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중반 이탈리아는 두 가지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지중해를 건너오는 난민들의 급증과 기존 정치 시스템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그것이었다. 아랍의 봄과 시리아 내전, 리비아 정정 불안으로 인해 수십만 명의 난민들이 이탈리아 해안으로 몰려들었고, 이는 이탈리아 사회에 전례 없는 충격을 주었다. 동시에 경제 위기의 후유증과 기존 정치 엘리트들에 대한 실망은 포퓰리즘 정당들의 급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베페 그릴로의 오성운동과 마테오 살비니의 동맹이 이탈리아 정치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며, 전통적인 좌우 구도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지중해 난민 위기의 심화와 이탈리아의 부담
2014년부터 본격화된 지중해 난민 위기는 이탈리아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었다. 시리아 내전이 격화되고 리비아가 무정부 상태에 빠지면서,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들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길목에 이탈리아가 자리 잡고 있었다. 람페두사, 시칠리아, 칼라브리아 등 남부 지역은 매일같이 밀려오는 난민선들로 몸살을 앓았다.
2015년 한 해 동안만 15만 명이 넘는 난민이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이는 전년도의 두 배가 넘는 수치였다. 2016년에는 18만 명, 2017년에는 11만 9천 명이 도착하면서, 누적 난민 수는 수십만 명에 달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들을 수용하고 처리하는 데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야 했다.
난민들의 여정은 참혹했다. 리비아에서 출발한 고무보트나 낡은 어선들이 지중해 한복판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빈발했다. 2013년 10월 람페두사 앞바다에서 발생한 난민선 침몰 사고는 366명의 사망자를 낳으며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이탈리아 해안경비대와 해군은 '마레 노스트룸(Mare Nostrum)' 작전을 통해 구조 활동을 벌였지만, 계속되는 비극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난민 문제는 이탈리아 사회에 깊은 분열을 가져왔다.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난민들을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와 이탈리아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불만이 대립했다. 특히 남부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어려움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난민들에게 지원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드러냈다.
유럽연합의 무관심과 이탈리아의 고립
난민 위기에서 이탈리아가 가장 실망한 것은 유럽연합의 소극적 대응이었다. 더블린 협정에 따르면 난민들은 최초 도착국에서 난민 신청을 해야 했는데, 이는 사실상 이탈리아와 그리스가 모든 부담을 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독일, 프랑스 등 북유럽 국가들은 난민 분담 수용에 소극적이었고, 동유럽 국가들은 아예 거부했다.
2015년 유럽연합이 발표한 난민 분담 계획은 16만 명을 회원국들이 나눠 받는다는 내용이었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2017년까지 분담 수용된 난민은 계획의 20%에도 못 미쳤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은 아예 난민 수용을 거부했고, 이에 대한 실질적 제재도 없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유럽연합의 무책임한 태도에 강하게 항의했다. 마테오 렌치 총리는 "이탈리아만 난민 문제를 떠안을 수는 없다"며 유럽연합의 연대 정신을 촉구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제한적이었고, 이는 이탈리아 국민들의 유럽연합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프랑스가 국경을 봉쇄하고 오스트리아가 브레너 고개에 검문소를 설치하는 등 주변국들의 일방적 조치는 이탈리아의 고립감을 더욱 심화시켰다. 난민들이 북유럽으로 이동하는 통로가 막히면서, 이탈리아에 체류하는 난민 수는 계속 늘어났다.
베페 그릴로와 오성운동의 부상
이런 상황에서 기존 정치에 실망한 이탈리아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급부상한 것이 베페 그릴로의 오성운동(Movimento 5 Stelle)이었다. 2009년 창당된 오성운동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정치 조직이었다. 그릴로는 유명한 코미디언 출신으로, 기존 정치인들을 조롱하고 비판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오성운동의 다섯 가지 핵심 가치는 환경, 에너지, 교통, 정보통신, 경제 발전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기득권, 반부패, 직접민주주의가 더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릴로는 "정치인들은 모두 도둑"이라며 기존 정치 시스템 전체를 거부했다.
오성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인터넷을 통한 직접민주주의였다. 당의 주요 결정은 온라인 투표를 통해 이뤄졌고, 당원들은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정책 제안과 토론에 참여했다. 이는 기존 정당들의 위계적 구조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
2013년 총선에서 오성운동은 25.6%의 득표율로 제1당을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하원에서 109석, 상원에서 54석을 얻으며 이탈리아 정치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올랐다. 특히 남부 지역에서의 지지율이 높았는데, 이는 기존 정치에 대한 남부 주민들의 불만을 반영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성운동은 연정 구성을 거부하며 야당으로 남았다. 그릴로는 "기존 정당들과는 어떤 타협도 하지 않겠다"며 순수성을 강조했다. 이는 정치적 영향력 행사에는 제약이 되었지만, 반정치적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마테오 살비니와 동맹의 변신
오성운동과 함께 포퓰리즘 정치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한 것은 마테오 살비니가 이끄는 동맹(Lega)이었다. 원래 북부동맹(Lega Nord)이라는 이름으로 북부 지역의 분리독립을 주장했던 이 정당은 살비니가 당 대표가 되면서 완전히 다른 정당으로 변신했다.
2013년 당 대표가 된 살비니는 지역정당에서 전국정당으로의 전환을 추진했다. 북부 분리독립 대신 이탈리아 전체의 주권 수호를 내세웠고, 당명도 '동맹'으로 단순화했다. 이는 남부 지역에서도 지지를 확대하려는 전략이었다.
살비니의 정치적 메시지는 단순하고 강력했다. 반이민, 반유럽연합, 이탈리아 우선주의가 핵심이었다. 특히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이탈리아가 유럽의 난민캠프가 될 수는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이는 난민 문제로 고통받는 이탈리아 국민들, 특히 남부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살비니는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하여 대중과 소통했다.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메시지를 전달했고, 이는 젊은 유권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그의 소셜미디어 팔로워 수는 수백만 명에 달했다.
2018년 총선에서 동맹은 17.4%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약진했다. 이는 2013년 총선의 4.1%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한 것이었다. 특히 북부 지역에서는 3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압도적 1당이 되었다.
렌치 정부의 개혁 시도와 실패
난민 위기와 포퓰리즘 정당의 부상 속에서 집권한 마테오 렌치는 이탈리아 정치의 쇄신을 약속했다. 2014년 39세의 나이로 총리가 된 렌치는 '스크랩 액트(La Buona Scuola)'라는 교육 개혁과 '잡스 액트(Jobs Act)'라는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했다.
렌치의 노동시장 개혁은 몬티 정부보다 더 급진적이었다. 신규 채용자에게는 제18조를 적용하지 않아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했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목표는 청년 실업률을 낮추고 경제 활력을 되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렌치의 가장 야심찬 계획은 헌법 개혁이었다. 상원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여 양원제를 사실상 단원제로 바꾸고, 선거법을 개정하여 정치 안정성을 높이려 했다. 이는 이탈리아 정치사에서 전례 없는 대규모 개혁이었다.
2016년 12월 헌법 개혁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렌치는 개혁안이 부결되면 사임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59.1%가 반대표를 던지며 개혁안이 부결되었고, 렌치는 약속대로 사임했다.
헌법 개혁 국민투표의 실패는 단순히 개혁안에 대한 거부가 아니었다. 이는 기존 정치 엘리트 전체에 대한 불신임이었고, 오성운동과 동맹 같은 포퓰리즘 정당들의 힘을 더욱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2018년 총선과 정치 지형의 대변화
2018년 3월 총선은 이탈리아 정치사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전통적인 좌우 구도가 완전히 무너지고, 포퓰리즘 정당들이 압승을 거두었다. 오성운동은 32.7%로 제1당이 되었고, 우파 연합은 37%를 얻었는데 이 중 동맹이 17.4%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반면 전통적인 정당들은 참패했다. 베를루스코니의 포르차 이탈리아는 14%로 급락했고, 좌파의 민주당은 18.7%에 그쳤다. 이는 2013년 총선에서 25.4%를 얻었던 것에 비해 크게 후퇴한 것이었다.
선거 결과 어떤 정당도 단독 집권할 수 없는 분할 의회가 탄생했다. 3개월간의 정치적 공백 끝에 예상치 못한 연정이 구성되었다. 오성운동과 동맹이 손을 잡은 것이었다. 이는 좌파 포퓰리즘과 우파 포퓰리즘의 연합이라는 전례 없는 조합이었다.
연정 협상 과정에서 두 당은 '정부 계약서'라는 방식으로 연정 강령을 마련했다. 반이민 정책, 유럽연합에 대한 비판적 입장, 기본소득 도입, 세제 간소화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총리에는 정치적 색깔이 없는 주세페 콘테 법학 교수가 지명되었다.
살비니의 내무장관 시절과 강경 정책
2018년 6월 출범한 콘테 1기 정부에서 살비니는 내무장관과 부총리를 겸했다. 그는 이 지위를 활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어젠다를 적극 추진했다. 특히 이민 정책에서는 전임 정부들과는 완전히 다른 강경한 접근을 보였다.
살비니의 가장 상징적인 정책은 '항구 폐쇄'였다. 지중해에서 난민을 구조한 NGO 선박들의 이탈리아 항구 입항을 금지한 것이다. 2018년 6월 아쿠아리우스호 사건이 대표적이다. 629명의 난민을 태운 이 구조선은 이탈리아와 몰타가 모두 입항을 거부하면서 일주일간 바다를 떠돌아야 했다.
살비니는 또한 '안전 법령(Decreto Sicurezza)'을 제정하여 난민 인정 기준을 강화하고, 불법 체류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 인도주의적 보호 지위를 폐지하고, 난민 신청자에 대한 지원을 축소했다. 이는 국제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살비니의 정책은 이탈리아 국민들, 특히 남부 지역 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여론조사에서 동맹의 지지율은 30%를 넘어서며 오성운동을 추월했다. 살비니는 사실상의 정부 실권자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이탈리아의 고립이 심화되었다. 유럽연합은 이탈리아의 일방적 조치에 우려를 표했고, 교황도 간접적으로 살비니의 정책을 비판했다. 이는 이탈리아의 국제적 위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경제 정책의 갈등과 유럽연합과의 마찰
오성운동과 동맹의 연정은 경제 정책에서도 기존과는 다른 접근을 보였다. 두 당은 모두 복지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오성운동은 '시민소득(Reddito di Cittadinanza)'을, 동맹은 '플랫 택스'를 주장했다.
시민소득은 일종의 기본소득으로, 월 780유로까지 지급하는 제도였다. 이는 오성운동의 핵심 공약이었지만, 재원 마련과 근로 의욕 저해 우려 등으로 논란이 컸다. 동맹의 플랫 택스는 소득세를 15%로 단일화하는 것으로, 역시 막대한 재정 부담이 예상되었다.
이런 확장적 재정 정책은 유럽연합과의 마찰을 불러일으켰다. 이탈리아의 재정적자 목표치를 GDP의 2.4%로 설정한 것에 대해 유럽위원회는 강하게 반발했다. 이탈리아 국채 금리가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고, 유로존 전체의 불안정성이 증가했다.
살비니와 디마이오 부총리는 유럽연합의 압박에 강하게 맞섰다. "이탈리아 국민이 선택한 정책을 브뤼셀이 막을 수는 없다"며 주권 수호를 강조했다. 이는 이탈리아 국민들의 반유럽 정서를 더욱 자극했다.
하지만 시장의 압박은 거셌다. 이탈리아 은행들의 주가가 폭락하고, 투자자들이 이탈리아 국채를 기피하면서 금융 불안정성이 증가했다. 결국 정부는 재정적자 목표를 2.04%로 하향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연정의 균열과 콘테 1기 정부의 붕괴
2019년 들어 오성운동과 동맹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동맹이 34.3%를 얻으며 압승한 반면, 오성운동은 17.1%로 급락했다. 이는 연정 내 힘의 균형을 크게 바꿔놓았다.
살비니는 자신감을 얻어 더욱 공격적으로 정책을 추진했다. TAV(토리노-리옹 고속철도) 건설 문제에서 오성운동과 정면 충돌했고, 자치권 확대 문제에서도 이견을 보였다. 오성운동은 환경과 직접민주주의를 중시한 반면, 동맹은 경제 발전과 지역 이익을 우선시했다.
결정적 계기는 2019년 8월 살비니가 내각 불신임을 제기한 것이었다. 그는 조기 총선을 통해 단독 집권을 노렸지만, 오성운동이 민주당과 손을 잡으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오성운동과 민주당은 "살비니의 권력욕을 막아야 한다"며 새로운 연정을 구성했다.
2019년 9월 콘테 2기 정부가 출범했다. 콘테가 다시 총리를 맡았지만, 이번에는 오성운동과 민주당의 연정이었다. 살비니는 야당으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며 차기 집권을 노렸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정치적 변화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이 이탈리아를 강타하면서 정치 상황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았다. 이탈리아는 중국 다음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된 국가가 되었고, 특히 북부 지역의 피해가 심각했다. 이는 동맹의 주요 지지 기반인 북부 지역에 큰 충격을 주었다.
팬데믹 초기 콘테 총리는 과감한 봉쇄 조치로 호응을 얻었다. 반면 살비니는 경제적 피해를 우려하며 봉쇄에 반대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이는 살비니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동맹의 상승세에 제동을 걸었다.
유럽연합의 대응도 이탈리아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 초기에는 회원국들이 이탈리아를 외면했지만, 이후 대규모 회복기금을 조성하면서 이탈리아에 상당한 지원을 제공했다. 이는 반유럽 정서를 다소 완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오성운동도 내부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창당자인 베페 그릴로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루이지 디마이오를 거쳐 주세페 콘테가 당 대표가 되면서 보다 현실적인 노선으로 전환했다. 반정치에서 책임정치로의 변화였다.
결론
201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난민 위기와 포퓰리즘의 확산은 이탈리아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기존의 좌우 대립 구도가 해체되고, 기득권 대 반기득권, 글로벌리즘 대 국민주의라는 새로운 대립 축이 형성되었다. 오성운동과 동맹의 부상은 전통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주었다. 난민 문제는 이탈리아의 지정학적 위치가 가져다주는 숙명적 과제였지만, 유럽연합의 무관심한 대응은 이탈리아 국민들의 유럽 통합에 대한 회의를 키웠다. 살비니의 강경한 이민 정책과 반유럽 수사는 단기적으로는 정치적 성공을 가져다주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탈리아의 국제적 고립을 심화시켰다. 포퓰리즘 정당들의 연정 시도는 현실 정치의 복잡성 앞에서 한계를 드러냈고, 결국 전통 정당과의 타협이 불가피함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의 정치적 혼란과 실험은 이탈리아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대중 민주주의 시대의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드러냈다. 난민 위기와 포퓰리즘 확산이라는 이중 도전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가 직면한 시대적 과제였으며, 이에 대한 이탈리아의 대응은 유럽 민주주의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