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그리고 근대 과학의 등장으로 인해 스콜라 철학이 유럽 지성계에서 지배적 위치를 상실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16-17세기에 스페인을 중심으로 스콜라 철학은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했다. 이른바 '제2 스콜라주의(Second Scholasticism)' 또는 '스페인 스콜라주의'로 알려진 이 지적 운동은 중세 스콜라 철학의 통찰을 새로운 시대적 맥락에 맞게 재해석하고 발전시켰다. 오늘은 이 후기 스콜라 운동의 주요 인물들과 그들의 사상, 그리고 이 운동이 근대 및 현대 사상에 미친 영향을 탐색해 볼 것이다.
제2 스콜라주의의 역사적 맥락
16세기 스페인은 유럽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 한편으로는 신세계 탐험으로 인한 경제적, 정치적 팽창기를 맞이하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톨릭 신앙의 수호자로서 종교개혁에 대항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또한 이슬람 문명(알-안달루스)과의 오랜 접촉을 통해 중세 사상의 풍부한 유산을 물려받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살라만카 대학(University of Salamanca)을 중심으로 새로운 스콜라 철학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살라만카 학파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적 도전—신세계의 발견, 국제 무역의 확대, 근대 국가의 등장, 종교적 분열 등—에 대응하기 위해 그의 사상을 재해석하고 확장했다.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난쟁이들이다. 우리는 선배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더 크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들어 올려주기 때문이다."
- 살라만카 학파의 정신을 반영하는 중세 격언
살라만카 학파의 주요 인물들
프란시스코 데 비토리아(Francisco de Vitoria, 약 1483-1546)
비토리아는 종종 '제2 스콜라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며, 국제법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살라만카 대학의 신학 교수였던 그는 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과 관련된 윤리적, 법적 문제들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의 가장 중요한 기여는 '만민법(ius gentium)' 개념의 발전이다. 비토리아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비록 비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자연법에 기초한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당한 전쟁(just war)' 이론을 발전시켰고, 식민지 정복을 정당화하기 위한 여러 논거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야만인들(원주민들)은 진정한 소유권을 가지며, 그들의 공적, 사적 소유를 스페인인들이 자기들 것인 양 취하는 것은 불법이다."
- 프란시스코 데 비토리아
비토리아는 또한 국가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후에 그로티우스(Hugo Grotius)와 같은 국제법 이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도밍고 데 소토(Domingo de Soto, 1494-1560)
소토는 비토리아의 제자였으며, 살라만카 대학의 또 다른 주요 신학자였다. 그는 특히 경제 윤리와 물리학 분야에서 중요한 기여를 했다.
소토는 '정의와 법에 관하여(De Iustitia et Iure)'라는 저서에서 재산권, 계약, 이자, 가격 결정 등 경제적 문제들을 자연법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는 공정 가격 이론을 발전시켰고, 시장에서의 거래가 윤리적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리학 분야에서 소토는 자유 낙하와 가속도에 관한 연구를 통해 갈릴레오에 앞서 중요한 통찰을 제공했다. 그는 물체가 균일하게 가속된다는 것을 관찰했고, 이 현상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려 시도했다.
루이스 데 몰리나(Luis de Molina, 1535-1600)
예수회 신학자였던 몰리나는 자유의지와 신의 은총, 예정설 사이의 관계에 관한 복잡한 신학적 논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중간지식(scientia media)' 이론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신이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을 알면서도 그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방식을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몰리나는 또한 경제 사상에도 기여했는데, 그의 '정의에 관하여(De Iustitia)'에서 가격, 화폐, 무역 등에 관한 분석을 제시했다. 그는 수요와 공급에 기초한 가격 결정 메커니즘을 상세히 설명했으며, 이는 현대 경제학의 선구가 되었다.
"가격은 상품의 내재적 가치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주관적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 루이스 데 몰리나
프란시스코 수아레스(Francisco Suárez, 1548-1617)
예수회 신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수아레스는 제2 스콜라주의의 가장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형이상학, 법철학, 정치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저작을 남겼다.
수아레스의 주저 '형이상학적 논쟁(Disputationes Metaphysicae)'은 중세 스콜라 철학의 형이상학적 전통을 종합하고 체계화한 대작이다. 이 작품은 근대 초기 유럽 대학들에서 널리 읽혔고,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스피노자 등 근대 철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법철학 분야에서 수아레스는 '법에 관하여(De Legibus)'에서 자연법과 실정법의 관계, 국제법의 기초, 주권의 본질 등을 논했다. 그는 정치권력이 궁극적으로 공동체로부터 온다는 '주권재민'의 원칙을 지지했고, 이는 후에 근대 민주주의 이론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정치권력은 본래 전체 공동체에 있으며, 군주는 공동체로부터 권력을 위임받는다."
- 프란시스코 수아레스
제2 스콜라주의의 주요 철학적 기여
존재론과 형이상학의 발전
수아레스를 중심으로 한 후기 스콜라 철학자들은 존재론과 형이상학 분야에서 중요한 혁신을 이루었다. 수아레스는 '존재(ens)'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본질과 존재, 실체와 사건, 가능성과 필연성 등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수아레스의 '개체성의 원리(principium individuationis)'에 관한 논의다. 그는 개별 존재자가 자신의 전체 실체적 실재성(tota entitas substantialis)을 통해 개체화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토마스 아퀴나스나 둔스 스코투스의 견해와는 다른 새로운 접근이었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논의는 단순한 이론적 관심을 넘어, 당시 급변하는 세계에서 실체, 인과성, 자연법칙 등에 대한 이해를 정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법철학과 국제법의 기초
아마도 제2 스콜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여는 법철학과 국제법 분야일 것이다. 비토리아, 소토, 수아레스 등은 자연법 전통을 발전시키면서, 근대 국제법의 기초를 놓았다.
그들은 모든 인간 공동체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원칙들의 존재를 주장했고, 이는 신의 법, 자연법, 만민법, 시민법 등의 체계적인 구분으로 이어졌다. 특히 자연법은 더 이상 단순히 신의 명령으로 이해되지 않고, 인간의 합리적 본성에 기초한 것으로 재정의되었다.
"자연법은 인간의 본성에 각인된 것으로, 그 본성이 사회적이고 합리적이기에 자연법 역시 그러하다."
- 제2 스콜라주의 법철학의 핵심 통찰
이러한 법철학적 기여는 국제법뿐만 아니라 인권, 종교적 관용, 식민주의 비판 등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정치철학과 주권론
제2 스콜라주의 사상가들은 정치권력의 본질과 정당성에 관한 중요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수아레스와 다른 사상가들은 정치권력이 민중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 원칙을 지지했고, 이는 후에 로크(John Locke)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와 같은 계몽주의 정치철학자들의 사회계약론의 선구가 되었다.
또한 그들은 폭정에 대한 저항권을 인정했으며, 세속 권력과 교회 권력의 적절한 관계에 대해서도 논했다. 이러한 논의는 당시 절대주의 국가의 등장과 종교 개혁으로 인한 갈등 상황에서 중요한 이론적 자원을 제공했다.
경제윤리와 초기 경제학
제2 스콜라주의 사상가들은 경제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은 가격 형성, 화폐 가치, 이자, 무역 등에 관한 체계적인 분석을 제시했으며, 이는 현대 경제학의 중요한 선구가 되었다.
특히 살라만카 학파는 주관적 가치 이론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물건의 가치가 그것의 내재적 특성이 아니라 사람들의 주관적 평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상이다. 이러한 통찰은 후대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들은 돈의 시간 가치 개념을 이해했고, 이에 기초하여 적정 이자율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경제적 분석은 신학적, 윤리적 관점에서 이루어졌지만, 경제 현상에 대한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인 이해를 보여주었다.
제2 스콜라주의와 근대 사상의 관계
데카르트와의 관계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종종 스콜라 철학과의 단절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데카르트가 예수회 학교에서 교육받았으며, 수아레스의 형이상학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데카르트의 '실체(substantia)' 개념, 신 존재 증명, 심신 이원론 등에서 스콜라적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데카르트가 스콜라 철학을 비판했지만, 그것은 완전한 거부라기보다는 비판적 계승에 가까웠다.
그로티우스와 국제법
네덜란드의 법학자 휴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 1583-1645)는 현대 국제법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의 주저 '전쟁과 평화의 법(De Jure Belli ac Pacis)'은 국제법의 체계적 기초를 제공했다.
그로티우스는 비토리아와 수아레스의 법철학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그로티우스는 자연법에 기초한 국제법 체계를 발전시켰으며, 정당한 전쟁 이론과 해양법 등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비토리아, 소토, 수아레스와 같은 스페인 스콜라 학자들이 없었다면, 그로티우스의 작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 국제법 역사가
로크와 자연권 이론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의 정치철학, 특히 자연권 이론과 정부 이론은 제2 스콜라주의와 많은 유사점을 보인다. 로크의 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자연권 개념은 스콜라적 자연법 전통의 현대화로 볼 수 있다.
로크가 직접적으로 수아레스나 다른 스페인 스콜라 학자들을 인용하지는 않지만, 그의 교육과 지적 환경을 고려할 때 그들의 이론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정치권력의 기원과 한계, 저항권에 관한 로크의 이론은 수아레스의 정치철학과 놀라운 유사성을 보인다.
라이프니츠와 형이상학
독일의 철학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는 스콜라 철학, 특히 수아레스의 형이상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스스로를 "스콜라 철학과 근대 철학 사이의 중재자"로 여겼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 예정조화설, 충족이유율 등의 개념에서 스콜라적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근대 과학의 기계론적 세계관과 스콜라 철학의 목적론적 세계관을 통합하려 했으며, 이는 그의 철학의 독특한 특징이 되었다.
제2 스콜라주의의 19-20세기 부활
제2 스콜라주의는 18세기 계몽주의의 등장과 함께 유럽 지성계에서 그 영향력이 감소했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가톨릭 교회 내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려는 '신토마스주의(Neo-Thomism)' 운동이 시작되었다.
교황 레오 13세와 '영원하신 아버지(Aeterni Patris)'
1879년 교황 레오 13세는 회칙 '영원하신 아버지'를 통해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을 가톨릭 교육과 신학의 공식적 기초로 선언했다. 이는 스콜라 철학, 특히 토마스주의의 공식적 부활을 의미했다.
레오 13세는 현대 사회의 문제들—무신론, 물질주의, 사회적 불의 등—에 대응하기 위해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이는 가톨릭 사회교리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1891년 최초의 현대적 사회 회칙인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의 발표로 이어졌다.
자크 마리탱과 에티엔 질송
20세기 전반에 자크 마리탱(Jacques Maritain, 1882-1973)과 에티엔 질송(Etienne Gilson, 1884-1978)과 같은 프랑스 철학자들은 신토마스주의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했다.
마리탱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을 현대 민주주의 이론, 인권 담론, 예술 철학 등에 적용했다. 그의 저서 '통합적 인간주의(Integral Humanism)'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모두 초월하는 기독교적 사회 비전을 제시했다.
질송은 중세 철학 연구의 선구자로, 스콜라 철학을 역사적 맥락에서 재평가했다. 그는 존재(esse)에 관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이 근대 이후 철학에서 상실된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참된 철학은 그가 살아있을 당시에도 완전히 이해되지 못했으며, 오늘날에야 비로소 그 깊이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 에티엔 질송
분석적 토마스주의와 현대적 적용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분석적 토마스주의(Analytical Thomism)'라는 새로운 흐름이 등장했다. 이는 분석철학의 방법론과 용어를 사용하여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을 재해석하는 시도다.
엘리자베스 안스콤(G.E.M. Anscombe), 피터 긴치(Peter Geach), 앨러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 등의 철학자들은 현대 윤리학, 형이상학, 심리철학 등의 분야에서 토마스주의적 관점을 발전시켰다.
특히 매킨타이어의 '덕 이후(After Virtue)'는 현대 도덕 철학의 위기를 진단하고, 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주의적 덕 윤리학의 부활을 주장하는 영향력 있는 저작이다.
제2 스콜라주의의 현대적 의의
법철학과 인권 이론
비토리아, 소토, 수아레스 등이 발전시킨 자연법 이론은 현대 인권 담론의 중요한 사상적 원천 중 하나다.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한 보편적 권리 개념은 제2 스콜라주의의 핵심 통찰이었으며, 이는 현대 국제법과 인권 체제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존 피니스(John Finnis)와 같은 현대 자연법 이론가들은 수아레스와 비토리아의 법철학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피니스의 '자연법과 자연권(Natural Law and Natural Rights)'은 현대 법철학에서 자연법 전통을 부활시킨 중요한 저작이다.
사회정의와 가톨릭 사회교리
19세기 이후 발전된 가톨릭 사회교리는 제2 스콜라주의의 원칙들, 특히 인간 존엄성, 공동선, 연대성, 보조성의 원칙 등에 깊이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들은 현대 사회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윤리적 프레임워크를 제공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트 16세는 모두 토마스주의 철학자이면서 신학자였으며, 그들의 사회적 가르침에서 스콜라 철학의 영향을 뚜렷이 찾아볼 수 있다.
경제윤리와 시장경제 비판
살라만카 학파가 발전시킨 경제윤리 이론은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제공한다. 그들의 공정 가격 이론, 화폐와 이자에 관한 분석, 부의 불평등에 대한 우려 등은 현대 경제윤리 담론에 여전히 적실성을 갖는다.
한편으로는 살라만카 학파의 주관적 가치 이론이 자유 시장 경제학의 선구로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윤리적 관심이 무제한적 시장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자원이 되기도 한다.
"경제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윤리학의 한 분야다."
- 살라만카 학파의 경제관을 반영하는 현대적 해석
종교 다원주의와 문화 간 대화
비토리아와 다른 살라만카 학자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권리를 옹호했던 것처럼, 현대 스콜라 철학은 종교 다원주의와 문화 간 대화의 윤리적 기초를 제공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의 근본적 존엄성과 권리에 대한 강조는 문화적, 종교적 차이를 넘어선 윤리적 공통점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제2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 가톨릭 교회의 종교간 대화와 문화적 개방성 증가는 부분적으로 이러한 스콜라적 자원의 현대적 적용으로 볼 수 있다.
결론: 스콜라 철학의 지속적 생명력
제2 스콜라주의의 역사는 철학적 전통이 어떻게 변화하는 시대적 맥락에 적응하고, 새로운 도전에 응답하며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살라만카 학파를 비롯한 16~17세기의 스페인 스콜라 철학자들은 단순히 중세적 사유의 반복이 아니라, 당시의 급변하는 세계—신대륙의 발견, 종교개혁의 파장, 근대 국가와 과학의 부상—에 깊이 응답하며 스콜라 철학의 본질을 재해석하고 확장시켰다.
이들의 사상은 법철학, 국제법, 경제윤리, 정치이론, 형이상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중대한 기여를 했고, 많은 근대 사상가들에게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데카르트, 그로티우스, 로크, 라이프니츠 등과의 지적 연속성은, 근대 철학이 단절이 아니라 '비판적 계승' 위에 서 있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제2 스콜라주의는 19세기의 신토마스주의, 20세기의 분석적 토마스주의를 통해 다시 되살아났고, 오늘날에도 윤리학, 법철학, 인권 담론, 경제 정의 등의 분야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지적 자원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는 스콜라 철학이 단지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지금도 의미 있게 변형되고 적용될 수 있는 ‘살아 있는 전통’임을 증명한다.
결국 스콜라 철학의 지속적인 생명력은 그 논리적 정밀함이나 형이상학적 깊이만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맞서 인간 이성과 신앙, 윤리와 사회, 법과 권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해왔기 때문이다. 제2 스콜라주의는 그 질문의 전통을 이어받아, 중세의 정신을 근대와 현대에까지 연결한 다리였다. 그리고 그 다리는 여전히, 우리가 오늘의 문제들을 깊이 사유하고자 할 때 건너야 할 철학적 경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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