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y

아리스토텔레스 4. 형이상학 II: 실체와 형상·질료 이론

SSSCH 2025. 3. 27. 15:57
반응형

실체(ousia)의 중심성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핵심에는 '실체(ousia)'라는 개념이 자리한다. 그는 『형이상학』 7권(Z권)의 첫 문장에서 "존재란 여러 의미로 말해지지만, 가장 근본적인 의미는 실체이다"라고 선언함으로써 실체 개념의 중심성을 분명히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실체란 가장 근본적인 존재 방식으로, 다른 모든 것의 존재가 의존하는 기초다.

실체가 중심적인 이유는 그것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색, 크기, 위치와 같은 속성들은 항상 어떤 실체의 속성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지만, 실체는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어이지만 술어가 될 수 없는 것'이라는 문법적 기준을 통해서도 실체를 정의했다. 예컨대 "소크라테스는 현명하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현명함은 소크라테스다"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러한 실체 중심의 존재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철학 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발전시킨 것이다. 그는 초월적 이데아보다 우리가 경험하는 개별적인 실체들—이 특정한 인간, 저 특정한 나무—에 존재론적 우선성을 부여했다.

실체의 두 차원: 제일 실체와 제이 실체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론』에서 실체를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했다:

  1. 제일 실체(primary substance):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존재자(예: 소크라테스, 이 특정한 말)
  2. 제이 실체(secondary substance): 종(species)과 유(genus)(예: 인간, 동물)

제일 실체는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실체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존재자다. 반면 제이 실체는 제일 실체들이 속하는 종류나 범주를 가리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초기 저작인 『범주론』에서 제일 실체에 우선성을 부여했으나, 후기 저작인 『형이상학』에서는 종으로서의 제이 실체가 개별자의 본질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더 근본적일 수 있다는 관점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견해 변화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단순한 문법적·논리적 분석을 넘어, 존재의 본질과 구조에 대한 더 깊은 형이상학적 통찰로 나아갔음을 보여준다. 그는 실체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면서 '본질(to ti ên einai, "그것이 무엇이었는가"의 의미)'이라는 개념에 주목하게 되었다.

형상·질료 이론의 정교화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가장 유명한 이론 중 하나는 형상(form)과 질료(matter)의 관계에 관한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대부분의 실체는 형상과 질료의 결합체다. 질료는 그 자체로는 규정되지 않은 가능성의 담지자이며, 형상은 질료에 특정한 구조와 본질을 부여하는 원리다.

『형이상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이론을 더욱 정교화했다. 그는 형상을 단순한 외적 모양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과 기능을 규정하는 내적 원리로 이해했다. 예를 들어 도끼의 형상은 단순히 그것의 모양이 아니라, 벨 수 있는 기능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형상은 이성적 영혼으로, 이것이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본질적 특성이다.

질료와 관련해서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일 질료(prime matter)'와 다양한 수준의 '이차 질료(proximate matter)'를 구분했다. 제일 질료는 순수한 가능성으로, 어떤 형상도 갖지 않은 상태다. 이차 질료는 이미 어느 정도 형상화된 질료로, 더 복잡한 형상을 위한 질료가 된다. 예를 들어 벽돌은 그 자체로 형상(벽돌 형상)과 질료(진흙)의 결합체이지만, 집을 위한 질료로 기능할 수 있다.

형상과 본질의 관계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형상은 단순한 외적 형태가 아니라 사물의 본질과 깊이 연관된다. 그는 『형이상학』 7권(Z권)에서 "형상은 본질이며, 제일 실체"라고 주장한다. 이는 사물의 진정한 정체성과 본질이 그것의 질료가 아닌 형상에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인간의 본질은 우리의 신체적 구성(질료)이 아니라, 이성적 영혼(형상)에 있다. 마찬가지로 집의 본질은 그것이 만들어진 재료가 아니라, 거주 공간으로서의 구조와 기능(형상)에 있다.

이러한 관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변형한 결과다. 플라톤이 형상(이데아)을 개별 사물과 분리된 초월적 실재로 보았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이 개별 사물 안에 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내재론(immanentism)'은 플라톤의 '초월론(transcendentalism)'에 대한 중요한 대안을 제시했다.

실체의 네 가지 후보

『형이상학』 7권(Z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네 가지 가능한 답변을 검토한다:

  1. 본질(to ti ên einai): "그것이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즉 사물의 정의적 본질
  2. 보편자(katholou): 여러 개별자들에 공통되는 것(예: 인간임, 동물임)
  3. 유(genos): 여러 종들을 포괄하는 범주(예: 동물, 식물)
  4. 기체(hypokeimenon): 속성들의 담지자이자 변화의 주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네 가지 후보를 면밀히 검토한 후, 실체의 본질은 형상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특히 그는 실체가 단순한 기체나 질료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질료 자체가 규정되지 않은 가능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보편자가 실체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보편자는 항상 여러 개별자들에 관해 서술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가 '형상으로서의 본질'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는 사물의 진정한 정체성이 그것의 본질적 기능과 구조(형상)에 있다는 의미다.

가능태와 현실태의 심화된 이해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9권(Θ권)에서 가능태(dynamis)와 현실태(energeia)에 대한 분석을 심화시킨다. 이 두 개념은 형상-질료 이론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으며, 변화와 운동을 설명하는 핵심 원리다.

가능태는 변화의 가능성이나 잠재력을 의미하며, 현실태는 그 가능성이 실현된 상태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대리석 덩어리는 가능태로서 조각상이며, 완성된 조각상은 현실태로서의 조각상이다. 마찬가지로 아이는 가능태로서 성인이며, 성장을 통해 현실태로서의 성인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현실태는 가능태보다 항상 존재론적으로 우선한다. 이는 가능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이미 현실태에 있는 무언가(작용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건축가(현실태)가 있어야 집(가능태에서 현실태로)이 지어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태가 가능태보다 더 완전하고 가치 있는 존재 방식이라고 본다. 가능태는 항상 완성을 향한 중간 단계이며, 현실태는 그 완성의 상태다. 이는 그의 목적론적 세계관과 일치하는데, 모든 것은 자신의 형상을 완전히 실현하는 현실태를 향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복합체로서의 실체: 종합적 이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이론을 종합하면, 대부분의 실체는 형상과 질료의 복합체(synolon)로 이해될 수 있다. 이 복합체는 정적인 조합이 아니라, 가능태에서 현실태로의 역동적인 과정 속에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신체(질료)와 영혼(형상)의 복합체다. 신체는 영혼의 가능태이며, 영혼은 신체의 현실태이자 완성이다. 영혼은 신체에 생명과 기능을 부여하며, 이성적 영혼의 경우 사고와 의지와 같은 고유한 기능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복합적 이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극단적 유물론과 극단적 관념론 모두를 피하고, 보다 균형 잡힌 존재론을 발전시켰음을 보여준다. 그는 물질적 측면(질료)과 형식적·기능적 측면(형상)이 모두 실재의 중요한 구성 요소임을 인정했다.

실체의 생성과 소멸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의 생성과 소멸을 형상-질료 이론과 가능태-현실태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생성은 질료가 새로운 형상을 획득하는 과정이며, 소멸은 형상이 질료에서 사라지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식물의 성장은 영양분(질료)이 식물의 형상에 의해 동화되는 과정이다. 식물은 자신의 형상에 따라 영양분을 자신의 일부로 변형시킴으로써 성장한다. 반대로 식물이 죽으면, 그것의 형상(생명 원리)이 사라지고 질료만 남게 된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탄생은 적절한 물질적 조건(질료)에 인간의 형상(영혼)이 실현되는 과정이다. 죽음은 영혼과 신체의 분리, 즉 형상이 질료에서 떠나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에서 눈여겨볼 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상의 '전달'이나 '획득'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은 완전히 새로운 것의 창조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형상이 새로운 질료에 '전달'되는 과정이다. 이는 그의 이론이 기존 형상의 연속성을 전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임(thisness)'과 개별화 원리

아리스토텔레스 존재론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개별화의 원리다. 즉, 무엇이 같은 종에 속하는 여러 개체들을 서로 다른 개별자로 만드는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모두 '인간'이라는 동일한 형상을 공유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서로 다른 개별자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드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해석자들은 그가 질료를 개별화의 원리로 보았다고 해석한다. 즉,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서로 다른 개별자인 이유는 그들이 같은 형상(인간임)을 서로 다른 질료에 실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형상이 보편적 원리라면, 질료는 특수화와 개별화의 원리로 기능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여러 난점을 가지며, 중세 이후 많은 철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한 다양한 대안적 해석을 제시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주의와 정의 이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이론은 그의 본질주의(essentialism)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에 따르면 각 실체는 우연적 속성과 구별되는 본질적 속성을 가지며, 이 본질은 사물의 정의에 포함된다.

정의(definition)는 사물의 유(genus)와 종차(specific difference)를 통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인간'의 정의는 '이성적 동물'인데, 여기서 '동물'은 유이고 '이성적'은 종차다. 이러한 정의는 사물의 본질적 특성을 포착하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주의는 자연종(natural kinds)에 대한 그의 관점에도 반영된다. 그는 자연에 실제로 존재하는 종들이 있으며, 이들은 객관적인 경계를 가진다고 보았다. 이는 종이 단순한 인간의 분류가 아니라, 자연에 내재하는 실재적 구분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본질주의적 관점은 현대 철학에서 다양하게 평가된다. 일부 철학자들은 그의 본질주의를 비판하며 더 유명론적(nominalist) 또는 관습적인 분류를 옹호하지만, 다른 이들은 특히 생물학적 종과 관련하여 아리스토텔레스적 본질주의를 다시 옹호하기도 한다.

실체론의 윤리적·정치적 함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론은 단순한 이론적 구성물이 아니라, 그의 윤리학과 정치철학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의 목적론적 관점과 형상-질료 이론은 인간의 본성과 좋은 삶에 대한 그의 견해의 기초가 된다.

인간을 형상(이성적 영혼)과 질료(신체)의 복합체로 보는 관점에서, 좋은 삶은 인간 형상의 완전한 실현, 즉 이성적 능력의 탁월한 발휘에 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eudaimonia)을 "인간 기능의 탁월한 수행"으로 정의하는데, 이는 그의 형이상학적 관점과 일관된다.

마찬가지로 그의 정치철학에서 국가(polis)는 시민들이 자신의 본질적 기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을 제공해야 한다. 이는 국가가 단순한 계약적 결사체가 아니라, 시민들의 완성과 행복을 위한 자연적 공동체라는 그의 견해와 연결된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형이상학은 단순한 사변적 탐구가 아니라, 인간 삶의 실천적 영역과 깊이 연결된 학문이었다.

실체론과 인식론의 연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론은 그의 인식론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에게 진정한 지식(episteme)은 사물의 본질(형상)에 대한 이해를 포함한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그것의 우연적 특성이 아니라 본질적 특성, 즉 그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다.

『후서 분석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적 지식이 사물의 원인과 본질에 대한 이해에 기초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왜(why)'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사물의 형상과 목적을 포함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과학의 법칙적·기계적 설명 모델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자연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현상 간의 규칙적 관계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과 목적을 파악하는 것이다.

중세 철학에서의 수용과 발전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론과 형상-질료 이론은 중세 철학에서 깊이 수용되고 발전되었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기독교 신학과 종합하여 강력한 철학적 체계를 구축했다.

아퀴나스는 실체, 형상, 질료, 가능태, 현실태 등 아리스토텔레스의 핵심 개념들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창조론과 같은 기독교적 교리와 조화시켰다. 예를 들어 그는 신을 '순수한 현실태(actus purus)'로 이해했고, 창조를 무(無)로부터의 존재 부여로 해석했다.

중세의 다른 사상가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론을 다양하게 발전시켰다. 예를 들어 둔스 스코투스는 '개체성의 원리(haecceity)'를 도입하여 개별화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답을 제시했고, 윌리엄 오캄은 보다 유명론적 방향으로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을 재해석했다.

근대 이후의 비판과 재평가

근대 철학, 특히 데카르트 이후의 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론은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데카르트는 실체를 사유하는 것(res cogitans)과 연장된 것(res extensa)으로 이원화했고, 후대의 경험론자들은 실체 개념 자체를 의심했다.

특히 근대 과학의 발전과 함께,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질적 설명 방식은 양적·기계적 설명 방식에 의해 대체되었다. 또한 그의 본질주의는 유명론적 경향의 증가와 함께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철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특히 '신아리스토텔레스주의(neo-Aristotelianism)'라 불리는 흐름은 그의 실체 개념, 본질주의, 목적론 등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옹호한다.

현대 형이상학에서 여전히 중요한 문제로 남아있는 보편자와 개별자의 관계, 본질과 우연의 구분, 자연종의 실재성 등의 문제는 모두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 체계적으로 제기하고 탐구한 주제들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실체론은 형이상학의 역사에서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형상·질료 이론의 현대적 적용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질료 이론은 현대 철학의 여러 영역에서 새롭게 적용되고 있다. 특히 심신 문제, 생물학적 기능 이론, 인공물의 본성 등에 관한 논의에서 그의 이론의 변형된 버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심신 문제와 관련하여, 일부 현대 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질료 모델이 데카르트적 이원론이나 환원적 유물론보다 더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인간 정신을 신체의 '형상' 또는 '기능적 조직화'로 이해함으로써, 정신과 신체를 분리하지 않으면서도 정신의 고유성을 인정하는 방식을 모색한다.

생물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관점이 부분적으로 복권되고 있다. 현대 생물학은 기계적 인과관계만으로는 생명 현상의 모든 측면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기능과 목적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는 더 풍부한 설명 모델을 발전시키고 있다.

인공물(artifacts)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질료 이론이 활용된다. 인공물의 정체성은 그것의 물질적 구성보다는 그것의 기능과 목적(형상)에 더 의존한다는 견해는 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과 연결된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질료 이론은 현대 철학에서도 여전히 유용한 사고 도구로 기능하고 있으며, 다양한 맥락에서 새롭게 적용되고 있다.

종합: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지속적 의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론과 형상·질료 이론은 서양 철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지속적인 형이상학적 체계 중 하나다. 그의 이론은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비판과 수정을 겪었지만, 그 근본적인 통찰은 여전히 살아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극단적 입장들 사이에서 균형 잡힌 중도를 모색했다는 점이다. 그는 플라톤의 초월적 이데아론과 극단적 유물론 사이에서, 또한 엄격한 결정론과 무질서한 우연 사이에서, 형상과 질료, 현실태와 가능태라는 상보적 원리들을 통해 균형 잡힌 존재론을 제시했다.

또한 그의 형이상학은 단순한 이론적 구성물이 아니라, 생물학, 윤리학, 정치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된 풍부한 체계였다. 이는 형이상학적 원리들이 구체적인 현실 이해와 실천적 문제 해결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 중 하나는 세계를 이해하는 다차원적이고 다원적인 접근법이다. 그는 세계가 단일한 원리나 물질로 환원될 수 없는 풍부하고 복잡한 실체들의 총체임을 인식했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의 복잡계 이론이나 발현성(emergence)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현대 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재발견은 지나치게 환원주의적이거나 추상적인 이론들에 대한 건강한 교정제 역할을 한다. 그의 이론은 추상적 원리와 구체적 실재, 보편적 법칙과 개별적 사례, 이론적 이해와 실천적 지혜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모범을 보여준다.

텍스트 해석의 난점과 다양한 관점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텍스트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의 저작들이 강의 노트 형태로 남아있고, 복잡한 전승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정확한 의도와 주장을 파악하는 것은 종종 어려운 해석학적 과제가 된다.

특히 『형이상학』 7권(Z권)은 여러 부분에서 모순되거나 불완전한 주장들을 포함하는 것처럼 보여, 학자들 사이에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실체의 본질이 형상인지, 복합체인지, 또는 보편자와 개별자 중 어느 것이 더 근본적인 실체인지에 대해 상충되는 구절들이 있다.

이러한 난점들에 대해 여러 해석적 접근이 시도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저작 시기에 따라 발전했다고 보는 발전론적 접근을, 다른 이들은 겉보기에 모순된 주장들을 통합적으로 해석하려는 체계적 접근을 취한다.

현대 연구자들 중에는 미코스 푸르나리(Myles Burnyeat), 마이클 프레데(Michael Frede), 데이비드 찰스(David Charles), 크리스토퍼 쉴즈(Christopher Shields) 등이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에 대한 중요한 해석을 제시했다. 이들의 연구는 고대 텍스트에 대한 철저한 문헌학적 분석과 현대 철학적 문제의식을 결합하여,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현대적 의의를 재조명했다.

『형이상학』의 핵심 구절 분석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이해를 돕기 위해, 『형이상학』의 몇 가지 핵심 구절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분석해보자.

"존재는 여러 방식으로 말해지지만, 이 모든 방식은 하나의 원리에 관계한다. [...] 어떤 것들은 실체이기 때문에 존재라 불리고, 다른 것들은 실체의 속성이기 때문에, 또 다른 것들은 실체로 향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또는 실체의 소멸이나 결여이기 때문에, 또는 실체의 성질이기 때문에, 또는 실체를 생산하거나 관계하는 것이기 때문에 존재라 불린다." (『형이상학』 4권 1003a33-b10)

이 구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의 다의성(multivocity of being)' 교리를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존재한다'는 말은 단일한 의미가 아니라 여러 관련된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 다양한 의미들은 무작위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 '실체'라는 중심 개념을 중심으로 조직된다. 이는 그의 범주론과 연결되는 중요한 통찰이다.

"우리는 실체가 적어도 네 가지 주요한 의미, 즉 본질, 보편자, 유, 그리고 기체를 가진다고 말한다." (『형이상학』 7권 1028b33-36)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에 대한 네 가지 가능한 이해 방식을 제시한다. 이후 7권의 상당 부분은 이 네 후보 중 어느 것이 가장 근본적인 의미의 실체인지를 탐구하는 데 할애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보편자나 순수한 질료가 실체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형상으로서의 본질이 실체의 핵심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형상과 본질에 따라 일차적 실체라 불리는 것, 그리고 둘째로 질료와 형상으로 구성된 복합체..." (『형이상학』 7권 1037a29-30)

이 구절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일차적 실체'라는 표현을 『범주론』에서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함을 보여준다. 『범주론』에서 일차적 실체는 개별자(이 특정한 사람)였지만, 『형이상학』에서는 형상이나 본질이 가장 근본적인 의미의 실체로 격상된다. 이는 그의 사상에 발전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질료는 그 자체로는 인식할 수 없다." (『형이상학』 7권 1036a8-9)

이 간결한 구절은 아리스토텔레스 인식론의 중요한 측면을 드러낸다. 그에게 진정한 지식은 항상 형상이나 본질에 관한 것이다. 순수한 질료는 규정되지 않은 가능성에 불과하므로, 그 자체로는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항상 어떤 형상을 가진 질료, 즉 형상화된 실체다.

"영혼은 어떤 의미에서 모든 존재다." (『영혼론』 3권 431b21)

『영혼론』의 이 유명한 구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론과 형이상학의 연결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인식은 인식 주체(영혼)가 인식 대상의 형상을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영혼은 잠재적으로 모든 형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다.

가능태-현실태 이론의 확장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능태-현실태 이론은 단순히 변화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존재의 다양한 층위와 관계를 이해하는 포괄적인 틀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그는 이 개념들을 통해 영혼과 신체의 관계를 설명한다. 『영혼론』에서 그는 영혼을 "자연적 유기체의 첫 번째 현실태(entelecheia)"로 정의한다. 이는 신체가 영혼에 대해 가능태로 존재하며, 영혼은 신체의 현실태이자 완성이라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지식의 획득과 관련해서도 이 개념들이 적용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배움의 과정을 가능태에서 현실태로의 이행으로 설명한다. 배우기 이전에 우리는 '앎의 가능태'에 있으며, 학습을 통해 '앎의 현실태'에 도달한다.

더 나아가 그는 가능태와 현실태 사이에 위계를 설정한다. 낮은 수준의 현실태는 더 높은 수준의 가능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감각적 지각(현실태1)은 더 높은 수준의 사고와 이해(현실태2)의 가능태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가능태-현실태의 위계는 궁극적으로 '순수 현실태(actus purus)'로서의 신에 이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어떠한 가능태도 없는 완전한 현실태로, 모든 존재의 연쇄에서 최종 원인이자 목적이 된다.

형상의 초월성과 내재성 문제

아리스토텔레스 형상론에서 중요한 해석적 문제 중 하나는 형상의 존재론적 지위다. 형상은 개별 사물 안에 내재하는 원리인가, 아니면 어떤 의미에서 초월적인 실재인가?

일반적인 해석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초월적 이데아론을 비판하고 형상의 내재성을 주장했다고 본다. 그러나 『형이상학』의 일부 구절들, 특히 12권의 신에 관한 논의는 형상이 순수하게 내재적이지만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문제는 보편자와 개별자의 관계 문제와도 연결된다. 만약 형상이 보편자라면, 그것은 어떻게 개별 사물 안에 내재할 수 있는가? 반대로 형상이 개별화된 것이라면, 어떻게 여러 사물들이 동일한 종에 속할 수 있는가?

이러한 긴장은 아리스토텔레스 해석의 핵심 난제 중 하나로,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형상적 참여(formal participation)'라는 개념을 통해, 둔스 스코투스는 '형상적 통일성(formal unity)'과 '개체성의 원리(haecceity)'를 통해 이 문제에 접근했다.

현대 연구자들 중에는 형상을 기능적 속성으로 해석하거나(기능주의적 해석), 종 본질을 현대 생물학의 '상동성(homology)' 개념과 연결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형이상학과 자연학의 연속성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형이상학과 자연학은 엄격히 분리된 학문이 아니라, 연속적이고 상보적인 탐구 영역이었다. 그의 자연학은 형이상학적 원리들에 기초하며, 형이상학은 자연 연구의 경험적 관찰로부터 귀납적으로 도출된 측면이 있다.

그의 생물학 연구는 이러한 연속성을 잘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방대한 동물들을 해부하고 관찰하면서, 각 종의 구조와 기능에 주목했다. 이러한 경험적 연구는 형상, 목적, 기능 등의 형이상학적 개념을 구체화하고 풍부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그의 생물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종(species)'과 '발생(generation)' 개념은 형상-질료 이론 및 가능태-현실태 이론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각 생물종은 고유한 형상(본질)을 가지며, 발생 과정은 가능태에서 현실태로의 이행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형이상학이 현실 세계와 분리된 추상적 사변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적 연구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학문임을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에 대한 철학적 이해와 경험적 탐구 사이의 균형을 추구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학문적 이상이다.

실체론과 과학철학의 현대적 대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론은 현대 과학철학의 여러 주제와 흥미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특히 과학적 실재론과 환원주의에 관한 논쟁에서 그의 통찰은 여전히 관련성을 가진다.

현대 과학철학에서는 과학 이론에 등장하는 존재자들(예: 전자, 유전자, 장)의 존재론적 지위에 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과 네 가지 원인론은 이러한 논쟁에 유용한 개념적 자원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그의 비환원주의적 접근은 현대 과학의 환원주의적 경향에 대한 중요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한다. 특히 복잡계 과학이나 생물학에서는 단순한 물리적·화학적 과정으로 환원될 수 없는 창발적 속성과 기능적 설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목적에 관한 강조와 일맥상통한다.

현대 철학자 낸시 카트라이트(Nancy Cartwright)의 '법칙의 덧없음(dappled world)' 이론이나 존 듀프레(John Dupré)의 존재론적 다원주의 같은 입장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관과 상당한 친화성을 보인다. 이들은 자연이 단일한 법칙 체계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인과적 힘과 원리들의 복합체라고 본다.

존재론적 범주와 언어적 분석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론은 존재와 언어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그의 범주론은 언어의 구조와 존재의 구조 사이의 대응 관계를 전제하며, 이는 20세기 분석철학의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와도 흥미로운 비교점을 제공한다.

그는 언어적 표현, 특히 서술 구조(predication)가 존재의 구조를 반영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현명하다"라는 문장에서, 소크라테스(실체)와 현명함(속성) 사이의 관계는 존재론적으로 중요한 범주적 구분을 나타낸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형이상학에서 속성, 관계, 사건, 과정 등 다양한 존재론적 범주를 분석할 때도 여전히 유용하다. 특히 P.F. 스트로슨(P.F. Strawson)이나 데이비드 위긴스(David Wiggins) 같은 철학자들의 '기술적 형이상학(descriptive metaphysics)'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 분석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더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동음이의어(homonymy), 동의어(synonymy), 유의어(paronymy) 구분은 언어 분석의 중요한 도구로, 존재의 다의성(multivocity)에 대한 그의 이론과 연결된다. 이러한 구분은 현대 언어철학과 분석적 존재론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 본성과 실체론의 관계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론은 그의 인간 본성론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에게 인간은 다른 모든 실체와 마찬가지로 형상(영혼)과 질료(신체)의 복합체다. 그러나 인간의 형상에는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특별한 요소, 즉 이성적 능력이 포함된다.

『영혼론』에서 그는 영혼을 식물적(영양), 동물적(감각, 욕구, 운동), 이성적(사고, 의지) 기능의 위계적 구조로 설명한다. 인간은 이 모든 기능을 포괄하며, 특히 이성적 영혼이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자 고유한 기능(ergon)이다.

이러한 관점은 그의 윤리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그는 인간의 행복(eudaimonia)을 "인간 고유의 기능을 탁월하게 수행하는 것"으로 정의하는데, 이는 곧 이성적 능력의 탁월한 발휘를 의미한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인간 본성과 좋은 삶에 대한 이해는 그의 형이상학적 실체론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이는 존재론과 윤리학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그의 철학 체계의 통합성을 보여준다.

현대 형이상학에 대한 영향과 의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현대 철학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자원으로 기능한다. 20세기 후반 이후 형이상학의 부활과 함께, 그의 많은 개념과 이론들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특히 데이비드 루이스(David Lewis), 키트 파인(Kit Fine), 데이비드 암스트롱(David Armstrong) 같은 현대 형이상학자들의 작업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본질주의, 속성 실재론, 자연종에 관한 최근의 논의들은 상당 부분 아리스토텔레스적 문제의식과 개념을 공유한다.

또한 마이클 톰슨(Michael Thompson), 필리파 풋(Philippa Foot), 로즈마리 해퍼(Rosalind Hursthouse) 같은 현대 덕 윤리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적 인간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규범성의 자연주의적 기초를 모색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다원주의적이고 비환원적인 존재론은 현대의 지나치게 단순화된 존재론에 대한 중요한 교정제가 될 수 있다. 그의 이론은 실재의 복잡성과 다층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질서와 의미를 찾는 균형 잡힌 접근법을 제시한다.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가장 큰 의의는 그것이 추상적 이론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현실과 인간 삶의 여러 측면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일 것이다. 그의 형이상학은 자연 세계에 대한 이해, 지식의 본성, 인간의 정체성과 목적, 윤리적 삶의 기초 등을 포괄하는 통합적 세계관의 핵심을 이룬다.

현대의 분과화된 학문 환경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보여준 이러한 통합적 접근법은 여전히 중요한 모범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그의 목적론적 존재론은 세계를 단순한 물질적 메커니즘이 아닌, 의미와 목적을 가진 질서 있는 전체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