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sthetics

칸트미학 21. '무관심적 쾌' 논쟁: 스크러튼·줌머만·칼슨의 해석과 비판

SSSCH 2025. 5. 6.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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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미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무관심적 쾌(disinterested pleasure)'는 현대 미학 담론에서 지속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히 로저 스크러튼(Roger Scruton), 로버트 줌머만(Robert Zimmerman), 앨런 칼슨(Allen Carlson)과 같은 현대 미학자들은 이 개념을 각자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비판하면서 칸트 미학의 현대적 의의를 새롭게 조명했다. 이들의 논쟁은 단순한 칸트 해석의 문제를 넘어 환경미학, 예술비평, 미적 경험의 본질에 관한 폭넓은 철학적 논의로 확장되었다.

칸트의 '무관심적 쾌' 개념

먼저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제시한 '무관심적 쾌'의 원래 의미를 간략히 살펴보자. 칸트에 따르면 미적 판단은 대상의 존재에 대한 관심이나 실용적 목적에서 자유로운 '무관심적' 태도에 기초한다. 이는 대상이 우리에게 주는 감각적 즐거움(쾌락)이나 도덕적·지적 만족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종류의 쾌다.

칸트는 「판단력 비판」 제1장에서 세 가지 종류의 쾌를 구분한다:

  1. 감각적인 것에서 오는 쾌 - 직접적 감각 경험에서 오는 즐거움
  2. 선(善)에서 오는 쾌 - 도덕적 행위나 목적 달성에서 오는 만족
  3. 미(美)에서 오는 쾌 - 대상의 형식적 특성에 대한 무관심적 만족

무관심적 쾌의 핵심은 대상의 실용적 가치나 도덕적 의미와 상관없이, 그 대상의 형식적 특성이 인간의 인식 능력(상상력과 지성)을 자유롭게 활성화시킬 때 발생하는 만족감이다. 이러한 무관심성이 미적 판단의 주관적 보편타당성을 보장하는 조건이 된다.

로저 스크러튼: 미적 경험의 지향성과 상상적 주목

영국의 철학자 로저 스크러튼은 「예술과 상상력(Art and Imagination)」(1974)과 「미학의 이해(The Aesthetics of Understanding)」(1983) 등의 저작에서 칸트의 무관심적 쾌 개념을 현상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스크러튼에 따르면, 미적 경험의 '무관심성'은 대상에 대한 관심의 부재가 아니라 특별한 종류의 '지향적 주목(intentional attention)'을 의미한다. 그는 미적 경험이 대상을 '그 자체로(for its own sake)' 바라보는 특별한 지향적 태도에 기초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태도는 대상을 실용적 목적이나 인과적 관계의 맥락에서 벗어나 그 자체의 형식과 표현적 특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스크러튼은 특히 '상상적 주목(imaginative attention)'이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미적 경험에서 우리는 대상을 단순히 감각적으로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 대상의 표현적 특성과 미적 가치를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단순히 소리의 연속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멜로디, 긴장과 이완, 슬픔이나 기쁨 같은 표현적 특성을 '듣는' 것이다.

스크러튼은 「미와 위안(Beauty and Consolation)」(2009)에서 현대 소비주의 문화가 진정한 미적 경험을 방해한다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인은 대상을 소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어 칸트가 말한 무관심적 태도를 취하기 어렵다. 그는 진정한 미적 경험의 회복을 위해 '상상적 주목'의 능력을 기르는 미적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로버트 줌머만: 무관심성의 재정의와 미적 태도론

로버트 줌머만은 「칸트: 미학과 목적론의 비판(Kant: The Aesthetic Judgment)」(2001)에서 칸트의 무관심성 개념을 '미적 태도(aesthetic attitude)'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줌머만에 따르면, 칸트의 무관심성은 단순한 무관심이나 냉담함이 아니라, 대상의 감각적 특성에 대한 특별한 종류의 '몰입적 주목(contemplative attention)'을 의미한다.

줌머만은 칸트의 무관심성이 현대 미학에서 종종 오해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무관심성은 관심의 부재가 아니라 특정한 종류의 관심—대상의 형식적 특성과 그것이 우리의 인식 능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의 존재를 의미한다. 이는 미적 판단이 순전히 주관적인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특별한 인지적 태도에 기초한 보편화 가능한 경험임을 보여준다.

줌머만은 또한 칸트의 무관심적 쾌가 지닌 '자유로운 유희(free play)' 개념에 주목한다. 미적 경험에서 상상력과 지성은 개념적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상호작용한다. 이러한 자유로운 정신 활동은 우리에게 특별한 종류의 만족감을 제공하는데, 이것이 바로 칸트가 말한 미적 쾌의 본질이다.

줌머만의 해석에서 주목할 점은 무관심성과 미적 몰입 사이의 관계다. 그는 무관심적 태도가 오히려 대상의 미적 특성에 대한 더 깊은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고 본다. 대상의 실용적 용도나 개인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그 대상의 형식적, 표현적 특성에 더 깊이 주목할 수 있게 된다.

앨런 칼슨: 환경미학과 무관심성 비판

앨런 칼슨은 현대 환경미학의 선구자로, 「자연과 풍경(Nature and Landscape)」(2009)과 「환경의 미학(Aesthetics and the Environment)」(2000) 등의 저작에서 칸트의 무관심성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칼슨은 칸트의 무관심성 개념이 자연환경의 미적 감상에 적용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자연을 미적으로 감상할 때, 우리는 그것을 단순히 무관심적 태도로 바라볼 수 없으며, 자연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생태학적 이해가 미적 경험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 예를 들어, 특정 동물이나 식물의 생태적 역할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의 형태와 행동을 더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다.

칼슨은 '인지적 환경미학(cognitive environmental aesthetics)'이라는 접근법을 제안한다. 이 관점에서 자연의 미적 감상은 자연과학, 생태학, 환경윤리학 등의 지식을 통합한 '인지적으로 풍부한' 경험이 되어야 한다. 이는 칸트의 무관심성 개념보다 '관심적(interested)' 태도를 요구한다.

칼슨은 특히 관광산업이 조장하는 '풍경화적 감상(scenic appreciation)'을 비판한다. 이는 자연을 단순히 시각적 대상으로 환원하여 무관심적으로 감상하는 태도로, 자연의 생태적 복잡성과 역동성을 간과하게 만든다. 대신 그는 환경의 '생태적 감상(ecological appreciation)'을 주장하는데, 이는 자연을 생태계의 일부로 이해하고 감상하는 방식이다.

칼슨의 환경미학은 칸트의 무관심성 개념에 대한 중요한 도전을 제기한다. 그러나 최근의 학자들은 칸트의 무관심성과 칼슨의 인지적 접근이 반드시 대립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칸트 역시 「판단력 비판」의 후반부에서 자연의 목적론적 이해와 미적 감상의 연관성을 논의하기 때문이다.

현대 미학에서의 무관심성 논쟁

무관심성 개념은 현대 미학에서 다양한 맥락에서 논쟁되고 있다. 몇 가지 주요 쟁점을 살펴보자.

미적 가치와 도덕적 가치의 관계

칸트의 무관심성 개념은 미적 판단과 도덕적 판단의 구분을 전제한다. 그러나 현대 미학에서는 예술작품의 미적 가치와 도덕적 가치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노엘 캐럴(Noël Carroll)과 같은 학자들은 예술작품의 도덕적 결함이 미적 결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온건한 도덕주의(moderate moralism)'를 제안한다. 반면, 오스카 와일드의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 전통을 따르는 심미주의자들은 칸트의 무관심성 개념을 더욱 급진적으로 해석하여 예술의 도덕적 측면에 대한 고려 자체를 거부한다.

이러한 논쟁은 무관심성의 의미와 범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진정한 무관심적 태도는 작품의 도덕적 측면에 대한 고려마저 배제하는가? 아니면 도덕적 관점에서 작품을 평가하는 것도 특정한 종류의 미적 판단에 포함될 수 있는가?

일상의 미학과 무관심성

현대 미학에서는 일상적 경험과 대중문화의 미적 차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유코 사이토(Yuriko Saito)와 토마스 레더(Thomas Leddy) 같은 학자들은 '일상의 미학(everyday aesthetics)'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이들은 전통적인 무관심성 개념이 일상적 대상과 활동의 미적 차원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일상의 미학에서는 대상의 기능적 측면과 미적 측면이 밀접하게 연결된다. 예를 들어, 도구나 가구의 미적 가치는 종종 그것의 실용성과 분리할 수 없다. 이는 칸트의 무관심성 개념에 도전을 제기한다. 사이토는 「일상의 미학(Everyday Aesthetics)」(2007)에서 일상적 대상의 감상에서는 '관심적' 태도가 오히려 더 풍부한 미적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디지털 미디어와 참여적 미학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형태의 참여적, 상호작용적 예술을 가능하게 했다. 비디오 게임, 인터랙티브 설치 미술, 가상현실 작품 등은 관객의 적극적 참여와 개입을 요구한다. 이러한 예술 형태는 전통적인 무관심적 관조의 개념에 도전한다.

제이 데이비드 볼터(Jay David Bolter)와 리처드 그루신(Richard Grusin)은 「재매개(Remediation)」(1999)에서 디지털 미디어가 '몰입(immersion)'과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이라는 두 가지 미적 가치를 중심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가치들은 칸트의 무관심적 관조보다는 적극적인 참여와 관여를 강조한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디지털 미디어 경험에서도 일종의 '변형된 무관심성'이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게임 플레이어는 게임 내의 가상 세계에 몰입하면서도, 그것이 '단지 게임일 뿐'이라는 인식을 유지한다. 이는 현실의 실천적 관심에서 벗어난 특별한 종류의 몰입적 경험으로 볼 수 있다.

무관심적 쾌 개념의 재평가

이상의 논쟁들을 종합해보면, 칸트의 무관심적 쾌 개념은 단순히 거부되거나 수용되기보다는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 미학자들의 다양한 해석과 비판은 이 개념의 깊이와 복잡성을 더욱 풍부하게 드러낸다.

무관심성의 적극적 재해석

현대 미학에서는 칸트의 무관심성을 단순한 '관심의 부재'가 아니라 특별한 종류의 '미적 주목(aesthetic attention)'으로 재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스크러튼의 '상상적 주목' 개념이나 줌머만의 '몰입적 주목' 개념에서 잘 드러난다. 무관심성은 대상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실용적·개인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특별한 종류의 관심을 의미한다.

또한 현대 미학자들은 무관심성을 미적 경험의 필요조건이 아니라 다양한 미적 태도 중 하나로 위치시키는 경향이 있다. 앞서 살펴본 환경미학, 일상의 미학, 참여적 미학 등은 각각 다른 종류의 미적 태도와 경험을 제안한다. 이는 미적 경험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의 발전으로 볼 수 있다.

자율성과 참여의 변증법

현대 미학에서 무관심성 개념의 재해석은 종종 '자율성(autonomy)'과 '참여(engagement)'의 변증법적 관계로 이해된다. 이는 무관심적 태도가 대상과의 특별한 종류의 관계맺음을 가능하게 한다는 인식이다.

아놀드 버리언트(Arnold Berleant)는 「미적 참여(Aesthetic Engagement)」(1991)에서 전통적인 무관심성 개념을 비판하면서도, 미적 경험이 일상적 실천적 관심에서 벗어난 특별한 종류의 '참여적 몰입(engaged immersion)'을 수반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칸트의 무관심성을 완전히 거부하기보다 그것을 더 풍부한 미적 참여의 개념으로 확장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리처드 숀스테인머(Richard Shusterman)는 「실용주의 미학(Pragmatist Aesthetics)」(1992)에서 듀이의 실용주의 미학을 재해석하면서, 미적 경험이 일상적 경험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 일상 경험의 강화된 형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강화된 경험이 일종의 '변형된 무관심성'—일상적 관심사로부터의 일시적 이탈과 특별한 종류의 미적 주목—을 포함한다고 본다.

문화적, 역사적 맥락의 중요성

현대 미학자들은 또한 무관심성 개념이 특정한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서 등장했음을 강조한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구별짓기(Distinction)」(1979)에서 칸트의 무관심적 취미 개념이 특정 계급의 문화적 자본과 관련된 역사적 구성물임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학적 비판은 무관심성 개념 자체를 무효화하기보다는, 그것의 문화적, 역사적 조건에 대한 인식을 촉구한다.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은 「미학 이데올로기(The Ideology of the Aesthetic)」(1990)에서 미학적 담론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비판하면서도, 미적 경험이 지닌 해방적 잠재력을 인정한다. 그에 따르면, 무관심적 태도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대안적 사유와 경험 방식을 열어줄 수 있다.

결론: 무관심적 쾌 개념의 현대적 의의

무관심적 쾌에 관한 현대 미학자들의 다양한 해석과 비판은 칸트 미학의 풍부한 가능성과 현대적 의의를 보여준다. 스크러튼, 줌머만, 칼슨을 비롯한 현대 미학자들의 논쟁은 무관심성 개념의 단순한 수용이나 거부를 넘어, 그것의 창조적 재해석과 확장을 보여준다.

현대 미학에서 무관심적 쾌 개념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첫째, 무관심성은 소비주의와 도구적 이성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대안적 가치와 경험 방식을 제시한다. 스크러튼이 강조하듯, 무관심적 태도는 대상을 단순한 소비나 이용의 대상으로 환원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중하는 태도를 가능하게 한다.

둘째, 무관심성 개념은 미적 판단의 특수성과 자율성을 보장한다. 이는 예술과 미적 경험이 정치적, 경제적, 도덕적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가치 영역임을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

셋째, 확장된 무관심성 개념은 환경, 일상, 대중문화 등 다양한 영역의 미적 경험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용한 도구다. 칼슨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연 감상에서도 일종의 변형된 무관심적 태도—자연을 단순한 자원이나 도구가 아닌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넷째, 무관심성과 미적 자율성에 대한 논쟁은 현대 예술의 사회적, 정치적 역할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예술은 사회적 현실에 참여하면서도 그것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는 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가? 이는 현대 예술이 직면한 핵심적 과제 중 하나다.

결론적으로, 칸트의 무관심적 쾌 개념은 단순히 역사적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현대 미학 담론의 중심에 있는 살아있는 개념이다. 스크러튼, 줌머만, 칼슨을 비롯한 현대 미학자들의 다양한 해석과 비판은 이 개념의 풍부한 가능성과 한계를 드러내며, 미학적 사유의 지속적인 발전에 기여한다. 무관심적 쾌에 관한 논쟁은 결국 미적 경험의 본질과 가치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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