미래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에서 발생한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듯이, 이는 "가능성의 현기증"이다. 우리 앞에 무한히 펼쳐진 가능성들과 그 선택의 무게 앞에서 우리는 불안을 느낀다.

또 다른 실존적 감정인 '구토(nausée)'는 사르트르의 동명 소설 『구토』(1938)에서 중심적으로 다뤄진다. 구토는 세계의 우연성(contingency)과 부조리함에 대한 갑작스러운, 강렬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주인공 로캉탱은 어느 날 갑자기 세계가 절대적인 근거나 이유 없이 그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이러한 인식은 그에게 강렬한 메스꺼움, 즉 구토로 다가온다.

악한 믿음(Bad Faith)과 자기기만

실존주의에서 '악한 믿음(mauvaise foi)', 또는 '자기기만'은 중요한 개념이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자유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는 방식을 가리킨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여러 예시를 통해 이 개념을 설명한다.

악한 믿음의 전형적 예로 사르트르는 '카페 웨이터'를 든다. 웨이터는 마치 자신이 '웨이터'라는 역할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즉자존재처럼 자기 자신과 완전히 일치할 수 없다. 웨이터는 '웨이터로 연기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자신이 단지 사회적 역할이 아닌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회피한다.

또 다른 예는 '데이트를 하는 여인'이다. 남성이 그녀의 손을 잡을 때, 그녀는 그 행위의 성적 함의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손을 빼지 않는다. 그녀는 상황의 양면성을 유지하며,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유와 책임을 회피한다.

악한 믿음은 단순한 거짓말과 다르다. 거짓말은 타인을 속이는 것이지만, 악한 믿음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이는 의식의 이중 구조, 즉 의식이 동시에 속이는 자와 속는 자가 될 수 있다는 역설적 가능성에 기반한다.

사르트르에게 악한 믿음의 극복은 진정성(authenticité)을 향한 중요한 단계이다. 진정성이란 자신의 자유와 책임을 직면하고, 자신이 선택한 것에 온전히 헌신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비록 사르트르는 완전한 진정성이 달성 가능한지에 대해 회의적이지만, 그것은 여전히 실존적 윤리의 중요한 이상으로 남아있다.

타자와의 관계: 시선과 갈등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서 타자와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갈등적이다. 『존재와 무』의 유명한 장 「타자를 위한 존재」에서 그는 '시선(le regard)'의 현상학적 분석을 통해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탐구한다.

타자의 시선은 나를 대상화한다. 타인에게 바라보아질 때,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위한 주체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객체가 된다. 시선 앞에서 나의 자유는 위협받고, 나는 타인의 평가와 판단 아래 놓인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경험을 '수치심(honte)'의 현상을 통해 설명한다. 예를 들어, 열쇠구멍으로 들여다보다가 타인에게 발각되었을 때 느끼는 수치심은 내가 타인의 시선 아래서 하나의 대상으로 고정되는 경험이다.

시선의 이러한 본질적 대립은 "지옥은 타인이다"라는 사르트르의 유명한 경구로 이어진다(희곡 『출구 없는 방』에서). 이 말은 종종 오해되지만, 타인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 나를 객체화하고 자유를 제한하는 관계의 본질적 갈등을 지적하는 것이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타자와의 관계는 '주체-객체' 관계의 끊임없는 투쟁이다. 내가 주체로서 타인을 객체화하거나, 타인이 주체로서 나를 객체화하는 두 가지 가능성만이 존재한다. 이상적인 상호주체성, 즉 두 자유로운 주체 간의 조화로운 관계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후기 사르트르는 이러한 비관적 견해를 다소 수정한다. 『변증법적 이성 비판』에서 그는 공동의 역사적 프로젝트 속에서 '공동체(groupe)'를 통한 새로운 연대 가능성을 모색한다.

참여 문학과 정치적 실천

사르트르는 철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작가, 극작가, 정치 활동가로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특히 그는 '참여 문학(littérature engagée)'의 이념을 통해 문학과 정치적 실천의 통합을 추구했다. 1947년 창간한 잡지 『현대(Les Temps Modernes)』를 통해 그는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과 참여를 강조했다.

"글 쓰는 것은 행동하는 한 방식"이라고 주장한 사르트르에게 문학은 단순한 미적 유희가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키는 실천적 행위였다. 그는 작가가 자신의 시대와 사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었으며, 추상적 관조자가 아닌 참여하는 지식인의 모델을 제시했다. 그의 소설 『구토』, 『자유의 길』 등과 희곡 『더러운 손』, 『출구 없는 방』, 『파리의 노래』 등은 단순한 문학작품이 아니라 철학적 성찰과 정치적 참여의 통로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사르트르의 정치적 입장은 점차 마르크스주의 쪽으로 기울어졌다. 비록 그는 소련식 공산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자본주의적 소외와 불평등을 비판하고 혁명적 변화를 지지했다. 그는 알제리 독립운동, 베트남 반전운동, 1968년 5월 학생운동 등 다양한 진보적 정치 활동에 참여했다.

1960년대부터 사르트르는 『변증법적 이성 비판』을 통해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종합을 시도한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구조적·역사적 분석과 실존주의의 주체성·자유 강조를 결합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는 완전히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역사적 유물론과 현상학적 실존주의를 매개하려는 중요한 시도로 평가받는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실존주의 페미니즘의 시작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는 평생 지적 동반자로서 서로의 사상 발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비록 전통적인 결혼 관계는 거부했지만, 그들은 독특한 지적·정서적 유대를 유지하며 실존주의 사상의 발전과 확산에 함께 기여했다.

보부아르는 단순히 사르트르의 추종자가 아니라, 독자적인 철학자이자 작가였다. 특히 그녀의 대표작 『제2의 성(Le Deuxième Sexe)』(1949)은 20세기 페미니즘 이론의 근본 텍스트로 평가받는다. 이 저서에서 보부아르는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여성 억압의 구조를 분석하고,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통해 젠더의 사회적 구성을 주장한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테제를 여성 문제에 적용한다. 여성성이라는 '본질'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따라서 여성은 타자(l'Autre)로 규정되어 왔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초월성(transcendance)을 부정당하고 내재성(immanence)에 갇힌 여성의 상황을 분석함으로써, 보부아르는 실존주의 페미니즘의 기초를 놓았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관계는 실존주의적 자유와 헌신, 개인적 선택과 공유된 가치의 복잡한 균형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그들의 '필수적 사랑(amour nécessaire)'과 '우연적 사랑(amours contingentes)'의 구분은 실존주의적 관계 윤리의 실천적 모델을 제시한다.

실존주의의 유산과, 한계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20세기 중반 지적·문화적 지형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철학적으로는 현상학, 해석학, 후기 구조주의 등 다양한 사조에 영향을 주었고, 문학, 연극, 영화, 예술 등 문화 전반에 실존주의적 감수성을 확산시켰다. 또한 실존주의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이론 등과 접목되며 다양한 사회비판 이론의 발전에 기여했다.

사르트르의 급진적 자유와 책임의 철학은 현대인의 자기이해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진정성', '선택', '참여' 등의 가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윤리적 이상으로 남아있다. 특히 그의 참여 지식인 모델은 사상과 실천의 통합, 이론과 정치의 결합을 추구하는 많은 현대 지식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여러 한계와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우선, 그의 급진적 자유 개념은 사회·역사·문화적 조건의 제약을 과소평가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구조주의와 후기 구조주의는 주체의 자율성보다 언어·구조·권력 등이 주체를 구성하는 방식에 주목하며 사르트르의 자유 개념을 비판했다.

또한 사르트르의 타자 이론은 '나-타자'의 근본적 갈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상호주체성과 연대의, 가능성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레비나스와 같은 철학자들은 타자성에 대한 더 근본적인 윤리적 접근을 제시하며 사르트르의 한계를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사르트르의 후기 마르크스주의 전환은 그의 초기 실존주의와 완전히 일관되게 통합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존적 자유와 역사적 유물론, 개인의 주체성과 계급적 결정론 사이의 긴장은 『변증법적 이성 비판』에서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실존주의의 의의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소비주의, 글로벌 위기의 시대인 오늘날,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새로운 의미와 중요성을 가진다. 특히 선택과 책임, 자유와 진정성에 대한 실존주의적 강조는 현대인의 정체성 형성과 윤리적 지향에 중요한 지침을 제공한다.

대량 소비사회에서 개인은 종종 상품화된 정체성과 미리 정의된 삶의 모델에 순응하도록 유도된다. 실존주의는 이러한 '악한 믿음'의 형태들을 비판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자율적 선택과 책임을 강조한다. 또한 기술적·관료적 합리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실존주의는 인간 경험의 주관적·질적 차원을 회복하는 데 기여한다.

환경 위기, 기술 발전, 사회적 불평등 등 글로벌 위기 앞에서 실존주의는 단순한 개인적 선택을 넘어선 집단적 책임과 참여의 윤리를 제시할 수 있다. 사르트르의 후기 사상이 보여주듯, 실존적 자유는 사회적 연대와 정치적 참여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실존주의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적용하기 위해서는 사르트르 이후 발전한 다양한 비판적 관점—페미니즘, 탈식민주의, 생태학적 사유 등—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인간의 근본적인 자유와 책임, 선택의 중요성에 대한 실존주의의 핵심 통찰은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현재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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