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sthetics

현상학적 미학 3. 현상학적 환원과 시각예술 지각의 본질

SSSCH 2025. 5. 8. 00:03
반응형

자연적 태도에서 현상학적 태도로

일상에서 우리는 대부분 '자연적 태도'로 세계를 경험한다. 이는 세계가 우리 의식과 독립적으로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하는 상태다. 거리를 걸으며 보는 건물들, 마주치는 사람들, 손에 쥐는 물건들은 모두 '거기에 있는' 실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현상학적 접근에서는 이러한 자연적 태도를 일시적으로 유보하고, 우리의 경험 자체에 집중한다.

현상학적 환원은 이 자연적 태도에서 벗어나 의식 경험 자체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에드문트 후설이 발전시킨 이 방법론적 절차는 '에포케(epoché)'라는 판단중지에서 시작한다. 즉, 세계의 실재성에 대한 모든 가정을 일단 괄호치기(bracketing)하는 것이다. 이는 세계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방식에 대한 판단을 잠시 유보함으로써 현상 자체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이다.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을 생각해보자. 자연적 태도에서는 벽에 걸린 그림을 '물리적 객체'로 경험한다. 캔버스, 물감, 나무 프레임으로 이루어진 사물이다. 그러나 미적 경험이 시작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일종의 에포케를 수행한다. 이제 그림은 단순한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의미와 정서가 충만한 세계로 변모한다. 이러한 태도의 전환은 현상학적 환원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시각예술에서의 '보이는 양태'와 지향적 대상

현상학적 관점에서 시각예술 작품을 지각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사물을 보는 것 이상이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특정한 '보이는 양태(modes of appearance)'를 경험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볼 때, 우리는 단순히 색소의 배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소용돌이치는 하늘, 떨리는 별빛, 고요한 마을의 분위기를 경험한다.

후설의 지향성 이론은 이 과정을 설명하는 데 핵심적이다. 지각 행위(노에시스)와 지각된 대상(노에마)은 분리할 수 없는 상관관계를 이룬다. 회화를 바라볼 때, 우리의 시각적 지각 행위는 단순한 물리적 자극의 수용이 아니라, 의미를 구성하는 능동적 과정이다. 우리는 2차원 표면 위의 색과 형태를 통해 3차원적 공간, 인물, 사건, 분위기를 '본다'. 이것이 바로 지각의 지향적 특성이다.

더 나아가, 현상학적 분석은 예술 작품 지각의 여러 층위를 구분한다. 프랑스의 현상학자 미켈 뒤프렌(Mikel Dufrenne)은 미적 대상의 층위를 감각적 층위, 표현적 층위, 세계 층위로 구분했다.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예로 들면, 감각적 층위에서는 직선과 원색의 배열을, 표현적 층위에서는 균형과 질서의 감각을, 세계 층위에서는 근대성의 기하학적 정신을 경험할 수 있다.

현전과 준현전: 지각과 이미지 의식의 차이

현상학은 직접적 지각과 이미지를 통한 경험의 근본적 차이를 세밀하게 분석한다. 후설은 '현전(presentation)'과 '준현전(re-presentation)' 또는 '현재화(presentification)'를 구분한다. 눈앞의 사과를 직접 보는 것은 현전이지만, 사과 그림을 보거나 사과를 상상하는 것은 준현전이다.

회화나 사진과 같은 시각예술은 이 준현전의 특수한 형태를 활용한다. 예술 작품을 통해 우리는 '부재하는 것'을 '현재하는 것'을 통해 경험한다. 모네의 수련 그림을 볼 때, 물리적으로 눈앞에 있는 것은 캔버스와 물감뿐이지만, 우리는 이를 통해 지베르니 정원의 수련을 '본다'. 이러한 이중적 지각 구조는 모든 재현적 시각예술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추상미술은 이러한 구조에 도전한다.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이나 마크 로스코의 색면 회화는 무언가를 재현하기보다, 회화의 물질적 현존 자체와 직접적인 시각적, 정서적 경험을 강조한다. 현상학적 분석은 이러한 비재현적 작품의 경험 역시 다양한 지향적 층위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지각의 신체성과 공간 경험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후설의 현상학을 발전시켜 지각의 신체적 차원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모든 경험은 근본적으로 체화되어(embodied) 있다. 시각예술을 감상할 때도 우리는 단순히 '눈'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전신의 운동 감각과 공간 지각을 통해 작품을 경험한다.

큰 규모의 추상표현주의 회화나 설치미술 앞에 서면, 우리는 작품과 일종의 신체적 대화를 나눈다. 마크 로스코의 대형 색면 회화는 관람자를 감싸는 듯한 시각적 장(field)을 만들어내며, 리처드 세라의 거대한 강철 조각은 관람자의 동선과 신체적 관계를 직접적으로 재구성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단순히 '보는' 대상이 아니라, 신체적으로 '경험하는' 환경이 된다.

메를로-퐁티는 "눈과 정신(Eye and Mind)"에서 회화를 '세계의 가시성에 대한 성찰'로 규정했다. 화가는 보는 법을 새롭게 발견하고, 관람자에게 그 발견을 나눈다. 폴 세잔의 회화는 단순히 풍경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식 자체를 드러낸다. 이런 의미에서 회화는 단순한 모방이 아닌, 존재론적 탐구가 된다.

해석학적 차원: 의미의 현현

한스-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는 현상학적 전통을 해석학적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그에 따르면 예술 작품 경험은 일종의 '진리 사건'이다. 우리는 작품과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게 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주관적 반응이나 객관적 분석으로 환원될 수 없는, 생생한 해석학적 경험이다.

가다머는 이를 '지평 융합(fusion of horizons)'이라 불렀다. 작품이 속한 역사적, 문화적 지평과 관람자의 현재적 지평이 만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 작품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매 해석적 만남에서 새롭게 구성된다.

중세 성화를 현대 미술관에서 볼 때, 우리는 종교적 도상의 본래 맥락과 현대적 미적 감수성 사이의 긴장 속에서 작품을 경험한다. 마르셀 뒤샹의 '샘'과 같은 현대 작품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를 작품의 주제로 삼아, 관람자에게 적극적인 해석적 참여를 요구한다. 이러한 해석학적 차원은 시각예술 경험의 중요한 측면이다.

현상학적 환원의 예술적 실천으로서의 큐비즘

20세기 초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가 발전시킨 큐비즘은 현상학적 환원과 흥미로운 유사성을 보인다. 큐비즘 화가들은 대상을 재현할 때 단일한 관점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점에서 본 모습을 동시에 표현했다. 이는 지각의 자연적 태도를 괄호치고, 지각 자체의 구조를 탐구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나 브라크의 정물화는 일상적 시각 경험의 관습을 해체하고, 대상을 지각하는 의식의 다층적 과정을 캔버스에 드러낸다. 여러 각도에서 본 얼굴, 분할된 기하학적 형태들, 평면에 동시에 펼쳐진 시간성은 모두 자연적 지각의 기반이 되는 의식 구조를 시각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큐비즘은 단순한 미적 실험이 아니라, 시각 경험의 현상학적 탐구로 볼 수 있다. 화가들은 일종의 예술적 에포케를 통해 '보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했다. 이렇게 현상학과 현대미술은 20세기 초반 서로 다른 영역에서 유사한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예술 작품의 '사물성'과 '작품성'

독일의 현상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예술작품의 기원(The Origin of the Work of Art)"에서 예술 작품의 존재론적 지위에 대해 성찰했다. 그는 작품의 '사물성(thingness)'과 '작품성(workness)'을 구분했다. 모든 예술 작품은 물리적 사물이지만, 동시에 그 사물성을 넘어서는 '세계의 열림'을 제공한다.

반 고흐의 '농부의 신발' 그림에 대한 하이데거의 유명한 분석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그 그림은 단순히 신발의 재현이 아니라, 농부의 삶의 세계 전체를 드러낸다. 흙과 노동, 풍요와 궁핍, 출생과 죽음이 모두 그 낡은 신발 속에 담겨 있다. 이처럼 예술 작품은 '세계(World)'와 '대지(Earth)' 사이의 투쟁을 통해 진리를 열어 보인다.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시각예술을 감상한다는 것은 작품이 열어젖히는 세계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미적 즐거움이나 형식적 분석을 넘어서는 존재론적 경험이다. 미니멀리즘 조각이나 추상회화조차도 그것만의 고유한 '세계'를 열어젖히며, 관람자에게 새로운 존재 경험을 제안한다.

디지털 시대의 현상학적 지각

오늘날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시각예술 경험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는 전통적인 지각 방식에 도전하고, 새로운 형태의 미적 경험을 창출한다. 이러한 변화는 현상학적 분석의 새로운 적용 영역을 제공한다.

가상현실 작품을 경험할 때,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현전'과 '체화된 지각'을 경험한다. 물리적으로 부재하는 세계가 감각적으로 현존하는 역설적 상황이 만들어진다. 또한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은 관람자의 신체적 참여를 통해 작품이 완성되는 구조를 가진다. 이는 주체와 객체의 전통적 구분을 넘어서는 상호구성적 관계를 형성한다.

돈 이데(Don Ihde)가 발전시킨 포스트현상학은 이러한 기술-매개된 경험을 분석하는 도구를 제공한다.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지각 구조 자체를 변형시키는 매개체가 된다. 디지털 시각예술은 이러한 매개된 지각의 가능성과 한계를 탐구하는 실험장이 될 수 있다.

결론

현상학적 환원은 시각예술 지각의 본질에 접근하는 강력한 방법론적 도구다. 자연적 태도에서 벗어나 경험 자체로 돌아감으로써, 우리는 예술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지향성, 신체성, 해석학적 차원, 존재론적 의미 등 다양한 측면에서 시각예술 경험을 분석함으로써, 단순한 형식주의나 심리학적 설명을 넘어서는 풍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현상학적 접근은 예술 작품을 단순한 '대상'으로 보는 관점을 넘어서,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생생한 만남으로서의 미적 경험을 강조한다. 회화, 조각, 설치, 디지털 미디어 등 다양한 시각예술 형식은 각각 고유한 방식으로 '보이는 양태'와 '의미의 현현'을 창출하며, 이를 통해 우리의 세계 경험을 확장하고 변형시킨다. 결국 현상학적 미학은 예술을 통한 새로운 보기와 사유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여정이다.

반응형