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sthetics

미학개론 17. 형식주의 미학

SSSCH 2025. 4. 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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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주의 미학의 배경과 등장

형식주의 미학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등장한 미학 이론으로, 예술 작품의 내용이나 맥락보다는 형식적 요소와 구조에 미적 가치의 본질이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형식주의는 특히 모더니즘 미술과 문학 비평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20세기 전반기 미학 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형식주의 미학의 등장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먼저, 19세기 후반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등의 모더니즘 미술 운동이 재현보다는 색채, 선, 구성 등 형식적 요소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또한 당시 실증주의와 자연주의 문학에 대한 반발로, 예술의 자율성과 고유한 형식 언어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와 함께 칸트의 '무관심적 관조' 개념과 같은 철학적 전통도 형식주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클라이브 벨과 '유의미한 형식' 이론

영국의 미술 비평가 클라이브 벨(Clive Bell, 1881-1964)은 형식주의 미학의 대표적 이론가 중 한 명이다. 그의 대표작 『예술』(Art, 1914)에서 벨은 모든 진정한 예술 작품에는 '유의미한 형식'(Significant Form)이라는 공통된 특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벨에 따르면, 유의미한 형식이란 "선과 색채의 특정한 조합과 관계, 그리고 특정한 형태들"로, 이들이 특별한 방식으로 배열될 때 감상자에게 독특한 미적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미적 정서는 일상적 감정과는 다른, 예술에 고유한 반응으로서, 진정한 예술 작품만이 이를 유발할 수 있다고 본다.

벨의 이론에서 중요한 점은 예술 작품의 재현적 내용이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이 아니라 순수하게 형식적 특성만이 미적 가치를 결정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그는 미술사를 사실적 재현의 발전사로 보는 관점을 거부하고, 아프리카 부족 미술이나 비잔틴 모자이크 같은 비재현적 예술을 높이 평가했다.

"우리가 중국 도자기, 페르시아 양탄자, 멕시코 조각상, 자이레 가면에서 미적 정서를 느낀다면, 그것은 이들이 유의미한 형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들이 무엇을 재현하는지, 어떤 용도로 만들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벨의 이론은 다양한 시대와 문화의 예술을 평가할 수 있는 보편적 기준을 제시하려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미적 정서의 본질이 무엇인지 명확히 규정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로저 프라이와 포스트 인상주의

로저 프라이(Roger Fry, 1866-1934)는 벨과 함께 블룸즈버리 그룹에 속했던 미술 비평가이자 화가로, 영국에 포스트 인상주의를 소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10년과 1912년 런던에서 그가 기획한 '포스트 인상주의' 전시회는 세잔, 고갱, 반 고흐 등의 작품을 영국 대중에게 소개했으며,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프라이는 벨의 '유의미한 형식' 개념을 발전시켜 보다 구체적인 형식 분석 방법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미술 작품을 구성하는 '디자인' 요소(선, 형태, 질감, 색채, 공간 등)와 그 관계에 주목했으며, 이러한 순수 형식적 요소들이 어떻게 시각적 감정을 유발하는지 분석했다.

『시각과 디자인』(Vision and Design, 1920), 『세잔: 형식 연구』(Cézanne: A Study of His Development, 1927) 등의 저작에서 프라이는 예술 작품의 재현적 측면('실제적 삶')과 형식적 측면('상상적 삶')을 구분하며, 진정한 미적 가치는 후자에 있다고 주장했다.

프라이의 중요한 기여 중 하나는 특히 세잔의 작품 분석을 통해, 모더니즘 미술이 단순히 재현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시각적 질서를 창조한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세잔은 시각적 감각에 완전히 만족을 주는 디자인을 창조함과 동시에, 자연의 구조적 에너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형식주의

러시아 형식주의는 1910년대에서 1930년대 초반까지 러시아에서 발전한 문학 이론으로, 빅토르 시클롭스키, 로만 야콥슨, 보리스 에이헨바움 등이 주요 인물이다. 이들은 문학의 본질을 내용이나 사회적 기능이 아닌 언어의 형식적 특성에서 찾았다.

시클롭스키의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 개념은 러시아 형식주의의 핵심 이론 중 하나로, 문학 언어가 일상 언어와 구별되는 특성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문학은 자동화된 인식을 방해하고 대상을 새롭게 보게 함으로써 지각의 과정을 의식하게 만든다. 이러한 '낯설게 하기'는 형식적 장치(기법)를 통해 이루어지며, 문학성의 본질이 된다.

"예술의 기법은 사물을 낯설게 만들고, 형식을 어렵게 하여 지각의 과정을 연장시키는 것이다. 예술에서 지각 과정 자체가 목적이며, 따라서 이 과정은 연장되어야 한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문학 작품을 언어적 장치들의 복합체로 보고, 이러한 장치들이 어떻게 특정한 미적 효과를 산출하는지 분석했다. 그들은 운율, 리듬, 음운, 통사구조 등 문학 언어의 구체적 특성에 주목했고, 이를 통해 문학 연구를 인상적 비평에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러시아 형식주의는 1930년대 스탈린 체제하에서 '부르주아적', '비사회적' 이론으로 비판받아 침체되었지만, 이후 프라하 언어학파와 구조주의 문학 이론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뉴 크리티시즘과 문학적 형식주의

뉴 크리티시즘(New Criticism)은 1920-30년대에 시작되어 1940-50년대에 영미권 문학 비평을 지배한 형식주의적 비평 이론이다. I.A. 리처즈, 윌리엄 엠프슨, 존 크로우 랜섬, 클린스 브룩스, 로버트 펜 워렌 등이 대표적 이론가들이다.

뉴 크리티시즘의 핵심 원칙은 '텍스트 자체에 집중'하는 것으로, 작가의 의도, 독자의 반응, 역사적·사회적 맥락 등 텍스트 외적 요소를 배제하고 작품의 내적 구조와 언어적 특성을 분석하는 방법론을 추구했다. 이들이 발전시킨 '면밀한 읽기'(close reading) 방법은 시와 소설의 모호성, 역설, 아이러니, 은유 등 수사적 장치와 이들이 만들어내는 의미의 긴장과 통합을 분석했다.

브룩스의 『잘 빚어진 항아리』(The Well Wrought Urn, 1947)는 뉴 크리티시즘의 중요한 저작으로, 문학 작품을 유기적 전체로 보는 관점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좋은 시는 모순되는 요소들이 역설적으로 통합되는 '드라마'이며, 이러한 긴장과 균형이 작품의 미적 가치를 결정한다.

"시는 우리가 파라프레이즈하려는 진술이 아니라, 경험을 체현하고 그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시의 구조는 상반된 태도들의 패턴이며, 이들은 서로를 수정하고 한정하면서 통합된 전체를 형성한다."

뉴 크리티시즘은 특히 미국 대학의 문학 교육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정치적·역사적 맥락에서 벗어나 '텍스트 자체'에 집중하는 접근법으로 냉전 시대 학문적 중립성을 추구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역사주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등 맥락 중심의 비평 이론이 등장하면서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클레멘트 그린버그와 모더니즘 미술 비평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는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 비평가로, 추상표현주의를 이론적으로 지지하고 모더니즘 미술의 형식주의적 해석을 확립했다.

그린버그의 대표적 논문 『모더니스트 회화』(Modernist Painting, 1960)에서 그는 모더니즘의 본질을 "매체의 자기비판"으로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각 예술 형식은 자신의 매체에 고유한 본질적 특성을 규명하고 순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회화의 경우, 이것은 2차원적 평면성, 색채, 형태 등 회화 매체에 본질적인 요소들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더니스트 회화의 평면성, 그것이 바로 모더니스트 회화가 보존하고 강조해야 할 유일한 조건이다. 이것만이 회화를 다른 예술과 구별해주기 때문이다."

그린버그는 이러한 '매체 특정성'(medium specificity) 개념을 바탕으로 모더니즘 미술사를 마네에서 시작하여 인상주의, 세잔, 큐비즘을 거쳐 추상표현주의로 이어지는 자기비판적 발전 과정으로 해석했다. 그는 특히 잭슨 폴록의 작품을 이러한 모더니즘의 정점으로 평가했으며, 이와 대조적으로 초현실주의나 팝아트 같은 경향은 문학적이고 형식적 순수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비판했다.

그린버그의 이론은 추상표현주의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1960년대 이후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등의 등장과 함께 도전받기 시작했다. 특히 그의 발전적이고 규범적인 미술사관은 포스트모더니즘 시각에서 강한 비판을 받았다.

형식주의 미학의 한계와 비판

형식주의 미학은 예술 작품의 형식적 특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을 제공하고, 예술의 자율성과 내재적 가치를 옹호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 다양한 측면에서 비판을 받았다.

첫째, 형식주의는 예술의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맥락을 경시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형식적 특성만으로는 작품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으며, 특히 많은 현대 예술이 명시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판은 설득력을 갖는다.

둘째, 형식주의는 서구 중심적이고 제한된 미적 가치관을 보편화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그린버그의 선형적 발전 모델은 서구 모더니즘의 특정 흐름만을 정통으로 인정하고 다른 문화적 전통이나 실천을 주변화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았다.

셋째, 형식주의는 미적 경험의 복합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미적 경험은 순수하게 형식적 특성에 대한 반응만이 아니라, 내용, 맥락, 관객의 주관적 상황 등 다양한 요소가 상호작용하는 복합적 과정이라는 것이다.

넷째, 형식주의는 개념미술, 행위예술, 참여예술 등 형식적 특성보다 개념, 행위, 관객 참여 등을 중시하는 현대 예술 실천을 적절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후기 형식주의와 현대적 재해석

형식주의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형식 분석은 여전히 예술 비평과 미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대의 '후기 형식주의' 접근법들은 전통적 형식주의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형식과 맥락, 내용 사이의 관계를 보다 복합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예를 들어, 마이클 프리드와 같은 비평가는 그린버그의 형식주의를 계승하면서도, 작품의 형식이 어떻게 특정한 '연극성'이나 '현존감'을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관객과의 관계를 구성하는지에 주목한다. 이는 순수하게 형식적 특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형식이 어떻게 의미와 경험을 구성하는지 탐구하는 확장된 형식주의라 할 수 있다.

또한 로잘린드 크라우스, 이브 알랭 부아 등의 비평가들은 구조주의, 정신분석, 페미니즘 등의 이론을 접목하여 형식 분석을 확장시켰다. 이들은 형식적 특성과 사회적, 정치적, 심리적 의미 사이의 복합적 관계를 탐구하며, 형식주의와 맥락주의 사이의 이분법을 넘어서려 한다.

현대 미학에서 형식주의 전통은 또한 인지과학과 신경미학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형식적 패턴이 인간의 지각 체계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특정 형식적 특성이 어떻게 정서적, 인지적 반응을 유발하는지에 대한 경험적 연구는 형식주의 미학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볼 수 있다.

결론: 형식주의의 의의와 현대적 가치

형식주의 미학은 20세기 초중반 예술 담론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모더니즘 미술과 문학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형식주의는 예술 작품의 내재적 특성에 주목하고, 예술의 자율성을 옹호함으로써 예술을 사회적, 도덕적, 정치적 목적의 도구로 보는 관점에 대항했다.

형식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여 중 하나는 예술 작품을 분석하는 체계적인 방법론을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벨과 프라이의 시각 예술 분석,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문학 언어 분석, 뉴 크리티시즘의 '면밀한 읽기' 등은 작품의 구조와 형식적 특성을 이해하는 구체적인 도구를 제공했다.

또한 형식주의는 비서구 문화의 예술, 역사적으로 저평가된 예술 형식 등을 새롭게 평가할 수 있는 틀을 제공했다. 벨과 프라이가 아프리카 조각이나 비잔틴 모자이크를 높이 평가한 것은, 재현적 정확성이 아닌 형식적 특성에 기반한 평가 기준을 통해 다양한 문화의 예술적 성취를 인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 미학에서 형식주의는 그 자체로 완결된 이론으로서보다는, 예술 작품의 형식적 측면을 이해하는 중요한 관점으로서 가치가 있다. 형식 분석은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 분석과 함께, 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복합적 접근의 한 요소로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형식주의가 강조한 '보는 방식', 즉 일상적 지각에서 벗어나 형식적 특성에 주목하는 태도는 미적 경험의 중요한 측면을 포착한다. 우리가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그것이 무엇을 재현하는지뿐만 아니라 어떻게 구성되고 표현되는지, 그리고 그 구성과 표현이 어떤 감각적, 정서적 효과를 만들어내는지에 주목하는 것은 여전히 미적 경험의 핵심적 부분이다.

이런 의미에서 형식주의 미학은,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예술 작품의 고유한 가치와 특성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현대 미학의 과제는 형식주의를 단순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과 맥락, 내용, 경험 사이의 복합적 관계를 보다 풍부하게 이해하는 방향으로 형식주의의 통찰을 발전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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